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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 그 주인들] 현떡방앗간 조현영-한현숙 부부2016-12-06

[오래된 것, 그 주인들] 현떡방앗간 조현영-한현숙 부부


간판이 세월을 말한다. 장장하게 붙어있던 전화번호의 숫자도 하나둘 떨어져 이제는 네 자리의 숫자만 남았고, 방앗간이란 글자도 성하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현떡방앗간은 살아있다. 곡식 빻는 기계가 돌아가고,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40여년이란 가늠할 수 없는 시간동안 조현영(84)-한현숙(81) 부부는 한결같이 이 자리를, 이 공간을 지키고 있다.


현떡방앗간이 처음부터 방앗간은 아니었다. 1973년께 부부가 전주에서 삼례로 온 후 처음 이 자리에서 문을 연 것은 전업사였다. 이후 사람을 두고 미장원을 운영하다 중화요리 전문점을 했고 잡화상을 거쳐 철물점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의 방앗간을 열었다.

장사하는 사람은 남 안 속이고 할 수가 없어. 남 속이기 싫은 마음으로 장사를 하니께 뭘해도 장사가 안되는 거여. 그러다 내가 돌아다녀 보니까 방앗간은 남이 가져온 걸 그대로 가공만 해주는거더라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이 없겠다 싶었어. 그래갖고는 방앗간을 시작한거여. 상대방에 상처가 안가고 남을 속이지 않는 거.”



시간의 더께를 고스란히 입은 기계들.


삼례 구시장에 위치한 현떡방앗간. 과거에는 이 인근이 시장의 중심이었고, 익산 왕궁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사람이 많았고 장사가 잘됐다. 지금 방앗간이 있는 이 거리는 과거 술집이 많았다.

여 앞에 대구집이 있었고 옆에는 신성여관이랑 통정하숙집이 있었어. 이 방앗간도 원래는 신풍옥이란 술집이었어. 우리 방앗간기계 있는 곳 있잖어? 거기가 옛날 신풍옥의 홀이었지. 사람들 노는. 그걸 내가 새로 했어. 근디 이 집이 원체 고가(古家)라서 짜그라지더라고. 그래서 또 다시 했어.”


오가는 사람이 많았고, 집에서 떡을 해먹던 시절이니 방앗간도 당연지사 장사가 잘됐다. 특히 명절 때면 쉴새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잠도 못 자고 밥 먹을 시간도 없던,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영광스러운 시절. 불을 떼서 솥단지를 걸어놓고 쌀을 쪘고, 만들어진 떡은 각자 집으로 가져가 직접 썰어먹었던 때다.

옛날에 바쁠 적에는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렸지. 명절이면 우리 때부자 됐어. 한 백만원 벌었던가. 지금은 한달 내 해도 십만원 못 벌어. 옛날처럼 집에서 떡을 해먹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다 사먹잖아.”



정직하게 한 평생을 살아온 조현영-한현숙 부부. 부부의 겨울은 늘 따뜻하다.



요즘은 손님보다도, 동네 이웃들이 서로 어울리기 위해 현떡방앗간을 찾는다. 모여서 재미화투를 치기도 하고 수다를 떤다.

우리가 방앗간 주인이 될 거라 어디 상상이나 했겄어(웃음). 이젠 힘들어서 못해. 여긴 돈은 못 벌어. 우린 고지식해서 거짓말도 못하거든. 몸도 약해서 장사 하도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는거야. 그래도 요새는 김장철이라 가끔 누가 와서 고추도 빵구대. 기냥 여기는 양로당이야. 매일 7~8명 썩은 놀러와. 사람들이 안 오면 우리가 심심해. 인자 습관이 된 거 같아. 이제 외따로 못 살어 우린.”


남을 상처 주지 않고 속이지 않기 위해방앗간을 시작한 노부부. 그들의 고운 심성 덕분인지 그들 주변에는 늘 좋은 사람들만 있어왔다. 서로에게 좋은 가족이자, 좋은 이웃.

방앗간 초반에 실수해서 남한테 값을 물어준 적은 있어도 돈 안내고 도망간 사람은 하나도 없어. 싸움하는 법도 모르지만 그 사람들도 그랬어. 평생 싸워본 일이 없어 우린.”


어느새 밖이 어둑해졌다. 현떡방앗간에도 불이 밝혀진다. 그 빛이 참으로 따뜻하다. 이제는 사람 온기가 없는 곳에서 홀로 살 수는 없다는 노부부. 그것이 그들의 겨울이 따뜻한 이유다. 자신들을 잊지 않고 방앗간을 찾아오는 이웃들의 온기 덕에 겨울이 따뜻할 것이라고, 노부부는 그리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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