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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곁 안남마을] 새벽 5시면 나와 양파 파는 소순덕 할머니2017-07-03

[느티나무 곁 안남마을] 새벽 5시면 나와 양파 파는 소순덕 할머니

새벽 5시면 나와 양파 파는 소순덕 할머니

농사 짓고 양파 팔고 한글 공부도 하느라 바빠




아이고, 감사합니다.”

비가 온다. 간만에 내리는 비. 쏟아지는 소리가 제법 시원하다. 소순덕(77) 할머니가도 비가 오질 않아 그간 마음이 편치 않았다.


800평 고추농사를 지어. 나 혼자 하지. 기계 불러서 땅을 갈아놓으면 다음부턴 다 내가해. 요즘 비가 워낙에 안 왔잖아. 비가 안와서 올해는 양파값도 작년보다 한 이천원은 비싸.”


익산 왕궁이 고향인 순덕 할머니는 빗소리와 함께 덤덤하게 인생을 입 밖으로 쏟아내신다.


내가 여섯 살 먹고 엄마를 잃었어. 아버지가 각시 얻어서 같이 살았지. 나도 고생 지지리 했네. 아버지가 술 마시고 나를 여기로 시집을 보냈어. 이게 좀 억울하대. 그땐 결혼 전에 사주를 봤거든. 남자네 쪽에서 사주를 봐갖고 옷감이랑 싸서 보내온거야. 그러니까 결혼을 안 할 수가 없지. 그래서 여기로 왔어.”


스물셋에 시집와서 아들 둘에 딸 셋을 낳았다. 남의 논밭을 빌려 나락농사를 짓고 길쌈을 하고 자식을 등에 업고 밥을 했다.



직접만든 꽃을 들고 자랑하는 소순덕 할머니



내가 시집 안 간다고 하니까 작은 아버지가 일단 가래. 가서 못 살겠음 다시 오라고. 하이고. 내가 그 말을 고지(곧이)들었어. 고생한건 말도 못해. 그래도 시어머니는 좋았어.”


순덕 할머니는 시집오기 전까지 갖은 바느질일을 했다. 그걸로 돈을 모았고 시집도 올 수 있었다.


내가 바느질 하나는 잘 혀. 젊을 때도 저거 입고 싶다하면 옷감에 빨간물도 들이고 녹색물도 들여서 만들어 입었어. 주름치마도 만들어 입고 깨끼저고리도 입고. 지금도 누가 옷을 사준다면 난 참 좋아. 자식들 어릴 때도 내가 옷을 다 만들어줬어. 지금도 바느질은 잘혀.”



비가 그치기 무섭게 일을 시작하는 소순덕 할머니.  항상 일하는 할머니의 손과 발은 늘 부어있다.



새벽부터 일벌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할머니는 이제야 신을 벗고 양말을 벗는다. 감춰있던 발이 드러난다. 고된 발. 그의 하루는 퉁퉁 부어있다.


일하고 오면 손도 간지럽고 붓고 그려. 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도 새벽 3신가 일어났네. 감나무 약 주고 집안일도 좀 하고 면사무소도 가서 일했어. 밭도 한바쿠 돌고 양파도 팔았고. 아 돈이 있어야 일을 안 하지. 나도 놀고 싶고 친구랑 야그도 하고 싶지. 자네도 자식 낳아봐. 자식도 지들 자식이 있는데 부모 신경 쓸 겨를이 있나. 친구가 그려. 내 몸은 20개는 되어야 한다고. 저녁에 집에 와서 누우면 못 일어나겠어. 그러니 밥을 굶고 잘 때가 많어. 그럼 새벽에 속이 어떻게 쓸쓸한지 몰라.”


할머니는 고산면사무소에서 하는 한글교실도 다닌다. 일주일에 두 차례. 요새는 양파를 팔아야 해서 많이 못 나갔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간다.


한글을 배우는데 이게 대가리로 안 들어가. 예전에는 면사무소나 우체국을 못 갔지. 한글을 모르니께. 근데 이젠 가. 버스도 타고. 아 그래도 나는 일이삼사는 했어. 백까지는 셀 줄 알았지. 근디 한글은 징그라. 하다가 공부가 안되면 이거 이제 배워서 뭐하나 싶고 화도 나. 요새는 양파 땜시 마음이 한갓지지 않아서 이거 팔고나서 핵교 가려고.”


나이 칠십이 넘어서도 손발이 붓도록 바쁘게 일하는 순덕 할머니. 지난 세월 할머니를 살아가게 한 힘은 다름아닌 자식이었다.


우리 자슥들, 손주들까지도 내 속을 섞이질 않어. 내가 고생한 걸 알거든. 우리 손주 한 놈은 장학금을 받아서 할머니 용돈하라고 십만원을 보내왔어. 그 돈으로 친구하고 순댓국 한 그릇 사 먹었네. 요새 사람들은 왜 자슥을 안 낳는겨? 우리는 자식 키우는 재미로 살았어. 요새 사람들 그러면 안돼. 자식은 사랑이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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