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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구시장 사람들] 조용한 뒷골목 일상..그래도 사람사는 정이 있다2016-01-13

[삼례 구시장 사람들] 조용한 뒷골목 일상..그래도 사람사는 정이 있다

삼례 구시장 골목에 최근 가게를 창업한 젊은 엄마들이 손수 만든 소품들을 들고 구시장 골목의 활력을 기원하고 있다.

 

 

삼례시장의 원조 구시장

옛날엔 골목마다 장이 선 최고 번화가
신 시장 생겨난 뒤 뒷골목으로 쇠락

 

 

삼례읍 삼례리 역참로(옛 삼례리 하서신(下西新) 부락)는 그 옛날, 한양에 과거를 치루기 위해 지나가야 했던 교통의 중심지였다. 60~70년대 만해도 골목 골목에 장이 들어서는 삼례를 대표하는 시장이었지만 건너편 신시장이 깔끔하게 정비되면서 그 시대는 막을 내렸다. 현재는 구시장 앞길이라 불리며, 시장의 뒷골목이 되어버린 곳이기도 하다.

시간의 무게와 함께 활력을 잃어가던 이 구시장 거리에 최근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있다. 천연비누, 홈패션, 스타킹 공예, 아이옷 전문 가게 등 공예나 패션잡화에 관련된 공방 및 가게가 문을 열면서다. 젊은이들의 활기찬 기운과 노련한 어르신들의 여유로움이 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역참로에 사는 주민이 과거 각종 좌판이 들어섰던 시장 골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모든 골목에 좌판이 서던 삼례의 가장 큰 시장

“30년 전만 해도 사람이 북적북적 했지. 술 팔고, 생선 팔고, 이 길가에 좌판이 쭉 하니 있었어. 옛날에는 다 가겟집이고 풍신났지. 지금 신시장이 들어선 그쪽은 죄다 논이었어. 그 논을 다 메우고 시장이 들어선거야.”(이덕순·87)

봉동 구암리에서 인력거타고 삼례로 시집온 덕순 할머니는 이곳을 번화가로 기억한다.

 

신시장이 개발되기 전에 원래는 여기가 신도로였어. 한양 올라가는 역참로였지. 저 동부교회 쪽이 말을 교대하는 찰방자리였대. 그래서 여 이름이 역참로잖아.”

 

하서신에서 오래 살아오신 송선주 할머니가 옛 이야기를 해주신다. 할머니 오랜 친구인 강아지는 사람을 좋아한다.

 

 

서승환 이장(63)2대째 같은 자리에서 떡 방앗간을 한다. 서 이장의 방앗간은 삼례에서 꽤나 오래된 떡방앗간이다. 서 이장이 중학교 1년에 아버지가 방앗간을 시작했으니 50여년 정도의 역사를 지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떡 만들고, 미숫가루 하고, 기름 짜고, 고추 빻는 일은 같아. 근데 여길 찾는 사람이 변했지. 그때는 다라이(물건을 담는 큰 통)이고 떡 빻으려고 저그까지 줄을 쫙 섰었어. 차가 별로 없었을 때라 시외버스타고 멀리서부터 여까지 왔었지. 여기가 아마 삼례에서 가장 오래된 방앗간일걸.”

 

동쪽으로 가면 익산, 서쪽으로 가면 고산, 남쪽으로 가면 금마에 북쪽으로 가면 전주. 이런 교통의 중심에 있는 덕에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삼례가 옛날에는 객지 사람이 더 많았어. 교통의 중심지여서 장날이라도 되면 저 이리며 전주며 외지 사람들이 엄청 왔지.”(윤영순·81)

 

 

서승환 이장네 떡방앗간 기름통이 고장났다. 골목의 남자들이 모두 나와 일손을 돕고 있다.

 

수 십 년의 세월을 함께 한 뒷골목 이웃

 

어허, 제대로 들어봐. 허리 조심혀. 이거 솔찬히 무거워.”

아따, 형님 힘 하나는 여전하네.”

 

16일 낮, 고장난 이장네 방앗간 기름통을 고치기 위해 그 골목 남자들이 모였다. 방앗간 앞집에 있는 신진사 세탁소 사장도, 골목 어귀에 사는 동생도, 못해도 30여년은 형님동생하며 살아온 사이다. 구시장에서 산지 32년째 됐다는 한 어르신은 이런 도움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신다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꽤 됐지. 일 있으면 서로 도와야지.”

