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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자 할머니의 77년 인생레시피, 두부2016-12-06

우계자 할머니의 77년 인생레시피, 두부

우계자 할머니의 77년 인생레시피, 두부

화산 손두부 우계자 할머니

 

 

콩을 하루 정도 물에 불려 적당히 삶은 다음 잘 뭉개서 비지를 걸러내고 남은 콩물에 약간의 간수를 섞어주면 단백질이 응고 되서 순두부가 되고 그것을 잘 눌러서 물기를 빼주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두부가 된다. , , 간수.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두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간단한 레시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지간해선 두부를 만들어 먹지 않는다. 세상엔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일들이 많다. 두부 만드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여름철에는 두부 만들기 진짜 힘들어. 콩 삶는데 열기도 엄청나고 만들어 놓은 두부가 빨리 상하기도 하고.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서 전날 불려놓은 콩을 갈아서 솥에 삶은 다음에 쌀자루에 넣고 짜. 그 전에는 쌀자루가 없었어. 그래서 월남전 참전 했던 사람들이 거기서 쓰는 모기장을 가지고 들어왔어. 그 모기장을 사다가 자루로 만들어서 그걸로 짰었지. 두부 한 판(스물 네모) 만들고 찌개 끓일 순두부 만들어 놓고 그리고 점심장사 준비하지.”

 

살기 위해 시작한 두부


화산 순두부집 우계자 할머니(77)는 매일같이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두부 만드는 일을 46년째 하고 있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살다 화산 사는 친구 따라 잠시 내려왔다 이곳에서 가정을 이뤘다고 한다.

 

여기 완전 깡촌이었어. 이 앞에 도로가 있었간디. 도시에서 살다가 어쩌다 여기로 시집을 왔는가 울기도 퍽 울었어. 광에 가도 아무 것도 없어, 보리쌀도 없고 쌀도 없고. 그래서 산에 올라가서 나무 해다가 팔고 넘의 땅 빌려다가 농사 지어 먹고, 농사도 어디 지어 봤간디? 여기와서 징그럽게 지었지. 도망가려고도 했었지.

22살에 시집와서 23살에 첫 애를 낳았는데 아기를 낳으니까 불쌍해서 못 나가겠더라고. 우리 큰아들이 지금 쉰 네 살인데, 그 아들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46년 됐네. 불을 뗄라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는데 나무가 어디 있간디. 떨어진 솔가지를 주어다가 쏘시게 해서 불 지피고 가마솥에 끓여서 두부를 만들었지. 만들어다가 화산면 주막에다가 다 내다 팔았어. 머리에 두부를 이고 지고 등에는 아이 업고는 십리 길을 걸어 다니면서 두부를 팔았어.”

 






46년 전 그 부엌에서 지금까지


할머니가 살아낸 46년을 이곳에 다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그 고생과 곡절을 짐작만 할 뿐이다.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일은 두부장사 뿐만이 아니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기도 했고 남의 땅 부쳐서 농사도 지었고 논산에서 과일을 떼어다 팔기도 했고 몸이 아파 두부를 만들기 어려울 땐 찐빵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고 한다.


간식거리도 변변치 않던 시절 우계자 할머니가 만들어 내는 별모양 찐빵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따로 가게를 내고 판매를 한 것도 아니었다. 아궁이 불 떼는 부엌에서 방금 만든 찐빵을 소쿠리에 담아 놓으면 지나가는 학생들 청년들이 찐빵을 사기 위해 집 부엌 뒷길로 길게 줄을 섰다고 한다. 찐빵을 기다리는 사이 동네 처녀총각들이 찐빵을 사먹으며 눈 맞추던 연애장소이기도 했던 그 부엌. 46년이 지난 지금, 부엌은 그 모습 그대로다.


