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이 없는 곳, 유상마을]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두부 만드는 배기순씨201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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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키우려고 만든 두부가 어느덧 40년 됐네"
손두부는 슈퍼에서 파는 판두부와 확실히 맛이 다르다. 재료도 재료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 정성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손두부를 만들기 시작한지 벌써 40여년째, 배기순(75) 할머니의 손두부는 자식을 위한 애절한 마음에서 시작됐다.
“농사만 지어서는 우리 애들 대학도 못 가르치겠더라고. 근데 농사는 지으니까 콩이 나오잖아. 시어머니하고 친정어머니 어깨 너머로 두부 만드는 걸 봤었거든. 그래서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지.”
자식을 둔 엄마의 몸은 무적이었다. 새벽잠과 싸웠고, 날씨와 싸웠고, 고단함과 싸웠다.
배 할머니는 새벽 4시께 일어나 두부를 만든다. 오전 10시가 되면 집 앞을 지나는 단 하나의 시내버스인 834번을 타고 전주로 향한다.
“그 버스를 떨키(놓치)면 화심까지 걸어가야 해. 그러면 내 맘이 어찌나 처절하던지. 내가 나이 먹고 뭐하나 싶고.”
배기순 할머니가 직접 재배한 콩을 들여다 보고 계신다.
할머니는 오랜 단골인 전주 시내 한 한약방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다닌다. 자전거는 할머니 두부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다.
“그 자전거를 누가 훔쳐간 적도 있었어. 급한 데로 자전거포에 가서 중고 자전거를 샀는데 그게 또 놓을 자리가 없드만. 근데 고맙게도 내 사정을 알게 된 한약방 사장님이 자기 가게에 놓으라고 하시더라고. 벌써 수십년째 됐어.”
편안하게 운전을 하시지, 라는 질문에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신다.
“편안하게 운전해서 가면 좋지. 근데 애들 뒷바라지 하느라 면허 딸 생각도 못했어. 지금은 포기했지. 지금 쓰는 자전거도 다른 걸 사려고 해도 저놈맨치 좋은 게 없대. 쇠가 아주 단단해.”
할머니의 두부에 대한 고집은 나무장작을 떼는 아궁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불 피우려면 힘들긴 해. 근데 이게 익숙해서 못 바꾸겠어. 그리고 내가 이거 얼마나 더 하겠어. 이제 두부 더 못 만들어. 이 산 중에서 새끼 가르치려고 했던 거야. 얼마 안 있음 나도 끝나.(웃음)”
혼자 아궁이에 불 피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할머니는 자녀들에게는 아궁이 근처에도 못 오게 하신다.
“두부 만드는 일이 힘들어. 내 대에서 끝내야지. 그 생각으로 자식들한테는 이 근처에 오들 못하게 해. 그놈들 헛고생 할까봐.”
배기순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떼 콩을 삶고 있다.
배 할머니가 두부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시간이 훌쩍 지났다. 주름살이 늘었고, 나이를 먹었고,
할머니가 됐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도, 두부 맛도 여전히 한결같다고.
“시간이 지나도 사람도 안 변하고 두부 맛도 안 변한다고 해. 그런 말 들으면 감사하지. 근데 내가 수십년을 했어도 여전히 두부 만드는 일은 어려워. 할수록 어려운 거 같아.”
자식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손두부는 어느새 할머니 평생을 함께 한 그림자가 됐다.
엄마였기 때문에 이런 정직하고도 깊은, 세월의 맛을 담아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