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또다른 이름, 가족] 운주 완창마을 구순 부부의 가족애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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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운주면 완창리 호성골 인근 끄트머리 집 마당에서 20살 남자와 18살 여자가 결혼식을 올렸다. 수줍음에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던 어린 부부는 이제 다섯 아들에 손자손녀까지 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다. 그 사이 이가 빠졌고, 걷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그들 곁에는 여전히 서로가 있다. 74년을 늘 한결같이 서로의 옆에 있어준 임병덕(93)-김미자(91) 부부.
미자 할머니는 아래윗집에 살던 시누이 남편을 통해 지금의 남편을 소개 받았다. 둘의 인연은 그때부터였다.
“고향 진산(충남)서 되지게 걸어와 광두소(운주면 산북리)서 가마 보내준 거 타고 여 왔어. 시집가라고 집에서 떠밀어서 온거지.”
수십 년을 부부로 살아오면서 이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고비는 다섯 아들을 키울 때였다. 그땐 누구든지 사는 게 힘들었다. 자꾸 커가는 아이들 먹을거리, 입을거리 등을 챙기느라 한 세월이 갔다.
“젖 먹이고 애 키울 때가 힘들었지. 젖이 좋아서 애들 볼따구가 토실토실 올라왔었어. 다들 이쁘다고 서로 업어가고 그랬네.”
부부에게 70여년을 해로한 비결을 물어봤다.
“우린 그래도 싸우질 않고 그렇게 잘 살아. 아내한테는 내가 발칙한 사람이야. 저 사람이 잘해.”(임병덕)
“요 앞이나 뒤에 과부들이 많어. 근데 나는 남편이 있잖어. 서로 나빠도 살아야지. 저 양반이 인정이 많아.”(김미자)
임병덕 할아버지는 젊을 적 동네 멋쟁이로 통했다. 백바지에 백구두를 자주 입고 신으셨다.
노부부가 나란히 카메라 앞에 앉았다. 자식들 결혼식 때 사진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찍었으니, 수십 년 만에 선 카메라 앞이다. 닮으셨다는 질문에 ‘오래 살아서 그려’라고 대답하는 노부부. 병덕 할아버지는 ‘사랑’의 정의를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내리신다. 그리곤 얼굴에 쑥스러움이 번진다.
“우리가 꿀떡꿀떡 오래도 살았네. 우리가 결혼한 지 70년이 넘은 건 명이 길어서 그려. 요새 젊은 사람들은 짧게 산다고도 하는데 우린 그러진 않았어. 암, 제일 친하지.”
병덕 할아버지가 옆에 앉은 부인 미자 할머니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리신다. 제일 친한 친구이자 제일 가까운 사람. 이 노부부를 두고 우리는 가족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