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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행보] 時間富者_시간부자 <11>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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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마음처럼, 천천히 걸어서

 

호들갑스럽게 새해 다짐 따위를 하련다. 작심삼일이면 어떻고 뻔한 얘기면 어떠냐 내가 하겠다는데. 일터를 떠나오면서 챙긴 짐들이 아직 방 한 켠에 그대로 쌓여있고 언젠가 뭐라도 만들 때 쓰겠지 하면서 조금씩 주워서 모은 나뭇가지, 헌옷들, 얼핏 보면 쓰레기로 보이는 각종 잡동사니가 단칸방 여기저기에 굴러다닌다. 애써 외면한다. 저이들을 쓸모 있는 물건으로 만드는 게 새해 목표다. 이제 시간이 많아졌으니 사부작사부작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늘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성실함을 존경한다. 누구에게는 소속 없는 불안함보다 쉬운 선택이겠지만 이번에도 나는 실패다. 수십, 십 수 아니 그냥 수년씩 근속하는 분들도 대단하다. 내가 가장 오래 직장인이었던 시간은 3년 남짓. 내게는 입사 3개월 차가 되면 일이 재미없어서 못해먹겠는 증상을 시작으로 회사다니기 싫어 죽겠는 병이 도진다. 그래도 제 밥벌이는 해야하는 성인으로서 겨우겨우 임금노동자 생활을 계속하다보면 퇴근 후의 삶을 제대로 꾸려가지 못하는 반쪽자리 인간이 된다. 업무시간 중에도 썩 바람직한 모습의 사람이 아니다. 그 시간동안 위험한 내게서 도망치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감사를. 이번 사회생활 부적응 사태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예상했던 실패, 아쉬운 점이라면 매번 만날 때마다 예정된 저 병증들을 완화시키는 법을 몰라서 숱한 상처들을 주고받으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도 또 만날 테고, 여전히 아픈 시간을 보낼 테지. 어쨌건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자.

 

생활비에 대한 걱정이 없고, 시간이 남아도는, 아주 가끔 짧은 주기로 찾아오는 내 인생의 황금기. 우선 바스러진 몸을 돌볼 계획을 세운다. 스트레칭과 맨손체조로 홈트레이닝을 할만큼 훌륭한 사람이 못 되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체육관까지 갈 교통수단이 애매하니 중고차도 산다. 운동량을 자동으로 셈해서 체중관리도 해주는 각종 전자기기들을 사들인다. 이러려고 돈을 벌었다. 쓰고 싶은 곳에 돈과 시간을 쓰는 취향 소비. 그렇게 지난 직장생활로 모은 가산을 탕진하고 저자본 무소득 저소비 생활자로 지낼 채비를 했다. 그래도 내게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시간을 들여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골라서 한다. 싫어하는 일은 조금씩 시간을 더 들여서 질리지 않을 만큼씩만 한다. 베란다에 설치했다가 실패한 새들의 쉼터도 다시 만들고 싶고, 다 써가는 치약과 콩향초도 만들어야 한다. 나뭇가지로 만든 옷걸이도 매끈하게 마감 작업을 더해야한다. 헌 옷으로는 책상다리에 신길 양말과 빨래통과 씽크대 밑에 깔 매트를 짜고 싶다. 붙박이장 안에 전등도 달고, 화장실 환풍기도 직접 교체하고 전등과 하나로 물린 스위치도 분리해볼 작정이다. 보일러 청소도 해보고 싶다. 내 하소연을 들어주느라 고생했던 친구들에게 마음을 담아 손편지도 쓸 것이다. 심심할 시간이 없다. 할 일과 손 갈 곳 투성이다.

 

기성품을 사는 대신 품을 들여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줍거나 얻거나 뺐는다. 술과 담배를 산다거나 도시로 영화를 보러나가는 등 돈이 들어가는 행동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다.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는다. 위에 적은 일들은 다 하고 싶은 일들이니 하면 즐거워지는 취미생활 같은 것.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보고 음식은 직접 해먹는다. 돈 대신 시간을 쓰면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지금 있는 돈으로도 몇 달은 버틸 수 있다. 살 공간을 돌보면서 이런 백수 생활을 해본적은 없지만 떠돌이 백수 경력이 있으니 이번 도전과제도 궁리하면서 적당히 살길을 찾을 거다. 천천히 걸어서, 처음 마음을 기억하면서

 

 

 

/바닥 (badac) 이보현

귀촌인.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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