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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가족] 어느 생활관리사의 하루2015-03-10

[또 하나의 가족] 어느 생활관리사의 하루

최말례씨가 돈의마을 성예순 할머니댁을 찾아 안부를 묻고 있다.

“보잘것 없는 나를 찾아오는디 … 새끼덜보다 낫제”


어느 생활관리사의 하루

생활관리사는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이다. 건강관리 주치의, 안전을 챙기는 119대원, 민원해결사, 심부름센터 직원, 그리고 하소연을 들어주는 말벗이 이들이다. 어르신들은 “새끼덜보다 낫다”고 말한다. 완주군 돌봄서비스의 최 일선 현장에 선 생활관리사 최말례씨와 이연하씨의 하루는 어떨까.

#생활관리사 최말례씨


생활관리사 최말례(53)씨가 면사무소를 나섰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이날따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어르신들에게 갑작스런 추위는 가장 큰 적이다. 조바심이 났다. 정분순(84) 할머니 집 앞에 도착한 최씨는 방문을 앞두고 조금 긴장했다. 일주일만의 방문이었다. “워낙 고령들이시니 간혹 집 앞에서 어르신들을 불렀을 때 기척이 없으시면 가슴이 철렁해요. 그러다 문을 딱 열고 나오시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정 할머니는 다행히도 금방 문을 열고 나오셨다. “식사는 하셨는가. 옛날 집이라 이러게 생겨서 대접할 것도 없네. 이빨도 남의 것이라 우습지도 않아.” 할머니는 “옛날 같으면 안 그랬을 텐데 이제는 뱃심이 없어 허리도 안 펴진다”며 객들을 못 챙기는 미안함을 전했다. 그때서야 최씨의 얼굴이 풀어졌다. 그는 할머니에게 건강상태 등을 포함해 한주간의 근황을 요목조목 물었다. “당뇨는요, 혈압은 괜찮아요?. 맨날 방안에만 있지 말고 운동도 하셔야 해요.” 토방에서 시작된 대화는 마당 안 텃밭으로 이어졌다. “맨날 이거(텃밭)같고 노는 거여. 풀도 뽑고 호미로 고랑도 만들고.” 텃밭엔 봄기운이 돌았다. 겨울을 견뎌낸 쪽파의 빛깔이 고왔다.

대화 중간 중간 최씨는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살폈다. 특히 방은 따뜻한지 구들장을 만져보고 부엌 등을 살펴 가스와 보일러, 화재감지기 등을 점검했다. 어르신들의 소재파악 및 상태점검, 안전사고 예방은 생활관리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할머니 입가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자식보다 낫다”며 방문 내내 최씨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전화하셔야 해요.” 최씨는 아쉬워하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를 위해 집을 나섰다.

최씨는 대개 어르신들 집에서 1시간 정도 머문다. 이것저것 점검하고 이 사람 저사람 흉도 보면서 말벗 좀 해드리면 1시간이 훌쩍 간다. 최씨가 생활관리사를 하게 된 건 4년 전부터다. “서울에서 이사 왔어요. 이웃집 언니가 어르신들을 만나고 다니는 걸 보고 나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날 권유를 받았어요.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의 미래이기도 하잖아요.”
그는 어르신들 보면 마음이 짠하다. “어느 날 가보면 당신은 쓰지도 못하고 자식들 주려고 바리바리 싸놓거든요. 그게 부모의 마음인 것 같아요.”

다음 방문은 너더리에 있는 유순희(68)씨 댁이었다. 유씨는 팔과 다리의 관절이 불편해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이었다. 유씨는 “이 지역을 훈훈하게 만드는 사람이 왔다”며 “내가 대통령이라면 우리 선생님 키워줄 텐데”라며 반겼다.


생활관리사 최말례(오른쪽)씨가 유순희씨 댁을 방문, 유씨의 무너져가는 아궁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유씨의 집은 생활이 힘들 정도로 부서지고 있었다. 나무를 때야 하는 아궁이는 나무를 구할 수 없어 연탄으로 대신하고 있었는데 그런 아궁이마저 곧 무너질 상황이었다. 아궁이에는 말 그대로 솥 하나가 간신히 걸려있었다. 화장실은 벌써 무너졌다. 유씨는 “화장실하고 부엌만 좀 고쳐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소연했다. 최씨는 면사무소에 이를 알리고 도움을 구해보기로 했다. 유씨는 집을 나서는 최씨의 손에 가마솥에 삶은 시래기 한 봉지를 건넸다.

최씨의 다음 행선지는 돈의마을 성예순 할머니 댁이었다. 마을은 화산면 소재지에서 논산 가야곡 방향으로 가야 있는데 큰 길에서도 쑥 들어간 작은 골짜기에 위치해 있었다.
“딸 왔능가.” 할머니는 최씨를 크게 반겼다. 최씨는 할머니의 막내딸과 동갑이었다. 토끼띠. 할머니는 그래서 막 반말이다. “응, 엄마. 별일 없으시죠?” 최씨도 딸처럼 편하게 대했다.
최씨가 홀로사는 노인들 방문 때마다 전하는 요구르트를 내밀자 할머니는 “너 먹으라”며 다시 내어주었다.
최씨가 보살피는 어르신들은 20여명이다. 하루 평균 4~5명씩 돌아 일주일에 한 번꼴로 방문하고 있다. 요즘에는 이른바 ‘송파 세 모녀’처럼 드러나지 않은 취약계층을 찾기 위한 희망지기 역할도 병행하고 있다.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어르신들을 만나고 나오면 제가 다시 힘을 얻을 때가 많아요. 그게 보람이죠.” 최씨의 뿌듯한 하루해가 이렇게 저물어 갔다.


