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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여덟에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읽는다는 것은2019-08-14

여든 여덟에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읽는다는 것은

박태근 어르신이 평생 동반자 유유복녀 여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든 여덟에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읽는다는 것은


- 비봉면 평지마을 박태근어르신

 

오늘 오전에는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긴급뉴스로 전해졌고 오후에는 전례가 없었다는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국제 정세나 정치 환경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요즘 같은 상황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평화롭게 지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





박태근 어르신이 요즘 읽고 있는 책들


비봉면 수선리 평지마을에서 만나게 된 박태근 어르신은 지금도 많은 책을 읽고 계셨다. 서울에서 오랜 동안 출판사 일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과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고 계시는 여든 여덟의 어르신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박태근 어르신의 삶은 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책을 좋아하던 소년이었고 그래서 책을 파는 청년이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를 차렸고 여든 전까지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셨다. 지금은 책을 즐기는 노인이 되었다.

 

박태근 어르신 태어나는 순간 마을에 큰 불이 났었다고 한다. 급박한 순간 어르신의 어머니는 진통을 견뎌내며 불이 번지지 않은 개울건너 어느 할머니 집으로 가서 출산을 하셨다고 한다.

화마로 마을은 전부 불탔고 어르신은 태어났다. 발가벗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던 아이는 뒤주 속에 가득했던 할아버지가 남긴 책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쟁통에 사라져 버린 책들이지만 박태근 어르신의 첫 책들이었을 것이다.


 

여행가서 사온 좋은 커피 맛 보라며 직접  내려주시는 어르신


예전에 내가 태어나던 때만 해도 이 동네가 밀양 박씨 집성촌이었어. 서당 훈장 하시던 할아버지 대에는 제법 잘 사는 집안이었다고 했는데 아버지 대에 가세가 많이 기울었어. 5형제 중에 내가 막내야. 나는 초등학교 밖에 못나왔어. 화산초등학교 30회 졸업생이야. 학교에 보낼 형편이 못되었는데 집안 어르신이 내가 총명하다고 생각하셨는지 나를 공부시켜야 된다고 11살 먹어서야 학교에 보내준 거지. 그때가 왜정시대 때였어. 그 뒤론 독학을 했어. 19534월 그러니까 6.25 전쟁 중 일 때 입대했는데, 국어사전하고 영영사전을 사서 군대를 갔어.”


입대할 때만 해도 우리 아들 죽으러 간다고 다들 울며 떠나보냈지만 운 좋게도 후방에 있는 경남 진해로 배치되고 책을 좋아하던 어르신을 눈여겨 본 선임 장교의 배려 덕택에 영어공부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배워둔 영어실력이 외국어전문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게 된 밑천이 되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여러모로 쓸모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 1960년대


제대하고 군대에서 만난 친구를 만나 답십리에서 생선장사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지. 나중에 성공해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어. 그래도 내가 책을 참 좋아했어. 하이네 시를 다 외워버렸으니까. 아무 직업은 없지만 책을 늘 봤지. 서울에 고서적만 파는 곳이 있어. 청계천 6가 헌책방가라고 하면 전국적으로 유명해. 책을 좋아하니까 노는 날 한번 그 거리를 가봤지. 근데 가다보니 어떤 친구가 땅에다가 마분지를 깔아놓고 책을 팔고 있더라고. 책을 보고 있는데 화산초등학교 동창놈인거야. 이재원이라고.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그래서 나도 그때부터 책을 팔기 시작한 거야. 낮에는 청계천에서 바닥에 책을 깔아놓고 팔고, 밤이 되면 제일은행 본점으로 갔지. 밤에도 불을 훤하게 켜놓은 곳이야. 자전거에 책을 싣고 끌고 가서 파는 거야. 박스 두 개를 자전거에 싣고 거기에 책을 실으면 사람 탈 자리가 없으니까 끌고 가는 거지. 10시까지 책을 팔았지. 그렇게 한 3년을 팔았어.”

 

일제 강점기가 한창이던 1932, 비봉면 산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간신히 나온 가난한 소년이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사전 두 권을 들고 전쟁 통에 군대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형이 마련해준 쌀 30가마니 돈으로 무작정 상경해 청계천 길바닥에서 좌판으로 책을 팔기 시작한 어르신의 책과의 인연은 파란만장하고 애틋했다.


 


나란히 놓여 있는 박태근, 유유복녀 부부의 사진과 선그라스


생각해 보니까 도매로 책 떼어다가 파는 것이 많이 남아 봐야 이삼십 프로 남는 건데 그럴 바에는 서점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어. 그 당시에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평화시장을 지지은건데 거기에 서점을 열었어. 밑천이 없으니까 가게 하나를 둘로 나눠서 옆에서 안경점을 하고 나는 외국책을 팔았지. 우리 가게 이름을 외국서점이라고 지었어. 평화시장의 많은 서점 중에 외국책을 파는 서점은 우리 서점이 유일했어. 외국책 파는 서점은 우리 하나인데 와서 보면 쓸만한 책이 많거든. 없어서 못 팔정도로. 그때가 1964년이었어. 외국서점을 7~8년 했어. 하나보니 그거 가지고는 안 될 거 같아서 출판사를 시작했어. ‘한신문화사라고 19736월에 출판사 등록을 했어. 서점이랑 출판사 합치면 45년이야. 20103월까지 하다가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어.”

 

어르신은 그 바쁜 평화시장 시절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고 한다. 한학을 하셨던 할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지만 어렵고 불편한 환경이 오히려 성공하고 싶은 간절함을 갖게 하셨고 그것이 지금의 어르신을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물론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어르신을 대신해 지금까지도 전용 운전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유유복녀 할머니의 공도 크지 않았을까.

 

출판사를 열심히 하되 사회에 기여를 해야겠다 싶어서 각 학교에 한신문화사 책을 매년 두 개 학교씩 기증을 하기로 했어. 75년부터 책 기증하고 76년부터 장학금을 줬지. 내 고향 화산초, 비봉초등학교에도 큰돈은 아니지만 76년도부터 민중영한사전, 국어사전, 영영사전, 옥편 6가지를 3명씩 책으로 장학금을 줬는데 그 뒤로 책이 그렇게 필요 없어지니까 장학금 30만원씩을 증여했지. 지금은 백만원씩 장학금을 주고 있어. 비봉초등학교. 화산초등학교, 화산중학교 등 5군데 주다가 지금은 줄였지.”

 



박태근 어르신은 꽃을 좋아해 집 곳곳에 꽃을 기른다.


고단했지만 보람도 있었던 서울생활을 마치고 고향 마을 산자락에 자리 잡은 어르신의 집과 마당에선 멀리 운장산과 안수산의 산마루들이 보인다. 이야기 말미에는 한 눈 팔지 말고 무엇이든지 한 10년만 정진하면 길이 보이고 성공할 수 있다는 어르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훈육도 들었지만 어르신은 여전히 새로운 책을 읽으며 세상을 공부하고 계셨다. 나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 , >로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도 여든 셋, 그 책을 읽고 계시는 어르신도 여든 여덟이니 두 분은 아직도 세상을 읽고 쓰고 연구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국제 정세와 정치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고 온갖 사회문제들도 산재해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어르신께서도 더 건강하게 더 많은 책들을 읽어가며 살아가시길 소망한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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