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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별곡]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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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밥과 술

 

5월초 또한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볏모 농사로 바삐 돌아갔다.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계절의 여왕이라는 이 5월의 풋풋한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쌀 전업농인 나로서는 이 즈음에야 비로소 농사철에 접어든다. 4월말 볍씨 담그기를 시작으로 촉이 튼 볍씨를 모판에 넣은 뒤 못자리를 꾸며 앉히는 작업이 이어진다. 그 열흘의 작업이 끝나고 나면 한 달 남짓 못자리를 관리하며 볏모를 길러내게 된다. 그렇게 자란 모는 모내기를 통해 여기저기 논배미로 옮겨지게 된다.

모농사 초반작업의 공정이나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고 이 꼭지에서도 몇 차례 짚은 바 있다. 더욱이 이번호 <완두콩>에서는 이를 기획으로 다루고 있는 지라 예서까지 거듭 들먹일 일은 아닌 듯하다. 대신 그 뒷얘기, 그 가운데서도 먹거리 얘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노는 데도 먹는 일이 첫손에 꼽힌다만 몸을 쓰는 고단한 농사일에서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하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라 하겠다. 볍씨를 담그는 일은 고산 땅기운 작목반에서 열탕소독해 준 종자를 받아다가 염수선을 통해 튼실한 놈을 골라내는 일이 전부다. 큰 고무 통에 물을 받고 소금을 풀어 비중을 맞춘 다음 볍씨를 쏟아 떠오른 쭉정이를 골라내는 데 한 시간 남짓이면 싱겁게 마무리된다. 그러니 시농제를 핑계로 막걸리나 몇 순배 돌리고 나면 모든 공정이 끝난다.

이에 견줘 볍씨 넣기(파종)나 못자리 작업은 여럿이서 꼬박 하루를 매달려야 하는 중노동이다. 그만큼 일손도 많이 드니 두렛일(협동작업)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 <고산권 벼농사두레>를 꾸린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연유에서다.

어쨌거나 20~30명이 함께 일을 하니 먹매를 대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서로가 조금씩 나눠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라 점심의 경우 몇 해 전부터 아예 읍내 식당에 미리 주문을 하고 있다. 메뉴는 준비와 뒤처리가 수월한 비빔밥이 제격이다. 파종 때는 그냥 비빔밥, 못자리 때는 보리비빔밥 이런 식으로. 구슬땀 흘리고 나서 먹는 들밥’, 그게 참으로 꿀맛이란 얘기를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게다.

아무튼 힘을 많이 쓰는 일이라 점심 한 끼만으로는 가당치가 않다. 아침나절 한 두 차례, 점심나절 한 두 차례 새참은 필수. 컵라면이나 빵 같은 공산품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두렛일인데 그래서 되겠느냐는 열의가 이어지면서 갖은 음식이 넘쳐난다. 따로 주문하거나 부탁하지 않은 일이다. 더러 몸이 부실하여 일손을 보태지 못하는 대신...’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감칠맛 나는 국물에 계란고명까지 얹은 새참국수, 새콤매콤한 비빔국수, 즉석에서 부쳐내는 김치전과 부추전... 무슨 잔치라도 벌어진 듯 저마다 흡족한 표정들.

두렛일에 빠질 수 없는 것, 바로 술이다. 낮일이니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 도수 낮은 맥주 따위를 시장에서 사오지만 막걸리의 경우 지난해부터 자체조달하고 있다. 벼농사두레 회원들로 꾸려진 산하 동아리 <막동이> 덕분이다. 두레 회원이 손수 지은 유기농 쌀을 원료로, 두렛일 날짜에 맞춰 고두밥을 찌고, 누룩을 섞어 빚는 술이다. 실력이 늘어 얼마 전에는 멥쌀에 찹쌀을 덧술하는 석탄주까지 선보인 바 있다. 올해 파종 날에는 막 익은 막걸리를 술독 채로 실어와 그 자리에서 거르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보탤 얘기가 산더미인데 허락된 지면이 여기까지라 아쉽기 그지없다. 벼농사야 원래 그렇고, 세상살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 아니던가. 달포 뒤 모내기를 앞두고 하는 모판 나르기 두레 때는 또 무얼 먹게 될지 벌써 군침이 돈다.



/차남호(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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