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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마을 신당] 최고령 정오덕 어르신2020-04-10

[새내기 마을 신당] 최고령 정오덕 어르신


 

88세 인생, 지금이 제일 행복하지


"62년 보낸 세월 여기가 이젠 고향"

마을서 연탄-소금장사 기억에 남아 


사람들 왕래가 잦은 거리 뒤편에 아담한 집 한 채가 있다. 현관 문 앞에 놓인 보라색 고무신 한 쌍. 집 안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이다. 이곳에 전라남도 강진에서 시집 와 62년의 세월을 보낸 정오덕(88)어르신이 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도 아는 사람 없고 이 마을이 곧 고향 같다며 미소 지으며 사람을 반겼다.

 



어르신이 키우는 앵무새 '잉꼬'


어린 객이 문을 두드리며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 하니, 자리에 먼저 앉히시는 정오덕 어르신. 텔레비전 전원을 끄고 방이 춥진 않은지 확인하고서 비로소 옛 생각에 잠겨본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이야기부터 꺼냈다. 스물 두 살의 나이 차로, 친정엄마와 동갑이었던 청년이었다.

영감 동생이 우리 고향서 살았거든. 그래서 소개로 만난 게 우리 영감이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께 남들이 솔찬히 흉을 봤어. 근데 난 귀로 듣고 말아버리지 앵기질 않았어. 말 주변도 없고 거짓말도 못하는 성격이거든.”

당시 나이 스물여섯에 완주로 시집 온 오덕 어르신. 현재 용진읍사무소 자리가 과거엔 어르신이 살던 집이었다. 그곳에서 소금과 기름을 팔고 식당을 운영했다. 이를테면 창고에서는 연탄, 왼쪽 공터에서는 기름과 소금, 마루에서는 밥장사를 했던 것이다. 마을에서 꽤나 큰 집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지금이야 자유롭게 소금을 사고 팔 수 있는 시대이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염전개발과 소금의 수급조절을 목적으로 염()관리법이 제정되어, 국가에서 허가를 받은 이들만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오덕 어르신은 소금 팔아먹으려고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았다. 그때 용진면에서 소금 파는 곳이 두 군데였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다. 근데 3년 뒤(1997)에 자유화돼서 망했다. 땅은 팔아버려서 없고 장사도 못 하게 되니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신당마을 최고령 정오덕어르신이 텃밭을 매고 있다.


40년 전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숨을 푹 쉬는 오덕 어르신. 장사를 접은 뒤, 아파트 공사현장 인부로도 일하고 마을에서 필요한 일손을 돕기도 했다고. 일을 쉬지 않고 해온 그는 오늘도 텃밭에 나갈 채비를 하신다. 자루에 호미 두 개, 목장갑, 보자기를 챙기며 말이다. 얼마 전, 마을에서 안 쓰는 땅을 내어주어 풀도 매고 작물을 심을 계획이다. 자갈밭이라 땅이 단단해 호미질이 쉽지 않지만 어르신에겐 소중한 보물창고다.

다른 데는 고라니 때문에 콩을 못 심는디 여그서 콩 좀 심어보려고. 풀 매는디 땅이 너무 때글때글해가지고 어깨가 아파. 내일 병원 가서 침도 맞고 가정외과도 갈 참이야. 나이 드니까 맨날 아프기만 해서 큰일이야.”

 


따뜻한 봄날, 어르신의 집에는 냉기가 맴돈다. 시간이 흐른 만큼이나 낡아져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주변에서 영구임대아파트를 제안하며 걱정하기도 한다. 아파트가 더 쾌적한 환경일지 몰라도 어르신은 고향과 다름없는 마을을 떠나기 싫은 눈치다. 그런 어르신에게 살면서 제일 행복한 때가 언제였는지 물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게 바로 지금이야. 몸은 아파도 뭐 달라는 놈이 없잖아. 밥 달라는 놈, 돈 달라는 놈. 요새 정부에서 뭐 해주고 복지관에서 챙겨주니 얼마나 좋아. 어제 복지관에서 달걀이랑 콩나물 좀 챙겨줬는데 그걸로 점심밥 좀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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