우계자 할머니의 둘째 딸 국경순씨는 7년째 전주에서 화산을 버스로 오가며 어머니의 일손을 돕고 있다. 그녀의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부엌은 뛰어 놀 만큼 컸다고 한다. 마흔이 훌쩍 넘은 딸과 여든이 되어가는 어머니가 들어가 앉은 부엌은 그 사이 많이 늙었다. 46년 전 그대로 아직도 그 아궁이 가마솥에 콩을 삶고 콩 물을 끓인다. 두부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듯이 할머니의 인생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7년째 전주와 화산을 오가며 일손을 돕고 있는 둘째 딸 국경순씨.


어떤 사람은 나보고 지독하다고 그러더라구. 서울사람이 와서 여기서 못 살 줄 알았는데 그래도 살아낸다고. 참 대간하게 산다고. 두부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살아졌지.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먹고 살아야 하니까 했는데 어느 순간에는 재미있더라고. 매일 같이 만드는 두부지만 볼 때마다 신기해. 콩이 어떻게 이렇게 두부로 만들어 지는지 참 신기해. 힘드니까 자식들이 이제 두부만 하라 그래. 근데 손님들이 찾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래서 찌개백반을 계속 파는 거지.

 내가 억척스러웠어. 화산면민의 날에도 씨름대회랑 팔씨름대회도 나가고 2등도 하고 그랬어. 머스마라고 할 정도로 힘도 셌고 억척스러웠어. 부자는 못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고 있고 힘들어도 내 하루 일당은 버니까 괜찮아.”

 

정직한 맛 찾아오는 사람들


할머니의 두부집엔 단골손님들이 많다. 화산 순두부집 간판에는 그 흔한 원조라는 글씨도 없고 메뉴도 단출하지만 손님들은 다 안다. 농사지은 콩으로 가마솥에 불을 때서 할머니가 직접 손으로 두부를 만들고 그 두부로 찌개를 내오고, 그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인생의 레시피는 있다. 그것은 쉐프들이 말하는 레시피와는 다르다. 우계자 할머니의 두부에서 두터운 인생의 레시피를 배웠다. 두부는 순하고 여린 음식이지만 가족을 먹여 살린 음식이었고 큰돈을 벌게 해주진 못했지만 그 맛을 잊지 못해 고개 너머 먼 길을 찾아와 할머니의 두부를 찾는 단골들의 신뢰의 음식이었다.


 


순두부찌개에 들어가는 다섯가지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넣고 끓여 낸다.


두부 잘 만드는 방법은, 이것 하나만 잘 하면 돼. 두부를 하면 버큼이 많이 나잖아. 삶은 콩을 갈아서 가마솥에 끓일 때 버큼이 많이 나. 그 버큼을 없애줘야 좋은 두부가 되는 거여. 여산 두부공장에서 보니까 콩물이 부르르 끓어오를 때 뭘 붓더라고. 물어보니까 안 알려줘. 그래서 내가 집에 와서 만들면서 연구를 했지. 해보니까. 쌀겨 있지. 예전에는 쌀겨로 사카린 넣고 개떡도 해먹기도 했지. 먹을 것이 없으니까. 그런 쌀겨를 누가 그러는데 버큼을 사르라뜨린다는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 버큼 가라앉힐 때 쌀겨를 채에 걸러서 뿌리지.”

 

할머니는 두부를 맛있게 만드는 비법 한 가지를 말해 주셨다. 하지만 비법은 비법일 뿐. 비법을 몰라 맛있는 두부를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답은 인생의 레시피에 있을 것이다. 누구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46년간 써온 할머니의 인생 레시피. 화산면에 오시거든 우계자 할머니의 화산 손두부를 꼭 한 번 맛보시기 바란다. 손님 없는 한가한 시간에 들리시거든 순두부찌개 한 그릇 주문해 놓고 할머니가 콩 삶으며 불 때던 아궁이 앞에 앉아 오랜 세월 할머니의 인생 레시피를 떠올리며 당신에게도 있을 인생의 레시피를 한 줄 한 줄 마음속에 기록해 볼 수 있다면 더 좋고.

 

 /글사진 =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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