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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회관에서 1박2일] 끼니마다 함께 먹고 자는 곳2016-02-11

[경로회관에서 1박2일] 끼니마다 함께 먹고 자는 곳

운주면 완창리 완창마을 어르신들이 경로회관 앞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다.

 

먹고 놀고 잠자리까지 가능한 곳. 복합멀티플레이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 경로회관을 일컫는 말이다. 각 마을별 경로회관이 있지만 특히 운주면 완창리 완창마을은 경로회관을 중심으로 마을 어르신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완창마을 경로회관을 찾아 어르신들과 1박2일 , 24시간을 함께 했다. 그곳에는 재미가 있고, 정이 있고, 이웃이 있었다.

 

 

구정 준비로 분주한 일상
2월 1일, 입추를 며칠 앞두고 갑자기 찾아온 추위가 매섭다. 운주면 완창리 완창마을은 98가구로 운주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주민수가 많다보니 경로회관도 남녀 회관을 따로 쓴다. 특히 여자 어르신들이 모이는 회관은 사람 온기가 떠날 틈이 없다. 당신들의 집보다 회관에 있는 시간이 많을 정도.


설 연휴를 며칠 앞둔 이날, 어르신들은 아침 9시부터 마을과 가까운 논산 양촌으로 장을 보고 오셨다. 이웃집 아들이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3~4명의 어르신들이 마을 대표로 향했다. 마을로 돌아온 이들의 손에는 크고 작은 검은 봉지가 가득하다. 도토리묵가루, 멸치, 설탕, 고사리, 맥아엿, 배추, 시금치, 맛살, 햄, 행주까지. 이 모든 것이 회관의 살림을 도맡는 일흔아홉살 강희순 할머니가 사들고 온 심부름 꺼리다.


“내꺼는 5만원어치 사고 나머지는 다 심부름이야. 큰 차타고 다 같이 가서 싣고만 오는데 뭣이 힘들어. 몸 불편하신 분도 있고 하니까 이런 건 서로 해주는 거지.”(강희순·79)


오후 4시께, 마을에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이 찾아왔다.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다라장사’로 불리는 이다. 판매 제품은 냄비와 수저세트. 어르신들은 냄비의 바닥을 두드려보고 만져도 보며 꼬깃꼬깃 뭉쳐놓은 지폐를 꺼내신다.


“여기 물건이 튼튼하니 좋아. 내가 이거 쓰다 죽으면 며느리 줘야지. 그럼 울 시엄니가 이거 쓰다 갔다 할 거 아녀.”(김소진·80)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자식들에게 내어줄 새 수저와 젓가락 세트.  

여자 어르신 중 가장 나이가 많으신 김순임 할머니. 올해 91세다.


이날 유독 할머니들의 관심을 끈 건 열벌들이 수저 세트다.
“곧 설이잖어. 우리 애들들 오면 새 수저로 내주려고 샀어. 애들이 명절 되면 용돈 줄 거 아녀. 그거 생각하고 일단 내 돈으로 샀지. 하하.”(이정옥·80)

 

점심도 먹고, 농사 이야기도 하고
완창마을에는 남자 어르신이 24명 있다. 같은 시각 옆 건물의 남자 경로당에는 80대 또래 십여명의 어르신들이 빙 둘러 앉아 고스톱을 치신다. 돈은 걸지 않는다. 새하얀 장기알이 돈을 대신한다. 점심메뉴부터 내년 농사 계획 이야기까지, 입은 쉬지 않는다.

“이 방에서 제일 큰 어르신이 구십 드셨고, 막내가 칠십육이여. 막내가 여기 설거지 담당이지(웃음).”(한상동·80)


농번기 때는 서로가 바빠 얼굴도 자주 못 보지만, 일이 없을 때는 회관에 모이는 것이 일이 된다.
“평소에는 일 하느라 바빠서 못 모여. 지금처럼 좀 한가할 때나 회관에 모이는 거지. 같이 대화하면서 친목도 다지고. 이 마을에는 동상에서도 이사 온 사람이 있고 그래. 못해도 전부다 10~20년은 얼굴 봐온 사람들이지.”(유재섭·83)


“남녀를 막론하고 우리 경로당은 활성화가 잘 되어있어. 누가 봐도 부러울 정도야. 아줌마들이 밥해서 갖다 주고 그래. 머시매들이 모여서 뭔 밥을 해먹겠어. 해주면 먹는 거지.” (임계환)

 

완창마을에는 24명의 남자 어르신들이 사신다. 농사일이 없을 때는 경로회관에 모여 새해 준비 등 온갖 이야기를 나누신다.