 

골목을 나와 바로 왼편에 있는 서울미용실도 오래된 이 골목의 사랑방이다. 동네 여자 어르신들은 이 미용실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미용실에 머리 하러 가는 것 보다 놀러 가는 것이 일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하신다.

 

80세대 가량이 살고 있는 이곳 역참로에는 유독 골목이 많다. 작은 골목 하나에도 과거엔 시끌벅적하게 가게 좌판이 들어섰던 곳이다. 그들 중 어떤 곳은 변했고, 어떤 곳은 옛날의 모습 그대로다.

 

과거 시장 공동변소였던 곳은 이제는 마을의 경로당이 됐고, 12칸짜리 생선가게는 이제는 그 집 아들네가 사는 가정집으로 변했다. 지금은 창고로 변해버린 그 곳은 과거 떡방앗간 자리였다.

 

(위) 오랜 세월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창고. (아래) 지금 마을 사람들이 즐겨찾는 하서신 경로당 자리는 과거 공동변소자리였다.  

 

반면 골목의 나이만큼 함께 세월을 껴안은 이들도 있다. 수 십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례의 중화요리 터줏대감 제일반점도 그대로요, 신진사 세탁소와 삼례유리도 그 자리 그대로다. 세월의 손때를 묻은 대문을 간직한 오래된 집들도 그대로다. 70년대에 세워진 능수목욕탕도 그대로 있다.

 

집들이 겉은 지붕도 새로 놓은 데도 있고 하지만 속은 다 옛날 집이야. 저 집만 해도 옛날에는 고기전, 채소도 팔고 생선도 팔던 곳인데 지금은 칸을 나눠서 사람도 살고 페인트 장사도 하지. 저 집이 100년 정도 됐을 거야.”(최민애)

 

구시장 골목 사거리에 있는 족발이랑 아구는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터 중 하나다.

 

신시장이 새로 들어섰지만 장날만큼은 예전과 같다. 3일과 8일에는 도로 건너편 신시장에 장이 선다. 이제는 구시장이라는 말과 우체국 뒷골목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이지만 사람이 사는 그 모습은 그대로다.

    

 

 

오래된 골목을 찾아오는 젊은이들

 

최근에는 이 거리에 젊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있다. 공방이나 패션잡화 창업자들이 골목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조용했던 거리가 젊은이들의 유입에 전에 없던 활력이 생겨나고 있다.

나이든 사람만 있으면 삭막할 텐데 이 길에 젊은 사람들이 오니까 좋지. 젊은 사람들이랑 친해서 아주 친 조카처럼 지내.”(권우솜·62)

 

오가면서 인사는 물론이거니와 가끔은 손이 큰 어르신들이 차려주는 밥도 같이 먹는다.

저 골목 뒤에 사시는 할머님이 손이 크셔서 가끔 밥을 많이 하시면 젊은 사람들까지 다 부르세요. 저번에도 콩나물밥을 많이 하셨다고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었죠. 저희는 덕분에 맛있는 거 많이 먹어요.”(최미혜·39)

 

오래된 골목을 지켜온 어르신들과 오래된 골목을 찾아온 젊은이들의 어울림이 마치 가족 같다.

여기만 해도 아직도 촌이야. 아직 이곳은 도시 안 같어. 뭐라도 있으면 서로 나눠먹고. 그래서 정감이 있어. 아직도 시골의 정이 살아있어.”(조성아·65)

 

구시장에서 각자 공방과 가게를 하는 젊은이들이 모였다. 골목의 오랜 어르신들과 가족처럼 다정하게 지낸다.

 

 

Tip

옛 삼례리 하서신(下西新, 현재 삼례 역참로)은 어떤 곳?

서신은 전에 찰방청(察 訪廳)이 있던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서신리 또는 서설리라고 하였다. 이후 상서신, 중서신, 하서신, 남서신으로 분리됐으며, 하서신은 서신 아래쪽에 있다. 하서신이 삼례의 중심가였으나, 1970년대 시장이 남서신으로 옮겨가면서 주거지역으로 변했다. 구시장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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