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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6.10.19

차남호의 농촌별곡

익숙해진다는 건 서글픈 일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6.10.19 17:07 조회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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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접어들면서 한동안 맑은 날씨에 이상고온이 이어져 들녘이 메말랐더니 오랜만에 비가 흠씬 내렸다. 그 가을비 맞으며 상념에 젖어보고픈 마음도 없지 않으나 이 고장 10월은 가을걷이를 하는 시절. 논배미에 물이 고이고 바닥이 질척거려 수확작업에 애를 먹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농심이라는 게 알고 보면 이리도 무뚝뚝한 심성이렷다. 어쨌든 결실의 계절. 붉은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를 보면서, 벌어진 밤송이에 다소곳이 들어찬 밤톨을 보면서 시절을 깨닫는다. 길을 가다가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들녘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돼 있다. 아니 그런 때가 있었지.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풍경이라 그냥 덤덤하다. 그래서 익숙해진다는 건 서글픈 일인 것이지. 그러니 딱히 감탄할 일도 없거니와 예전처럼 그 감상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댈 일도 아니겠다. 때가 되었으니 논둑풀 쳐내고, 도랑 쳐서 고인물 빼내고, 끝까지 살아남아 논배미에 비쭉 솟아난 여뀌바늘 베어내고...

그렇게 거둬들일 준비에 매달린다. 콤바인 운행자에게 작업일정 확인하고, 나락 받아낼 톤백(대형 마대자루) 점검하고, 햅쌀 예약주문을 알리는 안내문자 보내놓으면 가을걷이 준비는 대강 끝이 난다. 그저 밥벌이를 위한 지겨운 노동인 셈이다. 뭔 가을이 이리 멋대가리가 없어?

게다가 올해는 어쩐 일인지 벼두레 대표행사인 ‘황금들녘 풍년잔치’도 건너뛴다고 한다. 이렇게 지나갈 순 없지 싶어 생각 끝에 ‘알밤줍기 번개’를 쳤다.

뒷산에 지천으로 널린 알밤을 한 알, 두 알 망태기에 그러모으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편이기도 하려니와 그 핑계로 가을날의 운치를 한껏 누려보는 것도 그만이겠다. 아이와 어른 예닐곱이 모였다. 조용하던 숲이 갑자기 소란해졌다. 한 시간 남짓 만에 준비해간 망태기와 양파망이 가득 찼다.

얼굴마다 흐뭇한 웃음이 번져갔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화톳불을 피우고 알밤을 굽는다. 그 자리에서 군밤 껍질을 벗겨 먹느라 다들 입 주위에 검댕이가 묻어 있다. 같은 시간에 완주를 대표하는 행사인 ‘와일드푸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

개천에 풀어놓은 양식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아 그 자리에서 구워 먹는 프로그램은 알밤을 주워 구워 먹는 것보다 더 즐거웠을까?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그때그때 바뀌겠지. 나아가 뒷산은 내게 알밤을 줍는 장소만은 아니다. 나는 날마다 뒷산에 오른다.

늘 같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보통은 앞산 마루에 붉은 해가 걸릴 즈음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칸트의 산책처럼 규칙적이지는 않다. 전에 썼듯이 뒷산 나들이는 세계와 삶의 근원을 찬찬히 톺아보는 사색여행이다.

한 점 화두를 참구해 궁극적 깨달음에 이르자는 건 아니다. 다만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속된 욕망에 사로잡혀 아등바등 휩쓸리다가 어느 순간 속절없이 스러질 순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나 하나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온삶의 의미를 찾고 홀가분하게 떠나자는.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걸음걸음마다 핍진한 삶의 비늘조각이 앞다퉈 고개를 들고 얽히기 십상이다. 새로운 욕망들이 분출한다. 엉킨 관계에 좌절하고, 새로운 관계에 가슴이 부풀기도 한다. 사는 게 원래 그 모양인데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바람 선선한 가을은 해탈을 꿈꿀 수 있어 좋다.

이 가을엔 단 몇 걸음이라도 좋으니 타성에 젖은 삶에서 벗어나보자.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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