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지짐 부치던 회꼬골 추억은 보름으로 이어지네 휘돌아 마을 한 바퀴 비봉면 원수선마을의 3월은 자박자박 흙을 밟는 소리로 시작된다.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이 풀리고 주민들은 축사를 정비하며 한 해 농사 준비에 나섰고 부쩍 따뜻해진 날씨에 손길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해마다 이맘때면 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레 발걸음을 모으는 곳이 있는데 마을 입구에 나란히 선 두 그루의 노거수, 이른바 ‘부부 느티나무’다. 오랜 세월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온 수호신목 아래에서 주민들은 바쁜 와중에도 다 가오는 정월대보름이면 함께 모여 따뜻한 밥상을 나누며 한 해의 무탈을 기원한다.
부부 느티나무와 회꼬골에 서린 전통 마을 초입에서 객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25m 높이의 웅장한 ‘부부 느티나무’다.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서로를 감싸듯 뿌리를 내린 모습은 오랜 세월을 함께 견딘 마을의 시간을 닮았다. 이 나무는 단순한 경관을 넘어 원수선마을의 상징이자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다.
오랜 세월 마을의 안녕을 지켜온 수호신목 아래에서는 과거 보름과 칠석이면 제를 올리고 풍물을 치며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고, 정월대보름이면 주민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며 한 해의 무탈과 풍년을 기원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처럼 마을은 예부터 함께 모이고 어울리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문화류씨 집성촌인 이곳에는 열녀비와 공적비가 세워질 만큼 예와 덕이 밝은 사람들이 많았고 이웃 간 정이 두터워 절기마다 어울려 노는 행사도 잦았다. 특히 노말례(94) 어르신은 “마을 뒤편 다섯 봉우리 중 가운데 ‘회꼬골’ 골짜기가 가장 놀기 좋았다”고 웃었다.
“삼월 삼짇날이면 마을 여자들이 회꼬골에 올라 꽃지짐 부치면서 봄놀이를 즐겼지. 단오에는 등 구나무에 매단 그네를 타면서 내기도 했어. 그네를 힘껏 굴러서 높이 올라갔을 때 입으로 나뭇잎을 물고 내려오는 거야.
타는 사람, 보는 사람도 아찔한 묘미가 있었지.” 다섯 봉우리 아래 터 잡은 ‘물골안’ 수봉산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산자락이 부소산을 기점으로 각각 성뫼산과 반곡산으로 이어지며 거대한 천연 성벽을 이룬 골짜기가 만들어졌다.
이 안에 자리한 수선리는 예부터 이곳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 안쪽’이라 하여 ‘물골안’이라 불렸는데, 이는 수선리 전체를 아우르는 정겨운 전래지명이다. 수선리의 으뜸 마을 이름인 ‘수선’이 법정리 명칭으로 사용되면서 마을 이름 앞에 원(元)을 붙여 원수선마을이 되었다.
뒤편으로 다섯 개의 봉우리를 거느린 원수선마을은 예전에 초입의 ‘관동(갓골)’과 중심부 ‘수선(물골안)’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마을 입구가 된 관동은 봉우리 모양의 갓을 쓴 것 같다 는 ‘관모봉’ 아래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의 설명을 새기며 마을 곳곳을 돌아보니 이곳을 이루는 산세의 모양과 흐르는 물의 기운이 지명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찰밥 한 그릇에 담긴 이웃 사랑 회꼬골의 꽃지짐과 등구나무 그네 타기는 이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지만,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만은 정월대보름의 밥상 위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3일 오전 11시, 마을회관은 홍보순 부녀회장의 지휘 아래 잔칫집 같은 활기로 가득 찼다.
김길예 어르신이 고소한 참기름에 소고기를 볶아 미역국을 끓이는 사이, 한쪽에서는 홍 부녀회장이 갓 무쳐낸 잡채 위로 깨소금을 뿌려 마무리했다. “간이 아주 딱 맞네!” 둥근 식탁에 둘러앉은 노말례, 유정순, 김길예, 국종순 어르신이 젓가락을 들고 미리 맛본 잡채 한입에 입을 모아 칭찬을 건넸다.
정오가 다가오자 스무 명 남짓한 주민들이 속속 모여들며 회관 방안은 금세 북적였다. 누구는 찰밥을 푸고, 누구는 뜨끈한 국을 옮기며 손발을 맞추는 모습이 마치 한 가족 같다. 길예 어르신은 “보름엔 역시 은행, 밤, 콩 넣고 소금 간 해서 쪄낸 찰밥을 먹어야지.
예전처럼 시루 가득 쪄서 이웃과 나누긴 힘들어도, 이렇게 다 같이 모여 먹으니 아주 맛있네.”라며 환하게 웃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마을 행사는 줄었지만, 보름날 마주 앉아 나누는 찰밥 한 그릇은 원수선마을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하고 따뜻한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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