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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7]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의 세계 2022-07-20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7]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의 세계

미생물들의 활동으로 열과 이산화탄소가 분출하며 술덧이 끓어오르면 술독에서 빗소리가난다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의 세계


술을 빚으면 보게 되는, 보아야만 하는 세계가 있다. 바로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 미생물의 세계이다. 술을 빚기 위해 도구를 철저히 소독하고, 쌀을 백번 씻고, 고두밥을 고루 익혀 찌는 모든 과정은 미생물들에게 편안한 거처를 제공할 목적이니, 사람의 술 빚기란 곧 미생물들에게 협업을 구하는 일이다.


쌀가루로 죽을 끓여 차게 식혔다가 누룩과 고루 섞어 항아리에 담아놓는다. 이불을 씌워 하루 이틀 지나면 술독 안은 어느새 35도가 넘게 열이 나고 자잘한 기포들이 쉴 새 없이 터지며 빗소리로 가득 찬다. 쌀양보다 물양이 많을수록 빗소리는 더욱 세차지는데 흙 마당에 떨어지는 여름 빗소리와 비슷하다. 술독 안이 터지는 기포, 분출하는 열과 이산화탄소로 요란스럽고, 향기로운 술내를 풍겨내기 시작하면 술은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다. 쌀가루로 빚으면 대개 1~2, 고두밥으로 빚으면 3~4일 걸려 이러한 주발효가 일어나는데, 이는 술의 성패를 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어서 나는 술독에 귀를 대보거나 냄새를 맡아보고 급기야 자발스럽게 뚜껑을 열어보느라 어설픈 집사 티를 낸다. 누룩 속에 잠자고 있던 미생물들을 깨워 제발 향기로운 술을 빚어달라고 아양을 떠는 것이다.


효모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는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알 수 있는 크기의 미생물이다. 20~25도 정도의 기온에서 잘 살며, 인류는 BC3000년 경부터 이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체 빵과 술을 만드는 데 이용해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효모는 당을 먹고 살며, 모체에서 배아가 자라 떨어져 나가는 증식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는데 이때 내뿜는 호흡으로 열과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면서 두꺼운 옹기 항아리마저 끓게 만든다. 효모의 탁월한 능력은 또 있다. 효모는 술독 내부에 이산화탄소가 가득 차게 되어 산소가 없는 상태가 되면 증식을 멈추고 대사 활동에 전념한다. 이때 먹고 소화해 배출하는 것이 바로 알코올이다. 이 신묘한 대사산물인 알코올은 세상 어떤 발효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향기를 품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어 인류의 역사는 이와 함께 희노애락과 흥망성쇠를 이어왔다.


효모 외에도 누룩곰팡이와 젖산균은 매우 중요한 일꾼이다. 와인의 주재료인 포도는 자체가 당으로 이루어져 사람이 으깨어 놓기만 하면 효모가 바로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쌀로 빚는 술은 다르다. 사슬처럼 이어진 쌀의 전분을 당으로 작게 잘라내야 효모가 먹을 수 있어 누룩곰팡이의 힘을 빌려야 한다. 누룩곰팡이가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고 효모는 당을 먹고 증식하는 동안 침입하는 세균들을 막기 위해 젖산균이 방어막을 쳐주는 협업 과정은 주신(酒神)의 진두지휘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빗소리 가득한 술독을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존재는 선명히 드러난다. 보이지 않아도 너희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니 술을 정성껏 빚는 일이란 필요한 미생물들의 조화로운 균형을 살피는 일이다. 그 균형이 어긋나면 술은 발효가 아닌 부패의 길로 들어선다. 코로나 역시 인간의 탐욕과 부주의로 조화로운 균형이 깨진 틈을 타 찾아온 보이지 않는 것들의 경고이지 않을까. 공포와 강박으로 지배당하지 말고 조화롭게 살아갈 방법을 구해야 할 때이다.


 /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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