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기획특집

[가을이 익어가는 다자미마을] 예서 나고 자란 제자리색시 김종례 어르신2017-11-06

[가을이 익어가는 다자미마을] 예서 나고 자란 제자리색시 김종례 어르신

예서 나고 자란 제자리색시 김종례 어르신

먹을 사람 없어도 이맘때면 감 깎아 매달아 놓아야 보기 예뻐요




처마 밑에 곶감을 달아놓으면 바라보기가 좋잖아. 곶감은 여기(동상면) 씨 없는 곶감이 일등이지.”


김종례(74) 할머니의 집 처마 밑에서 곶감이 익어가고 있다. 이제 막 감을 깎아 매달아둔 참이다. 종례 할머니가 다자미마을에 정착한건 50여년 전. 수십 년간 지루하게 봐온 풍경일텐데도 할머니 눈에는 여전히 예뻐보인다. 집안에도 곱게 익은 감나무 가지를 가져다 걸어두었다.


아버지 따라 스물셋에 여기 왔어. 가지고 있는 땅이 좀 있어서 친정식구들이 다 같이 이사 왔거든. 지금 이 집은 시댁이고. 눈에 콩깍지가 씌었나 연애하다 결혼했는데 왜 했나 몰라. 남편이 미남이었어.”



50여년 째 살아오고 있는 김종례 할머니의 집



종례 할머니는 이사 온 해에 마을에 살고 있던 남편을 만나 곧바로 결혼했다. 같은 해에 친정집과 시댁으로 다자미마을과 두 번의 인연을 맺은 것이다.


내가 7남매를 뒀는데 6명이 딸이야. 딸이 연속해서 5명이 태어나니까 시할머니한테 쫓겨날 뻔 했어. 불 못 떼서 혼나고, 보리밥 못 먹는다고 혼나고. 그냥 맨날 혼났어.”


할머니는 금이야 옥이야 사랑받고 자란 귀한 딸이었다. 가까이 살던 친정의 도움을 많이 받아 친정어머니가 아이들 옷이며 먹을 것, 흰쌀 등을 아낌없이 챙겨줬다. 시할머니의 구박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친정어머니의 도움과 시어머니의 사랑 덕분이었다.


시어머니가 날 많이 챙겨주고 감싸줬어. 보리밥 못 먹고 있으면 몰래 쌀밥해서 주시기도 하고. 지금은 딸들이 참 잘하지. 맨날 집에 있음 뭐하냐고 계절마다 여행 데리고 가줘. 다음 주에도 날 잡는다고 연락이 왔어. 먹을 것도 보내주고 암튼 잘해.”


옛날에는 지금처럼 길이 나지 않아 아이를 데리고 병원이라도 가려고 하면 재를 넘고 송광사부터 전주까지 걸어 다녔다. 아이를 들쳐 업고 새벽같이 출발해도 당일에는 집으로 돌아오기가 힘드니 한 번 나가면 12일 일정으로 전주에 있는 고모네 집에 신세를 지고 자고 오거나 했다. 그렇게 7남매를 키워냈다.


우리 마을이 많은 자식 낳아 아름답게 키우라고 다자미(多子美)잖아. 산 속이라 해가 빨리 져서 밤이 엄청 길어. 그래서 옛날부터 애를 많이 낳았나봐(웃음).”


지금은 딸과 둘이 산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엔 곶감도 꽤 많이 만들었다. 40그루 정도의 감나무가 있는데 지금은 일손이 없어서 감을 딸 생각도 못하고 묵혀두었다.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도 아직 따지 못한 감이 많다. 그 덕에 까치가 배부르다.


산 속이라 공기 좋고 좋잖아. 마을 사람들도 다 좋고. 요즘 몸이 아파서 먼데까지는 못 나가고 가끔 학동마을까지 길만 왔다갔다 해. 모정 옆에 있는 운동기구도 쓰면 좋은데 요리조리 핑계만 대고 잘 안하게 되드라고.”




최영례 할머니(사진 위쪽). 종례할머니가 동갑내기 친구 영례 할머니네 마실갔다 눌러앉아 고들빼기를 다듬고 있다.



종례 할머니는 심심할 때면 앞집 사는 동갑내기 친구 최영례(74) 할머니에게 마실을 간다. 영례 할머니는 종례 할머니보다 먼저 다자미마을에 시집을 와서 정착했다. 젊었을 때는 서로 사는 것이 바빠 왕래가 적었지만 지금은 서로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영례 할머니 역시 슬하에 7남매를 뒀다. 종례 할머니는 오늘도 영례 할머니 네에 놀러왔다가 밭에 눌러앉아 고들빼기를 다듬고 있다.


그 집 사위가 이렇게 아침 일찍 와서 뽑아뒀네. 그냥 놀러왔다가 바빠 보여서 다듬는 거야. 슬슬 하다가 가야지 뭐(웃음).”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가을이 익어가는 다자미마을] 마을 입구 첫번째 집 김영숙씨
다음글
[가을이 익어가는 다자미마을] 건강 문제로 귀촌한 김순기 목사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