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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 반곡마을 산책] 제자리 색시 유오목 할머니 2016-06-08

[소양 반곡마을 산책] 제자리 색시 유오목 할머니

"여그서 나고자라 늙었어, 87년 평생을"

제자리 색시 유오목 할머니

 

유오목 할머니(88)를 처음 뵈었을 때 곱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운 피부, 굽지 않은 허리, 조용한 목소리. 할머니는 막 삼밭에서 일을 마치고 오신 길이었다.

삼밭 매고 왔어. 저 밑에 있어. 마을 밑에. 일하고 왔어.”

 

평생이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오목 할머니는 반곡마을과 함께 했다. 남편은 아래 마을 출신으로 할머니 나이 열일곱에 이 집의 데릴사위로 들어왔다.

우리 아버지가 아들이 없어 데릴사위 했어. 그 양반들 다 돌아가셨어. 친정 사람들은. 남자도 돌아가시고 영감도 돌아가시고. 나는 오남매 중 둘째야. 딸만 너이 낳고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는디 잊어버리고 딸만 넷을 키웠어. 데릴사위로 해서 남자를 우리 집으로 데려 왔지. 그렇게 살다가. 다 돌아가시고 없어.”

 

만으로 팔십칠년, 할머니는 여전히 반곡마을에 산다. 둘 있는 여동생은 마을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갔다. 할머니는 어릴 적에도, 결혼 후에도 가끔은 이 마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마을 떠나고 잡지. 근데 워낙 범위가 커서 누가 사들 않어. 논밭이. 범위가 커서 안 팔링게 못 가. 몰래 도망치는 생각? 그런 생각도 못혀. 우리 아버지가 엄해서 어디 가도 못허게 해서 여기서 커서 여기서 시집가서 살은거여.”

 

할머니 큰아들이 마당 안에 있는 화단에 물을 주고 있다.

 

할머니는 다섯 자녀 중 큰 아들 내외와 함께 산다. 지금 이들이 사는 집은 할머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아버지가 살던 집이다. 할머니 인생에 있어 집은 이것 하나다.

이 집에서 계속 살았지. 이게 우리 아버지 집이여. 이 집에서 평생 살았지. 집을 새로 지었지 인자. 터는 그대로 우리 아버지 것이고. 아버지랑 우리 엄마랑 같이 산 것이지. 시어머니도 모셨어. 이 집서 같이 살았지.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고. 시아버지 없는 데로 시집을 간거여. 동생들도 같이 살았어. 북적북적했어.”

 

동네에는 할머니와 함께 늙어가는 친구들이 있다. 진안으로 시집간 말순네도 일찍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말순이하고 저 위에 사는 사람하고는 여기서 나서 여기서 컸어 다. 나하고 서이는 다 여서 큰 사람들이지. 동네 사람들은 다 친해. 같이 늙잖어. 같이 커가지고.”

 

해가 저물어간다. 할머니는 집 앞 마당에 앉아계신다. 팔십칠년이란 세월 동안 늘 같은 자리에 있어온 그. 이곳에서 그는 몇 번의 저무는 해를 보았을까.

이 동네는 그대로여. 집들만 새로 지었지. 초가집에서 집들만 새로 지었지. 그 전에는 다 초가집이었어. 저 집 앞 모습 같은 건 그대로여. 허리아파 죽겄네. 내일은 저 깨밭 가서 매고 와야지. 내일 다 해고 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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