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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씨 우리 친구할까요?2019-12-11

상이씨 우리 친구할까요?


상이씨 우리 친구할까요?

- 화정마을 김상이씨 이야기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 곤충의 무게를 모두 더하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의 무게보다 무겁다고 하는데 이 곤충은 무엇일까? 자신의 몸 보다 수십 배 큰 것들도 번쩍 들어 올리는 이 곤충은 무엇일까?

즐겨보는 TV프로그램에서 어린이 세 명에게 이런 퀴즈를 냈고 그들은 입을 모아 개미라고 외쳤다. 화정마을에서 만난 김상이씨(70)를 떠올리면 개미가 생각난다. 작은 체구로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해내고야 마는 사람. 고된 삶이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땅을 마주하며 살아온 삶이다. 특별난 재주가 없으니 평생 땅 파먹고 살았다는 상이씨는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으면서 어떻게 웃음이 그리 화사한지 모르겠다.



십년 째 마을 부녀회장일을 하고 있는 김상이씨는 집에서 몇 걸음 안 떨어진 마을회관을 수시로 들락날락 거린다. 23살 때 진안 부귀면 정수암 마을에서 시집온 상이씨에게 동네 형님들은

낯선 일도 알려주고 술도 알려주고 노래도 알려줬다. 그 형님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지만 그 화사한 웃음만은 그대로 일 것 같다.

고향에서 먹고 살기 곤란해서 배곯아감선 누에를 키웠었지. 우리 친정은 잘 못살았어. 7남매 중에 내가 제일 맏이야. 그래서 더 고생했지. 엄마랑 아버지는 나가서 일해야 하고 동생들 많으니까 내가 보살펴야 하고. 먹고 살기 곤란해서 나만 학교를 못 가르쳤어요, 나만! 그래서 눈 봉사야.” 

 

 

해마다 채종해서 심고 있는 목화


느닷없는 중신으로 낯선 마을로 시집왔을 때 이 곳 화정마을은 온통 목화밭이었다고 한다. 목화 키워서 어디 내다 판 것은 아니지만 집집마다 옷 해 입고 솜이불 만들어 덮느라 심었던 목화들이었을 테다. 지금은 목화밭이 다 사라졌지만 그때 키웠던 목화씨를 채종해 두었다가 해마다 심고 씨를 받고 다음 해에 또 심는 일을 거르지 않고 있다. 마당 한쪽 화단에 대대손손 생명이 이어지고 있는 목화가 있다. 잎과 줄기는 시들고 하얀 솜이 달려있다. 오래전 유물을 보는 것 같다. 공룡의 화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목화는 심지어 살아있다. 내년에도 꽃을 피우고 통통한 다래 안에 솜을 가득 품고 있을 것이다.


 

딸과 사위들이 십시일반 모아 8년 전에 새로 집을 지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모를 심지.

그 당시 화정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전기도 늦게 들어오고 상대적으로 빈촌이었다고 한다.


다른 마을은 보가 있었는데 여기는 없었어. 이것저것 없으니까 오로지 하늘에서 비가 와야 모를 심고 농사를 짓는 데였어. 하늘만 바라봐. 그래도 지금은 저기에 보가 만들어져서 나 심고 싶은 대로 심고 그러다보니까 부자 되었지. 로컬푸드 직매장 생기면서 재미있었지. 우리는 취만 팔았어. 그때는 신나게 잘 했어. 산에서 캐다가 심어 놨다 씨받아서 하우스에서 키우는 거지. 로컬에 납품하고 완주군 급식으로 나가고 농산물센터에도 내놓고. 물건 보내면 모질 라서 중간에 가지러 오고 그랬어. 가지러 오면 또 보내고. 하루 2~3백 팔리니까 재미있지. 야채 팔아서 그 정도 판 거면 진짜 많이 판 거지. 농사도 올 봄 까지만 하고 취소했어. 남편 아파서 안할라고. 나먹을 놈만 하려고. 그전에는 남편이랑 해서 여력이 되었는데 혼자하려니까 힘들어.”




