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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마을 산정마을] 짐승도 구름도 쉬어가는 깔막 마을 2016-04-05

[봄의 마을 산정마을] 짐승도 구름도 쉬어가는 깔막 마을

 

 

봄바람 휘날리면~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에 꽃이 피네

구름도 쉬어가는 산정마을

 

완주 상관 면소재지에서 임실 관촌으로 향하는 슬치고개 아래, 전주남원국도를 벗어나면 꽤 넓은 터와 가파른 경사를 가진 마을이 나타난다. 임실로 넘어가기 전에 만나는 완주군의 마지막 마을 산정마을이다. 이곳에는 65세 이상의 할머니·할아버지 30여 가구가 산다. 주로 고추 농사나 콩, 팥을 심는 이곳은 전주 이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마을 뒤 임도로 향하면 만날 수 있는 비탈진 밭. 이인구 할아버지 내외가 퇴비를 내리고 계신다.

 

깔막(언덕)에 있는 마을

마을은 지대가 높다. 전주보다 목련이 7~10일 가량 늦게 핀다. 마을 초입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가 꽤 높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오르내리기엔 벅찰 정도다. 그래서인지 마을 어르신들은 노인 보행기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만나는 모든 어르신의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져 있다.

겨울에 눈 오면 그날그날 바로 쓸어야해. 얼어버리면 노인들은 집밖으로 나가들 못하거든. 근데 마을이 언덕에 있지만 옴팍하고 동네 자체가 정남향이라 따뜻혀. 눈도 오면 바로 녹고.”(이덕구·72)

 

마을의 막내 이범구씨가 경운기를 타고 언덕을 오르고 있다.

 

언덕을 오르는 경운기가 뒷걸음질 치다 다시 천천히 오르기 시작한다. 이평구(76) 할아버지는 그렇게 마을 뒤에 있는 밭으로 향했다.

누가 우리 마을에 오면 여긴 대체 뭐 먹고 사냐고 물어봐. 앞에서 볼 땐 밭이 없거든. 근데 저 뒤로 가면 밭이 겁나(많아).”(이인구·72)

 

집들을 지나 마을 꼭대기에 다다른다. 그리고 뒷길 임도로 향한다. 어르신의 말씀대로 숨어 있던 밭들이 나타났다. 밭 위에 놓인 비료 포대가 봄볕 아래 나른하게 누워있다.

옛날에 논 200마지기가 우리 마을에 있었어. 논농사도 많이 지었지. 근데 전부 광양선나면서 사라졌어.”(이용옥·81)

 

마을 뒤 밭으로 향하는 길, 그 아래 전주광양간 고속도로가 훤히 보인다. 반대편에서는 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경운기가 힘을 쓰고 있다. 밭으로 후진하는 경운기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덜컥거리는 소리를 낸다.

농사가 깔막 밭이라 평지보다는 힘들어도 그래도 괜찮어. 다른 밭은 여기보다 더 비탈도 하는데 뭘.”(송준순)

 

 

봄나물 올라오는 밥상

4월이 되기 전, 마을 경로회관은 2명씩 짝을 지어 점심 당번을 한다. 이날 점심 당번인 박영자 할머니는 집 앞 마당에서 돌나물을 캐고 계셨다.

여긴 마당에 있는 게 다 반찬이야. 요새 같으면 돈()나물을 캐기도 하고 상추 뜯어다 먹기도 하고. 봄이 오니 먹을 게 지천에 있어. 여긴 자급자족이 돼.”(박영자·72)

 

박영자 할머니가 집앞 마당에서 돌나물을 캐고 계신다.

 

오늘 점심 식단은 돌나물과 고등어조림, 갓 담은 깍두기, 밭에서 가져온 상추와 집 된장. 그리고 누군가의 생일이라며 사온 튀긴 굴비도 있다. 입안에 들어온 나물 향에 문득 봄을 느낀다.

매일 밥 짓는데 쌀 3kg씩은 들어가나벼. 우리는 11시 반이나 되면 여기 다 모여서 밥 먹거든. 같이 먹으면 좋지.”(이예분·73)

 

어미를 재촉하는 봄

마을 초입의 경사진 밭, 김영권(80) 할머니는 마른 땅에 앉아 호미질을 하신다. 다 구겨지고 뒤축이 무너진 운동화를 신고 할머니는 봄을 맞을 준비를 하신다.

풀떼기 씨가 떨어지면 이렇게 땅에 퍼져. 그럼 밭에 나와 호맹이(호미)질 해야혀. 농사 조금이라도 해야 우리 애들들 주지.”

 

아직은 차가운 아침 공기, 할머니는 봄을 맞이하는 땅을 일군다. 끝이 벼린 바람, 두터운 덧신은 그가 마지막 추위를 내치는 유일한 무기다. 열아홉에 이 낯선 동네로 이사와, 여든 둘이 될 때까지 그는 수십 번의 봄을 맞이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지금도 새 봄을 기다리고 있다.

 

김영권 할머니가 풀을 매다 잠시 쉬고 계신다. 바지런한 어미의 봄이 왔다.

 

6남매를 제대로 갈치지(가르치질) 못한 못난 어미라, 그래도 훌륭하게 커준 자식들이 용돈이라도 준다 하면 너무 미안시러워(미안해서) 콩이라도 심고 팥이라도 심어 팔아야 한다.

어미에게 봄이란, 무릇 그런 것이다. 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해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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