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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6] 봄을 술에 저장하다 2022-06-22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6] 봄을 술에 저장하다

봄을 술에 저장하다  


봄꽃들이 동시다발, 순서대로 피어나기 시작하면 봉동에 사는 인옥 씨는 이유를 모르고 바쁘다. 지난달 초에 인옥 씨와 나는 동상의 인적 드문 임도를 따라 융단처럼 깔린 쑥을 뜯었다. 그녀는 쑥차와 쑥술(애주, 艾酒) 나는 송편과 쑥술을 할 요량으로 연초록 물오른 동상의 산들이 내려다보이는 임도 양쪽을 타고 쑥을 뜯으며 망중한을 보냈다. 인옥 씨는 요즘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의 술 저장고에 가보면 왜 그렇게 바쁜지 이유를 안다. 철마다 빚어놓은 진달래주, 목련주, 송순주, 창포주, 국화주가 가득하다. 그날도 우리는 나무 그늘에서 살랑대는 봄바람을 느끼며 김밥을 안주 삼아 목련주와 창포주를 마셨다. 왜 꽃술 빚기를 좋아하냐고 물으니 그녀는 꽃을 넣었을 때 술맛이 달라지는 느낌이 빚을 때마다 신기하다고 말했다. 봄꽃들이 어서 술을 빚으라고 인옥 씨를 세뇌시키는 것 아니겠냐고 나는 그녀가 봄마다 바쁜 이유를 말해줬다. 유순하고 낙천적인 그녀에게 꽃술은 참 잘 어울리는 테마이다

     

술 빚는 재료를 기준으로 우리 술은 순곡주(純穀酒), 가향주(加香酒), 약용약주(藥用藥酒)로 분류된다. , , 누룩으로만 빚은 술을 순곡주라 한다. 세 가지 기본 재료에 특별한 향이나 색을 얻고 싶어 꽃이나 열매, 잎 등을 부재료로 첨가해 빚는 술을 가향주라 하고, 자연재료의 약성을 얻고자 부재료를 넣어 빚는 술을 약용약주라 한다. 전통주가 부활하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우리 술은 약용약주가 대세였다. 술을 약으로 인식해 건강과 연관 지어 마시던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전통주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술 본연의 맛과 향, 개성을 즐기려는 젊은 세대의 음주문화가 이제는 순곡주와 가향주에 맞춰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꽃이나 향신료를 넣어 술을 마시는 문화가 있다고 하나, 대개 와인이나 맥주를 증류해낸 증류주에 담가 우려내는 형태이다. 일례로 코디얼(Cordial)은 꽃이나 과일 등을 끓여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를 혼합해 가볍게 마시는 알콜음료이다. 그러나 우리 술은 쌀로 술을 빚을 때 자연재료를 함께 넣어 자체로 독자적인 발효주로 완성되는 특징이 있다. 단지 꽃을 술에 담그는 것이 아니라 꽃이 술과 함께 발효되어 새로운 형태의 화합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아마도 쌀이라는 기본 재료가 다른 부재료와 잘 어울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 옛 문헌에 나온 꽃술을 정리한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란 책에서 보듯 우리 술이 지닌 다양성과 화려함, 멋스러움은 세계 어느 나라도 모방할 수 없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조건에서 다양한 자연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재료들을 어떻게 다루고 술에 활용했는지를 보면 우리 조상들의 꽃 사랑은 DNA 속에 깊이 박혀있는 감성이 아닐까 싶다.

 

목련이 지고 목련주를 마시니 좋네요.”

인옥 씨의 목련주를 맛보고 어떤 이가 한 말이라고 한다. 꽃이 지고 쓸쓸할 때 꽃향기를 품은 술 한 잔은 지나간 계절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단지 시각적인 저장이 아니라 술이라는 전혀 다른 형태 속에 담겨 상상할 수 있게 만들기에 그 위로는 더 깊이 가 닿는다. 그래서 술을 빚는 사람들은 봄만 되면 바쁘다. 어여쁜 꽃과 열매, 계절이 주는 기쁨을 술에 저장하려고 말이다.


 /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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