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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별곡] 태풍은 지나갔지만 대가는 입이 쓰다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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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지나갔지만 대가는 입이 쓰다


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면서 하루아침에 더위가 싹 가셨다. 공기가 선선해지고 가을로 접어든 건 몹시 반가운 일이지만 치른 대가가 너무 크다

바비-마이삭-하이선으로 이어진 세 차례 초강력태풍으로 제주와 남동 해안지역은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두 달 가까이 여기저기 물폭탄 떨어뜨린 장마는 또 얼마나 많은 수재민과 경제적 피해를 안겼던가. 그나마 이 고장은 장마와 태풍 모두 비켜가는 바람에 그 피해가 크지 않아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사실은 이 고장에도 한 발 늦게 피해가 찾아왔다. 백수현상. 실직자가 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白穗, 비를 동반한 강한 바람이 분 뒤에 고온 건조한 강한 바람이 통과하면서 출수 직후의 벼 이삭이 하얗게 말라 죽는 현상이다. 오랜 장마로 수정이 부진했던 점도 한 몫 한 것 같다. 온 들녘이 희끗희끗 심상치가 않다. 논배미에 따라 정도가 다르지만 흉작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가슴이 미어진다.

흔히들 농사의 팔할은 하늘에 달렸다고 한다. 그저 해보는 빈말로 들리던 이 얘기가 가슴 절절이 다가오는 요즘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하늘이 가끔 부리는 심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자연생태를 깨뜨렸고, 지금 겪고 있는 자연재해는 그에 따른 하늘의 복수라는 얘기다. 기후위기가 온갖 재난을 몰고 오더니 이제는 식량의 위기, 농업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자업자득인 걸 누굴 탓하랴.

그런 안타까움과 마음 졸임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어디 한 둘이겠느냐마는 그 가운데서도 공장식 축산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늘 껄끄럽기만 하다. 더욱이 초대형 돼지농장이 바로 코앞에 자리 잡고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비봉 돼지농장. 17년 동안 1만 마리 넘게 돼지를 키워왔고, 비오는 밤을 틈타 축산폐수를 몰래 버리다 들켜 가동을 멈췄다. 가동중단 상태가 이제 10년 가깝다. 그 농장을 축산재벌 이지바이오 계열사가 사들여 재가동을 꾀하고 있다.

17년 동안 주민들이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머리가 아플 만큼 지독한 악취에 들끓는 파리와 모기, 농장 옆으로 지나는 천호천은 축산폐수로 검게 죽어버렸고, 지하수까지 오염돼 생활용수난을 겪어야 했다. 냄새 때문에 집이고 논밭이고 매매가 뚝 끊겼고 괜찮은 입지 때문에 몰려들던 귀농·귀촌인도 마찬가지다. 얼마 안 되는 어르신들마저 세상을 뜨고 나면 인근 마을들은 그야말로 소멸의 길을 걷게 될 운명이다.

그러니 주민들은 목숨 걸고 재가동을 반대해왔고, 완주군 또한 관계법령에 따라 가축사육업 불허가 처분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업체는 순리를 따르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해 심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재판부가 최근 피해발생 경위와 예상되는 상황을 석명할 것을 요구해와 집단인터뷰와 조사활동을 벌이며 고통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사실 소송이야 재판부의 판결에 달려 있지만 주민들로서는 재판결과와 상관없이 그 지긋지긋한 고통이 재현되는 걸 결코 상상할 수 없다. 한결같은 목소리 “17년이면 할 만큼 했다!”

다행히 업체와 주민이 상생하는 길이 열려 있다. 자자체인 완주군에 농장부지를 매각하는 게 그것이다. 매입가에 그 동안 들인 비용과 적절한 보상을 더한 수준에서 매매가 이루어진다면 업체로서도 밑지는 일이 아니다. 주민들 또한 돼지똥에서 영원히 벗어나니 그보다 더한 다행이 없다. 업체가 매각을 거부한다 해도 다른 방법이 있다. ‘이전명령이라는 행정명령을 통해 농장 부지를 사실상 수용하는 제도가 관계법령에 명시돼 있다. 시행과정의 실무적 어려움을 들어 망설일 일이 아니다. 정말이지 한시가 급하다.


/차남호(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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