#생활관리사 이연하씨

찬 공기가 아직 다 가시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 완주 화산면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생활관리사 이연하씨(46)를 만났다.
20년 전, 안산과 전주를 거쳐 남편의 친정집이 있는 완주로 귀촌한 이씨는 남편과 함께 화산에 터를 잡고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모를 회의감과 무력감에 지쳐갔다. 남편과 상의 끝에 사업을 접기로 마음을 먹고 일을 정리하고 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일이 독거노인생활관리사였다. 완주에서는 2008년도에 시행됐고 이씨는 그 이듬해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제가 오히려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간장이며 된장 담그는 법, 나물 무치는 방법, 살림 노하우…. 제가 마흔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어릴 때 생각엔 마흔 살이면 우리 엄마처럼 뭐든 다 척척 해낼 줄 알았는데,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아니더라고요.” 막막하기만 하고 모르는 것도 많고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어르신들과 가까워졌다. “궁금하다며 이리저리 물어보니 딸처럼 생각하시면서 살갑게 대해 주시더라고요.” 하지만 어려운 때도 있었다.

“어르신들 성격이 참 다양해요. 부탁하신 일을 해결해 드릴 때는 아이처럼 좋아하시다가도, 그러지 못하거나 오해가 생겼을 땐 거칠게 내색을 하시거든요.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처음엔 어려웠죠. 천천히 믿음을 쌓아가면서 이해하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에요.”
이씨의 첫 방문지는 화산 용수마을에 사는 김이순 할머니 댁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마당 한편에 가지런히 널어둔 빨래가 눈에 띄었다. 분홍빛 옷가지 너 댓개 널어놓은 모양새가 단정했다. 곱고 예쁜 할머니가 살고 계실 것 같았다.


생활관리사 이연하(왼쪽)씨가 김이순 할머니댁을 방문, 건강상태를 여쭙고 있다.

기척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할머니 두 분이 전기장판으로 데운 아랫목 위에 이불을 덮어놓고 마주앉아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이씨의 방문이 반가운 듯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딸이나 손주가 찾아온 것처럼 가장 따뜻한 아랫목 자리를 내어주셨다. 김이순 할머니였다.

“손님이 왔으니 불을 쓰자”며 형광등을 켜니 어둡던 내부가 밝아졌다. 보고 있던 ‘한국인의 밥상’을 끄고 이씨에게 말을 건넸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지?” 할머니는 당신의 근황과 함께 며칠 전 딸과 함께 목욕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개운하다는 듯 환히 웃으셨다.
그러다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을 향해 가시더니 “며칠 전 찾아온 딸 먹이려고 만들어뒀던 것”이라면서 식혜를 건넸다. 뒤이어 곶감과 오징어채가 이어졌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씨는 챙겨온 서류를 뒤적이며 살갑게 할머니의 근황을 물었다. 편찮은 데는 없으신지, 군청에서 보급한 실버카(보행 보조차)는 이상 없이 잘 움직이는지 묻고는 김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마주 앉은 동네 친구와 옥신각신 논쟁을 하다가도 “몸이 불편해 지척에 있는 경로당도 못가고 있는 내가 심심할까봐 생각해서 와주는 친구가 있어 고맙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는 길, 할머니는 “작년 김장하고 남은 배추가 참 맛나다”면서 기어이 배추 몇 포기를 봉투에 넣어 손에 쥐어주셨다.

얼마 뒤 이씨는 화산 하용마을 동네 어귀에서 근처 경로당에서 걸어오실 김귀순 할머니를 기다렸다. 조금 뒤 실버카를 끌며 한 발짝씩 걸음을 내딛는 어르신 한 분이 보였다. 김 할머니였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여유 공간이 있는 통로를 지나 들어선 방안은 어두웠다. 침대와 티브이, 댓 개의 세간으로 틈이 없는 작은 방이었다. 침대 위로 난 작은 창문으로 지나가는 차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최근 기초생활 수급 혜택이 중단됐다. 그리고 우편물 하나가 날라 왔다. 의료보험증이었다. 그동안 받던 혜택이 끊겨 앞으로는 얼마간의 치료비를 내야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억울하고 답답하다”며 할머니는 하소연 했다. 평소 우울증 증세가 있던 할머니의 상태가 염려된 연하 씨는 조심스레 컨디션을 체크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이어지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연하씨는 “조만간 방법을 모색해보겠다”고 했다.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연하씨는 “어렵겠지만 부탁한다”는 할머니의 인사와 함께 집을 나섰다.

이씨가 돌보는 어르신은 27명이다. 그는 “작은 노력으로 어르신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은 인생의 큰 행복”이라면서 “함께하는 어르신들이 항상 건강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윤주 마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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