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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길목 산정마을] 백발에 허리 굽은 할머니는 아직도 열여덟 소녀2016-04-05

[봄의 길목 산정마을] 백발에 허리 굽은 할머니는 아직도 열여덟 소녀

백발에 허리 굽은 할머니는 아직도 열여덟 소녀

최고령 유말례 할머니

 

풀이라도 매야 앉은뱅이 안 되지

오래된 호미 들고 텃밭으로 나가

 

유말례 할머니는 산정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시다. 올해 아흔넷.

 

유말례(94) 할머니는 산정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시다. 자신을 닮은 오래된 호미를 들고 집 뒤 작은 텃밭에서 풀을 매고 계신 할머니를 만났다. 짧은 백발에 기역()자로 굽은 허리. 할머니는 올해로 아흔넷이다.

나 허리가 완전 구부러졌어. 아들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렇게 나와 풀이라도 안 매면 앉은뱅이 돼버리니까 이거라도 해야 해.”

 

전주 초포가 고향인 할머니는 열여덟에 산정마을로 시집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8남매를 낳았다.

시집오니 이집에 8남매가 있더라고. 나도 8남매를 낳았어. 시집오고 시아재(시아주버니)들 고등핵교 보내고 대학 공부하는 거 뒷바라지 하고 그랬지. 그땐 나 2시간도 못 잤어. 우리 시엄니도 일만 많이 하셔가지고 허리가 지금 나처럼 구부러졌었어.”

 

시집온 어린 새댁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를 했다. 쉴 틈 없는 집안일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어린 할머니는 집이 아닌 밭에 나가고 싶었다.

호맹이(호미) 들고 밭 매는 게 그땐 제일 좋았어. 식구들 먹을 밥하고, 밭일 할 때 먹일 새꺼리(새참)해서 들고 가고. 잠잘 시간도 없었어.”

 

예전에는 자식들이 쓰던 방들은 이제는 기울어진 창고방이 되었다.

 

마을의 초입, 언덕 경사가 가파르기 전 평평한 땅에 할머니의 집이 있다. 지금은 창고처럼 쓰이는 기울어진 오래된 방. 예전에는 아들들이 쓰던 방이었고, 딸들이 쓰던 방이었다. 지금은 이 집에 할머니 혼자 산다.

이 집()서 이젠 나 혼자 살아. 예전엔 복작거렸지.”

 

풀을 매다만 할머니는 면장갑을 벗으신다. 그 속에 구깃거리는 비닐장갑이 나온다.

풀이라도 매고 나면 손이 시커매져. 그 손으로 교회 갈라치면 좀 그렇잖어. 그래서 이거 끼고 위에 장갑 끼는 거야.”

 

(위) 면장갑 속에 낀 비닐장갑. 손이 시커멓게 되는 걸 막는 할머니는 방법이시다.

(아래) 호미처럼 허리를 구부리시고 풀을 매시는 할머니.

 

할머니의 나이를 여쭤본다.

나 나이 많아. 부끄러워서 말 못혀.”

 

열여덟의 풋풋한 그녀는 어느새 아흔넷이 됐다. 자신도 모르게 들어버린 나이가 부끄럽다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소녀가 보인다. 그리고 할머니는 다시 허리를 숙이신다. ‘날이 따술(따뜻할) 풀도 매야 한다며. 손에 든 호미처럼 할머니의 허리가 다시금 구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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