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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람 난다 거인마을] 채충임 할머니2019-11-13

[큰 사람 난다 거인마을] 채충임 할머니



"난 고기보다 빵이 좋아"

 

이북서 피난 와 거인 남자와 혼인

환갑때 다시 마을로 돌아와 정착

 

동상면은 해가 짧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벌써 쌀쌀해진다. 채충임(83) 할머니는 잠시 마당을 치운 후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뒤를 따라가 대문을 두드리니 흔쾌히 문을 열어주신다.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충임 할머니는 고향이 이북이다.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용진면에 정착했다. 그리고 스무 살 되던 해 거인마을 남자와 혼인했다.

할아버지가 전라도 사람한테는 시집보내면 안 된다고 하더니 이 골짜기로 보냈어. 여 와서 골수 전라도 사람 만나서 나도 전라도 사람 됐지.”

남편은 경찰관이었다. 4남매를 낳고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마을을 떠나 익산 등지에서 오래 살다 60세가 되던 해 남편과 함께 다시 거인마을로 돌아왔다.



우리 땅이 있었지. 오두막을 헐고 지금 사는 집으로 고친거야. 근데 집 지어지기 며칠 전에 우리 아저씨가 돌아가셨어. 집 완성된 것도 못 보고 가셨네. 하필 본인 생일날에 떠나셨어. 시월 열사흗날에.”

할머니는 요즘 동네 사람들과 함께 공공근로 쓰레기 분리수거 일을 하신다. 일주일에 3번 정도.

나는 집에 혼자 있어도 안 심심해. 이사 오면서 공공근로 일을 시작했는데 그 일 하는 사람 중에 내가 제일 오래됐어. 결석 한 번도 안했어.”


할머니는 집을 찾은 어린 객이 반갑다. 따뜻하게 마시라며 커피도 타 주시고 쑥스럽지만 집 구경도 시켜주신다. 깔끔한 성격이 집 곳곳에서 묻어난다. 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질 않았다. 부엌에는 다듬은 파가 있다. 자식들 파김치를 담아줄 참이다. 할머니는 말씀을 하시다말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꺼내 오신다. 간식으로 즐겨 드시는 카스타드 빵이다.

내가 고기를 못 먹어. 먹으면 막 가렵고 그래. 고기는 못 먹고 대신 빵을 좋아하거든. 예전에 막내아들이 갑자기 나한테 빵을 세 종류나 사줘. ‘내가 뭔 애기길래 빵을 주냐했더니 그럼 엄마가 애기지. 고기도 못 먹으면서이러더라구. 그때부터 집에 늘 빵이 있어. 맛이 좋드라고. 이거 하나 잡숴봐. 나는 또 있어.”





채충임 할머니는 자녀들의 어릴 적 증명사진과 딸과 며느리의 결혼사진을 액자에 넣어뒀다.


할머니 집에는 유독 사진이 많이 걸려있다. 가족사진이 벽에 걸려있고 네 자녀의 어릴 때 증명사진도 액자에 고이 넣어뒀다. 딸과 며느리 셋의 결혼사진은 정성들여 잘라 하트모양 액자에 넣어뒀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남편 사진이다.

언젠가 딸이 왜 집에 다른 가족들 사진은 많은데 아빠 사진만 없냐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그때 남편 사진을 꺼내서 액자로 해놨어. 제복 입고 찍은 사진도 있어.”

할머니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배운 것이 있다며 어린 객들에게 말한다. 다름 아닌 남 흉을 보면 안 된다는 것.

내가 환갑을 여기 와서 지냈어. 이제 죽을 때 됐지. 여기에서 죽을 거야. 내가 살아보니까 남 말 않고 사는 게 좋은 거야. 남 흉보면 안 되는 거여. 그나저나 아가씨들이 우리 집 놀러오니까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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