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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8] 술이 익어가는 시간 2022-08-16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8] 술이 익어가는 시간

 술이 익어가는 시간


5월 초에 뜯은 쑥으로 중순 즈음에 애주(艾酒, 쑥을 넣어 빚는 술)를 빚었다. 먼저 밑술을 빚는다. 펄펄 끓는 물에 쑥(700g)을 넣어 쑥물을 낸다. 멥쌀가루(1.5kg)에 뜨거운 쑥물(5L)을 조금씩 부어가며 범벅(죽보다 설익히는 형태)을 익혀 밤새 식혔다가 다음 날 누룩(600g)을 섞어 치댄 후 항아리에 담아 2~3일간 발효시킨다. 3일째 되는 날 찹쌀(6kg)을 맑게 씻어 8시간 불렸다가 물기를 빼고 고두밥을 찐다. 2차 술빚기인 덧술을 하기 위해서이다. 40분간 고두밥을 찌다가 고두밥을 위아래로 뒤집어 준 후에 쑥(150g)을 고두밥 위에 얹어 15분간 다시 센 불에 뜸 들인다. 쑥물이 든 고두밥을 넓게 펴서 식혔다가 소독해 둔 대야에 옮겨 담아 준비해 놓은 밑술을 부어 섞는다. 이때의 밑술에는 효모와 효소, 젖산균이 대량으로 증식되어 있어 누룩보다 훨씬 강력한 발효제의 역할을 한다. 누룩 600g으로 쌀 7.5kg을 발효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밑술과 덧술로 두 번에 걸쳐 술을 빚는 이양주(二釀酒) 양조기법에 있다. 적은 양의 누룩을 쓰고도 높은 알코올 도수와 누룩취(완성된 술에서 나는 누룩곰팡이 냄새로 술의 향을 나쁘게 하는 대표적인 이취)가 없는 향기로운 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비법이다. 밑술이 고두밥에 고루 스며들 때까지 잘 섞어주는데, 술덧(고두밥과 물, 누룩, 밑술 등의 혼합물)이 되직해지면 항아리에 옮겨 담아 이불을 씌워 3~4일간 발효시킨다. 범벅을 쑤기 시작한 날로 꼬박 7~8일이 걸린다.


덧술이 끓어 오르는 주발효 기간 동안 술독 안의 세상은 마치 질풍노도의 사춘기 아이를 연상케 한다. 격정적이고 예민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향기롭다. 힘을 키워주되 과해지지 않도록 살펴야 하는 일이 관건이다. 봄철의 실내온도 22~23도로 시작해 술독 품온(술독 내부 온도)36~37도까지 오르도록 노심초사 지켜봐야 한다. 온도가 오르지 않으면 오르도록 방 안 온도를 올려주고, 너무 빠르게 오르면 이불을 걷어내어 속도를 늦춰주기도 한다. 38도를 넘지 않게 살펴야 한다. 알콜발효 미생물인 효모는 38도 이상의 고온에서 사멸하기 때문이다. 덧술의 주발효가 정점에 올라 36~37도 이상 온도가 오르고 술독 안에 이산화탄소가 가득 차 코를 찌르면 술독을 집안에서 가장 서늘한 곳에 옮겨 차게 식혀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술이 과발효 되어 시금털털한 냄새가 나고 시어져 지금까지의 노고가 수포가 된다. 햇빛이 들지 않는 북향의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를 선택하면 된다. 봄이라 해도 밤사이 기온이 써늘할 정도이기 때문에 술독을 냉각시키고 후발효 시키기에 적당하다. 다만 일정하게 서늘한 온도에 술독을 놔두는 것이 관건인데 일교차를 극복해야 하는 난관이 따른다. 6월 중순까지 후발효와 숙성 시간을 끌고 가야 하는데 낮 기온이 23~24도를 넘으면 술독을 대야에 담아 얼린 생수통이나 아이스팩을 끼워 놓고, 선풍기까지 동원해 온도를 낮추느라 사투를 벌여야 한다.


술을 빚고 한 달, 이 시기에 일어나는 후발효와 숙성 과정은 술이 익어가는 시간이다. 잔여 알코올이 생성되면서 술의 맛과 향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그러니 밀주의 시대를 지난 요즘 시절에 열흘 만에 혹은 보름 만에 술을 빚어 마신다고 하면 제대로 익을 시간을 주지 않는 성급함에 씁쓸해진다. 주발효 동안의 질풍노도는 잦아들고 성큼 자란 아이처럼 술독 안은 발효가 끝나 차분해지며 술덧이 끓어 올랐다 내려간 흔적이 띠를 두르고 남게 된다.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술독을 맴돌아 방안에 온통 술향을 퍼트려 놓는다. 과일향이나 꽃향에 비유되는 아름다운 향이 나는데, , , 누룩만으로 어찌 이런 향이 태어나는지 신기할 뿐인 나는 이 향기에 매료되어 어쩌자고 여름을 코앞에 두고 술을 빚었다.


 /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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