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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곁 안남마을] 딸 일곱 둔 딸부잣집 구연락·김이평 부부2017-07-03

[느티나무 곁 안남마을] 딸 일곱 둔 딸부잣집 구연락·김이평 부부

딸 일곱 둔 딸부잣집 구연락·김이평 부부

여든일곱, 여든셋에 여전히 연인 같은 눈길



구연낙(87)-김이평(83) 부부에게는 딸이 많다. 딸만 일곱. 부부에겐 첫아들을 먼저 보낸 아픔이 있지만 부부는 아픔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다만 침묵. 세월이 가도 무뎌지지 않는 아픔도 있다. 그것이 자식을 잃은 부모가 짊어진 무게다.


딸이 일곱이여. 아들 낳을라고 계속 낳았는데 딸만 나왔어. 아 옛날에는 나이 팔십까지 자식 낳았다 안혀. 딸이 많으니까 좋아. 엄마아버지가 작아서 가들도 다 작아. 아들 같으면 부모한테 손도 벌리고 헐턴데 딸들은 안해.”


이평 할머니는 열아홉에 화산면에서 인력거를 타고 안남마을로 시집왔다. 그때 연락 할아버지 나이가 스물셋.


사진만 보고 중매결혼왔지. 아저씨가 해병대였어. 각진 모자 쓰고 사진에 박혀있는데 멋졌지. 결혼날이 섣달(음력 12)이었어. 눈이 엄청 왔어. 겁나게 추운데 우리 할아버지랑 저쪽 할아버지는 걸어서 왔고 내우간만 인력거를 탔어. 우리만.”


김이평 할머니가 구연락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머리를 만져주고 있다. 노부부의 따뜻한 손길.



연락 할아버지는 44개월간 군생활을 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겼다. 그 시절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끝이 있었다.


내가 진해 쪽에 있었을 때여. 내가 아버지한테 장가가야것다그 말 했더니 군대로 편지랑 사진이 왔네. 내가 소대장한테 사진을 보여줬지. 그러니까 소대장이 휴가증을 주면서 돈을 좀 주더라고. 결혼 잘하라고. 나는 여태껏 그 보답도 제대로 못했어. 고작 곶감 열 개를 묶어 준 거 그거밖에 없어.”


먹고 살기 퍽퍽했던 시절. 그래서 사람들은 더 바지런했고 몸이 축나는지도 모르게 일했다. 부부도 그랬다. 이제는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지만 부부에겐 바지런함이란 이 박혀버렸다. 부부는 이날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논에 나가 일을 했다.


아저씨가 먹는 건 잘 먹어도 뼈가 아파서 지팡이를 짚고 댕겨. 젊어서부터 일을 많이 하셨어. 군인이었으니까 게다가 해병대였잖어. 그땐 안 맞으면 잠을 못 잤대. 이제 일 못한다고 맨날 말은 하는데 그래도 일을 해.”


부부는 이제 아파서 일 못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말과는 달리 몸은 습관처럼 논과 밭으로 향한다. 손에는 오래된 지팡이를 들고.


고추를 심었는데 원체 가물어서. 비 안 오면 못 먹게 생겼어. 주말에 비가 온다는데 월매나 오것어. 우리는 시대를 잘못 태어났어. 그때는 여자들은 시집살이도 심했고 먹고 사는 것도 힘들었고 일도 많았잖어. 자식 키우고 고생했던 건 말하면 끝도 없지.”



사이좋게 산책을 하는 노부부



부부는 사이가 좋다. 스스럼없이 손을 맞잡고 부끄럽지만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고된 세월을 온몸으로 함께 겪어낸 뜨거운 전우이자 아이들의 부모이자 사랑하는 사람.


이 마을에는 다들 나이 먹고 혼자 된 사람들이 많어. 우리 또래 중에는 우리만 부부가 함께 살어. 다들 먼저 가셨어. 우리 아저씨가 젊을 땐 다정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나이 먹고 귀 먹고 한 게 고함 지르고 해서 다투기도 해.”(이평 할머니)


우리는 나이를 많이 먹어서 이제는 죽는 게 제일 큰일이야. 사우들도 딸들도 우리 하루라도 더 살게 하려고 약이며 뭐며 다 사오고 참 잘혀. 내가 우리 안사람한테 나 죽으면 싸게 따라오라 했어.”(연낙 할아버지)


죽는 일이 그들이 치러야 할 가장 큰 일이라는 노부부. 논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골목길에서 기다리는 이평 할머니의 얼굴에서 감히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세월이 보인다. ‘죽을 만큼 힘들다면서, 그럼에도 살아지는 나날들을 지내온 그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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