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보다 낫다]독거노인생활관리사 이명례 씨2019-05-02
독거노인생활관리사 이명례 씨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딸이자 친구
주에 한 번씩 들러 안부 챙겨
“말벗해드리는 걸 제일 좋아해”
“아이고 어머니, 전화 안 받아서 놀랐잖아요! 내가 전화를 몇 번 했나 몰라.”
“집 전화는 빼놓고 있응게 몰랐어. 마당에 있다가 핸드폰 보니께 전화가 와있었네.”
경천면 석장마을에 사는 한선례(86) 할머니는 빈혈이 심하다. 어지럼증 때문에 혼자 집에 쓰러져 있을 때도 있다. 이날 완주군 독거노인생활관리사 이명례(61)씨는 석장마을을 방문할 예정이 없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선례 할머니를 살피기 위해 마을을 찾았다. 2년 전에도 집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를 발견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촌 노인들은 말벗해주는 일을 가장 고마워 한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 이명례씨가 백기초 할머니댁을 방문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명례 씨는 “혼자 계시다 보니 쓰러지면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예전에도 쓰러진 할머니를 발견하고 119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오늘도 혹시나 걱정이 돼서 집에 들렀다”고 말했다.
선례 할머니가 홀로 생활한지는 14년째. 자식들 출가 후 혼자 살고 있다. 할머니는 “자식들은 바쁘고 몸이 안 좋아 마을회관까지도 잘 못 걷다보니 집에 혼자 있는 일이 많다”며 “외롭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말벗이 오니 좋다. 딸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 안 오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돼 전화를 먼저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 이명례 씨는 경천면에 사는 27명의 독거노인 케어를 담당한다. 예비대상자까지 포함하면 모두 33명이다. 하루에 1개 마을에서 많게는 3개 마을을 돌아다닌다. 어르신 집이나 마을회관으로 찾아가 무슨 일이 없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도울 일은 없는지를 확인한다. 그런 생활이 올해로 만 10년째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들의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홀로 사는 노인들이 약을 잘 챙겨 드시도록 돕는 일이다. 이명례씨가 백기초 할머니에게 약을 설명해주고 있다.
명례 씨는 “정신건강센터에서 어르신 정신건강을 위한 설문지가 나오면 조사를 하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이 있으면 다른 서비스와 연계도 한다”고 말했다.
말이 끝난 명례 씨는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회관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요즘 조심해야하는 진드기 관련 설명서를 주고 주의를 주기 위해서다. 손에는 어르신들에게 드릴 음료수와 사탕도 있다.
“오늘 오는 날 아닌데 어째 왔어? 자주 보니 좋네.”
“선례 어르신 댁 들렀다가 와봤어요. 요즘 진드기 조심해야 하는 거 아시죠? 쯔쯔가무시 조심해야 돼요.”
명례 씨는 쯔쯔가무시 주의점이 적혀있는 설명서를 돌리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회관에 모여 있던 10여명의 어르신들이 각자 이야기를 꺼내며 맞장구를 친다.
박종옥(86) 할머니는 “마을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가 마을회관이나 집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찾아오는데 10년 정도를 봐왔더니 이제는 식구 같다. 우리들이랑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며 웃었다.
회관 바깥에는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궂었지만 명례 씨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경천의 끝 마을인 석장마을에서 이제는 신덕마을로 이동한다. 빗방울을 바라보며 파란 처마 밑에 앉아있던 백기초(88) 할머니는 대문 밖에 들린 인기척에 귀 기울인다. 빼꼼히 열린 대문 사이로 명례 씨 얼굴이 보이자 할머니가 미소를 짓는다.
“어머니 잘 계셨어요? 식사는요?”
“밥은 진즉에 먹었지. 아까 오전에 고산 나갔다왔어. 병원 댕겨오느라. 오늘 올 줄 알고 나와 있었어.”
명례 씨가 앉자마자 할머니는 말씀이 많아지신다. 병원 다녀온 이야기, 주말에 자녀가 다녀간 이야기, 마당에 핀 꽃 이야기.
기초 할머니는 “(명례 씨가) 우리 집에 자주 온다. 보건소 갈 때도 차로 데려다주고 데리러 온다. 적적할 때 오면 말벗이 되어 주니 참 좋다. 딸 같다”고 말했다.
비가 좀 멈추자 둘은 텃밭에 심은 부추를 마당으로 가져와 다듬기 시작했다. 손가락 관절이 아프다 말하는 할머니의 손을 명례 씨가 살포시 감싼다.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할머니의 작은 손과 그 손을 잡은 명례 씨의 손. 다정스레 맞잡은 손이 서로를 알고 지낸 10년의 시간을 말해준다. 관리사와 대상자로 알게 됐지만 이제는 친구 같고, 이웃 같고,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명례 씨는 “우리보고 애쓴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지 않다. 이게 우리 일이고 또 어르신들 만나면 우리도 기운을 받는다”며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는?]
독거노인생활관리사는 완주군 노인돌봄기본서비스사업 중 하나다. 올해 활동 중인 생활관리사는 모두 46명인데 이들은 13개 읍면을 돌며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생활교육과 서비스 연계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box]10년째 독거노인 돌보는 이명례 씨
“어르신 만나는 일은 내 삶의 활력소”
이명례 씨는 경천면을 담당하는 독거노인생활관리사이다. 면사무소에서 우연히 독거노인돌봄(현 독거노인생활관리) 제도를 알게 되면서 시작한 것이 어느새 10년째다.
명례 씨의 근무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다. 하지만 근무시간은 큰 의미가 없다.
그는 “저도 경천면에 살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걱정되면 오다가다 들리기도 한다. 보통 하루에 5~6가구를 방문해서 어르신들을 뵙는다. 현황을 조사하고 설문지를 돌릴 때도 있다. 어떤 날은 같이 화투도 친다(웃음)”고 말했다.
오랫동안 어르신들을 봐오다보니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이제는 가족 같은 기분이다. 명례 씨는 “10년 째 일을 하다 보니 어르신들이 꼭 부모 같다. 하지만 연세가 드시고 건강이 안 좋아 병원으로 들어가거나 세상을 떠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 마음이 참 아프다. 쉽게 아픈 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식보다 낫다’며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혼자 계신 분들에겐 우리가 말동무가 되어주니 그 점을 가장 좋아하신다. 경천은 작은 동네다 보니 기업도 없고 큰 음식점도 없어서 서비스 연계를 받기가 쉽지 않다. 어르신들을 위한 서비스가 잘 될 수 있도록 보다 홍보가 잘 되면 좋겠다. 이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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