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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장기계획 세우고 조급한 마음은 금물 2013-01-07

나만의 장기계획 세우고 조급한 마음은 금물

“농촌에서 살아가려면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귀농 4년차 위진석(54)씨는 아내 유경희(52)씨의 꼬임에 넘어간 케이스다. 도시에서 잘 살고 있는 그를 아내가 꼬셨다. ‘몇 년 만 살아보자’ 해서 ‘그래 공기 좋은 곳에서 죽자’하고 2009년 10월 완주 경천면 구재마을로 귀농했다. 1년에 70만원 하는 농가주택을 임대했다.
농지 일부를 매입하고 아내 쪽 종중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다. 의욕적인 출발, 그러나 예정된 실패. 나고 자란 서울서 50년 넘게 생활한 도시남자에게 농촌이 쉬울 턱이 없다.
“2년간 4000만원을 쏟아 부었어요. 일종의 수업료였죠.”
하지만 지금 위씨는 진짜농사꾼이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11월 8일 오후 위씨는 관리기를 이용해 마늘밭 고랑을 만들고 있었는데 운전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밭갈이를 마친 그에게 솜씨가 좋다 칭찬하자 “처음엔 기계를 사놓고도 인부를 사서 밭을 갈았다”며 “그땐 갑갑하고 막막하고 답도 없었다”고 멋쩍어 했다.
위씨는 올해 논밭 4300평을 부쳤다. 이날 작업은 육쪽 마늘을 심기위한 것이다. 스페인 마늘은 벌써 심었다. 그는 “마늘은 상대적으로 가격등락이 적다. 양파는 작업량과 무게에 비해 수입이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위씨는 올 여름작물은 고추를, 가을작물은 서리태, 메주콩, 쥐눈이콩 등의 콩류와 들깨를 심었다. 농사 성적은 작년과 재작년에 비하면 그런대로 괜찮다고 했다.
“처음엔 의욕이 넘쳤습니다. 내려온 다음해 1300평 논밭에 마늘, 고추 등의 양념류와 밀 등의 잡곡류를 심었어요. 결과는 마이너스였죠.” 게다가 친환경 농사를 고집했다. 농약도 인터넷을 뒤져 직접 만들어 썼다. 수확은 형편없었다. 2011년 4300포기의 고추를 심어 달랑 15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마른 고추를 10근도 못 땄다.
위씨는 열심히 공부했다. 하루 두세 시간 자면서 밤엔 인터넷을 통해 공부했고 낮에는 농민들 하는 것을 눈여겨봤다. 그래도 수확은 늘지 않았다. 현실과 이상이 너무 달랐다. “지난해까지는 사실상 귀농 예행연습이라고 보면 된다”고 위씨는 말했다.
그는 “귀농하면 무조건 무농약 농사짓는다고 하는데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건 농사 기술을 충분히 터득한 뒤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고백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올 농사의 70%는 자신의 방식(무농약)으로, 30%는 관행농으로 지었다. 타협을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위씨의 태도를 바꾼 것이다.
농사는 장기플랜(계획)이 중요하다고 위씨는 강조했다. “어제나 내일이나 똑같은 농사는 10년 후에도 똑같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장기계획을 세워 가려고 합니다. 이러한 장기계획은 귀농 전엔 세울 수 없어요. 기후나 토양 변수는 와서 그리고 살면서 자신에 맞게 만들어 가야합니다.” 그는 “귀농인의 패착에는 그런 것이 많다”고 조언했다.
내년 봄에는 하모니와 퍼플퀸을 재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농지 800여 평도 준비해뒀다. 자두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저장성이 뛰어난 과일이다.
사이버농민회로 선정된 유경희씨는 ‘부부지간 농장 대둔산 흙곶감’이라는 자체브랜드를 개발해 가게소득 증대를 기대하게 하고 있다.
위씨 부부는 요즘 만수동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짓고 있다. 구재마을에서 차로 5~10분 거리에 있다.
“귀농해서 땅 사고 집짓는데 햇수로 3년 걸렸습니다. 귀농한 뒤 임대한 집이 마을 복판에 있었는데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이젠 마을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려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러면서 위씨는 “귀농인은 마을 한 가운데 살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시골에서는 문 열어놓으면 반은 내 집이고 반은 남의 집이다. 삶이 적나라하게 개방되니 마을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도시의 보호된 삶에 익숙해진 귀농인들에겐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니”라며 “처음엔 될 수 있는 한 외곽에서 사는 게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선 반론도 만만치 않다. 마을주민과 빨리 친해지려면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사람 나름이다.
위씨는 귀농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첫째, 서두르면 안 됩니다. 1년 작물이기 때문에 느긋한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저는 5년을 생각하고 들어왔어요. 제대로 농사를 지으려면 앞으로 5년은 더 있어야 돼요. 둘째, 눈높이를 낮춰야 합니다. 귀농 초부터 농촌생활이 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셋째, 현실과 타협하세요. 막무가내로 무농약 만을 고집하지 말고 현실과 적절이 타협해야 합니다.”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환경적응이 필요하다.
그는 3년 동안 지내면서 마을주민들과 갈등 없이 지내는 법도 터득했다.
“어른 대접 해드리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정적인 상황에서 토박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외돼요.”
그렇다면 위씨 부부에게 시골살이의 즐거움은 뭘까.
위씨는 “도시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활동법위가 좁아지지만 시골은 나이를 먹어도 뭔가 할 일이 생긴다”며 “시골과 도시 생활의 차이는 나이 먹어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을 돌며 귀농지를 물색할 정도로 귀농에 더 적극적이었던 유경희씨는 “문화 활동이나 외식 등의 욕구는 아직도 못 버렸다. 하지만 자꾸 적응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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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 경험담 현장서 들으니 농촌의 삶 와닿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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