울다가 웃다 보니 어느 덧 칠십

그렇게 5~6년은 참 재미있게 일하고 돈도 많이 모았지만 시나브로 일을 줄여 나갔다. 평생 일만 했으니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65세 무렵에는 병원생활을 오래 하셨다. 허리 디스크로 수술 하고 퇴원하면 또 일하다가 다시 수술하기를 반복했다.

 

허리 아파서 119 실려 갈 때 대성통곡했어. 119아저씨가 아줌마 그렇게 우는 것이 덜 아프다고 위로를 하는데 나는 아파서 운 게 아니야. 이것 쪼금 살 거면서 참 아등바등 살았다, 너무 일만하고 살았는가.. 억울하기도 하고. 많이 울었어. 사정도 없이 울었어. 병원생활 할 때 우리 딸들이 되게 욕봤어. 내가 좀 괜찮아지니까 우리 아저씨가 아파서 걱정이지.”

 구급차 안에서 대성통곡 했던 때를 인생 중에 가정 슬펐던 때라고 기억하신다. 그럼 가장 재미있고 좋았던 때는 언제였는지 물었다. 그 답변에 나는 기가 차기도 하고 가슴 한쪽이 아련해지기도 했다.


 

김상이씨의 절친 나비


“45세 때! 맘껏 일하고 맘껏 놀고 그러니까 재미있었지. 내 힘껏 일해도 몸땡이가 안 아프니까 내 하고 싶은 대로 일하고 놀고 싶으면 몽땅 가서 형님들이 놀고. 술 먹고 놀았지. 그때는 훨훨 나는 것 같았지. 아무 집에나 한티가 모이면 놀았어요. 노래도 부르고 넘 흉보고 우스매 소리하다가 웃고 울고 그러고 놀지. 막걸리를 고산 읍내 나가서 통에다 담아서 이고 왔어. 친구랑 같이. 마을에서 한참 술 마시다가 술 떨어지면 나랑 친구랑 술통 들고 읍내까지 가는 거야. 거기다가 막걸리 담아서 마을로 들어오는데 그게 얼마나 무겁겠어. 그럼 친구랑 오면서 그것을 홀짝 홀짝 먹다보면 반절이나 없어, 술이. 마을 도착할 때 쯤 우리 둘이 아주 그냥 취해가지고 웃고 그랬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도 땅을 마주할 사람들이다. 상이씨는 이 동네 형님들이 좋아서 형님들 덕 보고 살았다고 한다. 못 하는 거, 모르는 것 알려주고 도와주면서 힘든 마음 알아주는 이들과 어울려 놀다보면 몸 고된 것은 싹 사라지더란다. 지금도 화정마을회관에서는 유난히 웃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친구 김점례와 함께. 젊은 시절 읍내에서 막걸리 받아오는 길에 통에 반절을 함께 나눠마셨던 사이


농사일을 줄이면서 다시 한글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 학교 끝나고 선생들이랑 동네 카페에 가서 시커먼 커피를 자주 먹다 보니 느지막이 막역한 친구가 생겼다. 고산 읍내 다락카페의 주인장 최은영씨다. 상이씨의 큰 딸과 비슷한 또래인데 친구 먹기로 했다며 서로 부르는 호칭은 상이씨, 은영씨.

 

선생님들이랑 커피를 먹으러 갔는데 최은영이가 농사지은 거 물어보고, 우리네 농사지은 거 사가고 그러다보니 친해지더라고. 지금은 그냥 동생 같아. 카페에 갔는데 안보이면 보고 싶고 그래. 아무튼 귀여운 동생 하나 생겼어.”

 

귀여운 친구 하나 생겨서 좋고, 평생 농작물만 키우다가 좋아하는 꽃 키우며 바라보고 있자니 행복하다. 잘 웃고 농담을 좋아하는 상이씨와 친구가 싶다. 상이씨 우리 친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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