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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 반곡마을 산책] 수십년 보따리 싸들고 중앙시장가는 유말순 할머니2016-06-08

[소양 반곡마을 산책] 수십년 보따리 싸들고 중앙시장가는 유말순 할머니

 

"훌쩍 커버린 아욱 상추 내쑬 수 없어 보따리 싸"

버스 타고 전주중앙시장으로 채소 팔러 나가는 유말순 할머니

 

 

아침부터 볕이 뜨겁다. 유말순(79) 할머니는 볕을 피해 경로회관 건물 그늘 아래에 있다. 아스팔트 바닥 위에. 말순 할머니가 보따리를 싸들고 시장에 가는 건 열흘 만이다. 오늘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텃밭에 심어놓은 상추와 아욱을 뜯어 보따리를 쌌다. 그리곤 마을로 들어오는 단 하나의 버스인 839번을 타러 집을 나섰다. 버스가 오는 시각은 오전 933. 할머니는 30분이나 일찍 집에서 나섰다.

 

쪼깐해서부터 팔았응게 언제부터 팔았는가 모르지. 아욱이나 상추가 너무 크면 가. 그런데 아이고 그것도 안 갈라고 하는데 돈도 되질 않아. 잘해야 돈 만원이여. 키워서 내쑬순 없잖아. 아까우니까 가는거여 돈도 안 나오는데. 보따리가 돈 나올 거 하려면 여러가지를 더 해야는데 내가 기운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여. 일주일에 뭐 가는 것도 아니고. 커가지고 내쑤게 생겼으면 가. 저번에 댕겨오고 나서 한 열흘 되얏지.”

 

오늘도 말순 할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전주중앙시장으로 나가신다.

 

말순 할머니는 반곡마을에서 태어나 열아홉에 진안으로 시집가셨다. 진안에서 딸 둘을 낳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식 넷을 더 낳았다.

그때만 해도 진안에 돈벌이가 없어서 그래서 왔는디. 별것 다 했지. 시방은 인자 영감도 없고 내가 (농사를) 짓도 못하니까. 텃밭 그것이나 좀 하고. 그러지 뭐. 돌아 당기면서 뭐 허들 못해. 오래 못 걸어간게.”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할머니는 보따리를 싸셨다. 그리고 전주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을 키워야했고, 먹고 살아야했다.

나는 중앙시장만 가. 시방도 모래내 시장이 사람이 많고 팔기가 좋아도 안 가본 데라 못가. 안 가본 데 가면 하나도 못 팔어. 그래서 다신 안가. 영영 안가. 거기를.”

유말순 할머니가 자신의 텃밭에 앉아 계신다.

 

그때도, 지금도 푸성귀를 팔아 돈을 벌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60여년간 시장을 향했다.

오늘도 병원서 8만원인가 쓰고 왔어. (링겔) 매달고 그거 주사가 얼마고 여기다 맞는 게 얼마고 약 지어갖고. 그렇게 돈을 써야혀. 맨 쓸데여. 뭐 사다 먹어야 되고. 나는 과일을 안 먹으면 혓바늘이 돋아서. 그런 게로 먹어야혀.”

 

할머니가 시장으로 향하는 발이 되는 839번 버스. 하루 6차례, 마을에 들어오는 유일한 버스다.

옛날엔 버스 55번만 3대가 댕겼어. 근디 한대는 빼가지고는 차 시간이 드물었어. 여기가 손님이 많지도 않으니 차를 더 오라고도 못하고. 그렇게 살았지. 지금도 하나 떨구면 넋을 놓고 기달려야 되야. 겁나게 그냥. 미쳐 죽을 때 있어 그냥. 안 와서 차가.”

 

할머니는 늘 비어있는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오신다. 다 못 팔았을 적엔 남은 채소를 사람들에게 그냥 나누어 주신다. 늘 그래왔다.

시장서 집에 올 때 어떤 때는 2시 반 차 타고 와. 일찍 못 팔을 때면 4시 반 차 타고 오고 그래. 안 팔리면 그냥 주고 와. 먹으라고. 싸들고 올라면 힘들어서 못 싸들고 오거든. 그냥 먹으라고, 상추 먹을라냐고 물어봐. 사람들한테 줘 그냥. 그러고 살지. 더럽게 돈 받으려고 더 받으려고 그런 승질이 아니여. 주는 대로 하고 사는 대로 살고 그러지.”

 

인사를 하고 떠나는 어린 객에게 할머니가 검은 봉지를 건네신다. 아욱과 쑥갓이다. 아니, 이것은 할머니의 바지런함이다. 할머니의 목소리이자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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