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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이의 청년일기-3] 요리 본능2016-12-06

[남현이의 청년일기-3] 요리 본능


요리 본능
언젠가는 혼자 해내야 할 것들에 대한 소고


부인과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바깥양반의 거드름을 피우는 시대는 갔다. 아쉽게도.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지 말자. 이제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요리본능을 일깨울 시간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혼자 만들어 먹어야 할 것들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고산 상륙 일주일차, 가히 배달음식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였다. 아마 이곳이 여느 도심과 같았다면 이 배달음식들로 요리본능을 잠재웠을 것이다. 그런데 여긴 근처 구멍가게를 가려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자장면, 피자, 치킨.. 그들의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차선은 주식을 바꾸는 것이다. 저장성과 포만감을 극대화한 주식을 찾아야한다. 처음 간택된 녀석은 막걸리였다. 취하기 전에 배가 부르고, 배가 부르니 힘이 나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그 놈은 심히 밤낮을 가렸다. 낮에 먹는 녀석은 나에게 잠을 선사했고, 그렇게 하루가 갔다. 다른 주식이 필요했다.


그렇다. 난방을 위해 설치한 구들과 벽난로를 활용하자. 기발한 생각이라 생각했다. 감자를 굽고, 고구마를 익혔다. 오호. 탁월한 선택이다. 따뜻하고, 밥과 제일 유사하며, 무엇보다 한 번 장만하면 언제든 두고 먹을 수 있었다. 행복했다. 삼일정도.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공복감이 밀려왔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빵 조각에 스프 한 그릇으로 먹고사는 코쟁이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따뜻한 밥에 뜨끈한 국물, 거기에 갖은 제철반찬을 먹어야 비로소 먹었다는 생각이 들다니. 처음으로 어릴 적 할머니가 날 키운 것을 원망했다. 결국 밥과 반찬을 먹는 생활로 돌아가기로 했다.







밥은 쉽다. 맨 날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반찬이다. 모든 것을 사먹거나 얻어먹을 수는 없다. 결국 왕도는 하나씩 하나씩 배우는 것이었다. 일단 농사를 지으니 먹고 싶은 것을 심으면 된다. 닭을 키워 달걀을 얻고, 콩을 심어 메주를 만들어 된장, 간장, 고추장을 만든다. 배추와 무를 심고, 생강심고, 마늘심고, 고추심고, 등등 심어서 김장도 하면 된다. 말은 너무 쉽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세치 혀를 놀리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닭을 구했다. 암탉 2마리에 수탉 1마리. 고맙게도 매일 알을 하나씩 낳고 있다. 그리고 메주를 만들었다. 올해는 콩을 샀다. 내년부턴 콩으로 메주를 만들거다. 엉성한 화덕에서 메주를 무려 8시간이나 삶았다. 역시 배우지 못하면 몸이 고생이다. 김장을 배웠다. 가서 열심히 사진 찍고, 물어보고, 말과 행동을 옮겨 적었다. 그런데 차마 김장까진 하지 못하겠다. 아직 내가 농사지은 것이 없으니, 하지 않는다는 변명을 남기고 물러섰다. 그렇게 하루에 2끼, 매일 2시간의 식사준비와 20여분의 흡입시간을 갖는다. 마치 의식처럼 정시적이고 필사적이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다. 밥을 하고, 배추를 얻어와 배추 전을 부치고, 국을 끓인다. 요리본능이 살아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무언가에 치이다보면 저녁시간은 항상 8시 이후다. 그래도 밥을 먹으니 몸이 따뜻하다. 시절이 수상해 추운 날 밖에 나갈 일이 많은 요즘, 밥이라도 챙겨먹으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밥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엄동설한을 이기려면 밥심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남현(올해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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