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칼럼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품앗이 칼럼

> 시골매거진 > 품앗이 칼럼

[바닥의 걸어서] 우울한 직장인의 점심시간2019-07-01

[바닥의 걸어서] 우울한 직장인의 점심시간


우울한 직장인의 점심시간

 

지난달에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 이불 밖으로 몸을 일으켜 꺼내는 일 자체가 곤욕스러웠다. 체육대회를 한 다음 날의 몸, 밤새 두들겨 맞은 몸 같았다.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지고 무거워진 몸을 가누기가 힘겨워 울면서 매일 아침을 맞이했다. 그런 기분으로도 다행히 출근은 또 한다. 일어나기 싫어서 마음속에 정해놓은 마지막 순간까지 누워있지만 그 시간을 놓칠까봐 불안해서 2~3분에 한 번씩 시간을 확인한다. 730분이 되면 벌떡 일어나 고양이 화장실 먼저 치우고 밥그릇에 사료 채우고 세수하고 옷 입고 고양이 물그릇에 새 물을 채우고 후다닥 집을 나선다. 얼굴에 로션 바르는 건 거의 매번 잊어버린다. 몇 번은 세수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일어나자마자 나온 적도 있다. 그런 시간이 한 달 반쯤 이어지다가 요즘에는 그나마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마음이 들 뿐 너무 괴롭고 힘들다는 생각은 덜하다.

 

끼니 챙기는 것까지 신경 쓸 힘은 없어서 점심시간이면 매번 혼자 사무실 근처를 배회했다. 빵집, 국수집, 햄버거집 앞을 지날 때마다 여기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사람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보며 점심을 먹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아서 일단 밖으로 나오기는 했는데 사람들이 가득한 식당에 들어갈 엄두 역시 나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뭘 먹어도 맛이 없었다. 어쩌다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올라 식당 앞까지 가보지만 이렇게 바쁜 시간에 혼자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는 게 식당에 폐를 끼치는 일만 같았다. 그러다보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그냥 아무 곳으로나 걷게 된다. 배고프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서 길을 걸으면서 먹었다.

 

우울증이 찾아오지 않았던 시절의 나는 아침 6시면 눈이 번쩍 떠지고 가뿐하게 몸을 일으켜 운동을 하거나 밥을 지어 도시락을 준비했다. 저녁밥으로 무엇을 해먹을지 점심 때부터 고민하고 퇴근 후 한 시간 정도 요리해서 기분 좋은 식사를 한다. 요즘의 나는 요리를 하거나 반찬을 잘 챙겨서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밥을 지어 먹는다. 도시락도 싸서 점심시간에 직장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말도 별로 없고, 얼른 먹고 먼저 일어나기는 해도 혼자 옥상에 올라가거나 밖으로 뛰쳐나가지는 않는다. 자기 전에 냉동식품이나 라면으로 배를 불려야 허전함이 채워지는 기분은 아직 남아있다. 인스턴트 식품보다는 로컬푸드 식재료가 나을 듯해서 여름 감자를 쪄먹거나, 당근이나 오이를 씹어먹거나, 밥을 해서 간장이나 달걀후라이에 비벼먹는다. 배고프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빨리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에 먹는 그런 식사다. 먹고 나면 역시 후회한다. 속은 더부룩하고 다음날 아침은 더 힘들어진다. 식욕을 잃어서 전혀 먹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누군가 말했지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식욕을 잃는 것도, 먹을 필요 없는 음식을 먹으며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것도 똑같이 슬픈 일이니까.

 

방금도 냉동실에 얼려둔 식빵 두 쪽을 오븐에 구워 꿀을 발라 먹었다. 배가 너무 부르다. 오늘밤도 기분좋게 잠들지는 못할 것이다. 잠을 자고나도 개운하지 않아서 그렇지 억지로 잠을 청하다보면 잠이 들기는 한다.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으니 진정한우울증이 아닌 것만 같은데 새벽에 꼭 한 번씩 화장실 가느라고, 고양이 밥 주느라고 깨다보니 수면의 질이 썩 높지는 않다. 자기 전까지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는 날이 많으니 더 그럴 터다. 아침에 그렇게 더 자고 싶으니 밤에 일찍 잠들면 좋으련만 잘 안 된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라도 많은 직장인들이 밤에 바로 잠들지 못한다고 한다. 종일 자기를 위해 쓴 시간이 없으니 뭐라도 해야 마음이 풀리는 거다. 마음이 풀릴 것 같은 기분이겠지, 그거라도 하는 심정. 나는 주로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다. 별로 읽을거리도 없는 트위터를 새로고침하면서.

 

이제 자고 나면 또 일어나기 싫은 아침이 온다. 출근하기 싫다. 일하기 싫다. 그래도 출근하면 오늘 하루가 시작되고 시작되면 곧 끝나니까 버티다보면 하루가 지나가겠지.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내일이 오면 또 내일이 지나가니까 곧 휴일이 오겠지. 회사가 지긋지긋해서 그만두고 싶다는 과거와는 다르다. 그저 괴롭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매일설레] 과연
다음글
[이근석의 완주공동체이야기] 방아깨비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