 

마을 어르신들은 돈을 건 '내기 고스톱'은 치지 않으신다. 치매 예방을 위해 병뚜껑 등을 활용한 '가짜 돈'으로 셈을 하신다.

 

여자 어르신들이 고스톱을 할 때 사용하는 '가짜 돈'. 왼쪽 고리부터 10원,  음료수 및 맥주 병뚜껑은 50원, 홍삼 및 우황청심원 뚜껑은 100원의 가치를 지닌다.

 

먹을 것이 떨어질 날 없는 넉넉한 밥상
이날 저녁 메뉴는 청국장, 콩나물무침, 멸치조림, 청태무침, 김장김치, 계란말이, 고추장아찌, 오징어채, 동치미국물. 완창마을 요리사 강희순 할머니가 한껏 솜씨를 부렸다. 수첩 하나 들고 찾아온 젊은 아가씨가 반갑다며.


자연스레 누군가는 밥상을 펴고, 누군가는 수저를 놓는다. 그리곤 빙 둘러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다. 당번도 필요 없다. 자연스럽게 누군가 밥을 하고, 누군가는 설거지를 한다.


“우리는 누가 밥을 말아먹는지, 성질이 어떤지 다 알어. 입맛이 없어도 여기 오면 신기하게 맛있대.”(김정순·74)
“여긴 먹을 것이 떨어질 날이 없어. 다들 자기 먹고 싶은 걸 남들이랑 먹을라고 사와. 대추며, 팥떡이며, 탕수육이며 다 가져와서 나눠먹어. 얼굴 붉힐 일이 없지.”(박효순·66)

 

강희순 어르신이 만든 밥과 반찬으로 어르신들은 세끼 식사를 해결하신다. 당번제도 필요없다. 자연스럽게 누군가는 밥상을 차리고, 누군가는 설거지를 한다.

 

밤 8시가 넘어가자 어르신들은 텔레비전 연속극을 틀어놓고 낮에 산 멸치 손질을 하신다. 누구라도 할거없이 이웃네 멸치 손질을 위해 손을 걷어부쳤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웃들과 한 이불
운주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연속극을 하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낮에 산 멸치 박스를 까 손질한다. 이웃 멸치 손질하는데 열 개가 넘는 손이 붙었다.

 

“내가 집에서는 드라마 대장인데 여그 오면 안 보게 돼. 이야기 하느라고. 맨날 봐도 할 야기가 많어.”(함현순 90)


지난 12월께부터 회관에서 함께 잠을 자는 이는 모두 6명. 겨울 경로당을 주거공간으로 활용하는 정책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오는 2월말까지 함께 밥도 먹고 잠도 함께 잔다.


“혼자 자는 거 보다 좋지. 코 곯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이야. 여기서 자면 자식들도 좋아해. 집에 덩그러니 엄니 혼자 있는 거 보다 맴이 놓이겠지.”(임정숙·80)


“이렇게 자다가 혼자 집에서 자잖어? 그럼 나 밤에 자다 울고 그려. 나라서 돈 나오니까 노인네들 따뜻한데서 잠도 자고. 자식도 이렇게는 못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집에서는 기름 아까워서 보일로도 못 떼.”(김복임·85)

 

밤이 깊자 어르신들은 따뜻한 방바닥에 이불을 펴셨다. 눈에 잠이 올때까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신다.

 


밤 9시께, 할머니들은 이불을 펴신다. 텔레비전은 아직 켜있다.


“보다 잘라고. 오늘 가요무대 하는 날이거든. 잠 오는 사람은 먼저 자고, 안 그런 사람은 테리비 보다 자. 아가씨도 어여 자. 이불 끝까지 덮고.”

 

새벽 4시부터 인기척이 났던 이 작은 방에 불이 꺼졌다. 누군가는 잠이 들었고, 누군가는 텔레비전을 본다. 혼자 자는 잠에 스륵 눈물이 날 때가 있다는 한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이날 밤 느꼈던 따뜻함은 밤새 돌아가는 기계의 움직임 때문이 아니라, 하루 내 방을 가득채운 사람의 온기는 아니었을까.

 

 

* 이 글은 완두콩 최성우 팀장이 완창마을 경로회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하룻밤을 묶으며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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