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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3] 새 술은 새 부대에2023-01-10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3]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술은 새 부대에



은 가장 향기로운 발효음식이다. 우리가 사랑해온 된장, 간장, 식초, 젓갈, 김치, 청국장, 치즈 등의 냄새와 비교해보자. 대개 좋은 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청국장이나 김치의 냄새가 아무리 구수하고 식욕을 당기는 냄새라 할지라도 우리의 음식문화가 낯선 외국인들에게는 당황스러운 냄새일 수 있다. 술의 향은 만국공통어이다. 나라마다 특징적인 음식문화와 상관없이 좋은 술의 향은 모두가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술의 냄새가 아닌 향()을 맡는다고 한다.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빚는 와인은 포도의 아로마(aroma, 포도 본연의 향)가 오크통 속에서 발효와 숙성을 거치면서 매력적이고 복잡한 부케(bouquet, 발효 숙성을 거쳐 생기는 다채로운 향)를 발산한다. 와인잔이 깊고 투명한 이유는 와인 고유의 색을 감상하고, 와인을 흔들어 깊은 유리잔에 휘감겨 모이는 부케를 맡기 위함이다. 잘 빚어진 우리술의 청주나 탁주에서도 역시 꽃향이나 과일향, 특히 자두나 돌배, 복숭아향에 비교되는 이상적인 향이 나는데 우리는 이를 방향(芳香)이라고 표현한다. 술의 색과 향은 맛보다 먼저 느끼는 관능적 요인이어서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은 우리술의 방향(芳香)이야말로 세계적인 술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강조하곤 한다.

방향을 얻기 위해서는 술 빚는 모든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좋은 재료를 고르고, 도구를 철저히 소독하고, 쌀을 깨끗이 씻고, 고두밥을 고루 익히고, 잘 섞어 술독의 발효온도를 잘 맞춰줘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마쳐 향이 좋은 술을 얻었다면 술을 걸러 깨끗한 용기에 담아 밀폐시켜 일정한 낮은 온도에서 보관해야 방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 어느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한다면 얻고자 하는 완벽한 향이 조금씩 흐트러지거나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 오염된 코르크 마개나 병을 사용했거나 온도관리를 잘못해서 생기는 와인의 상한 냄새를 부쇼네(bouchonne)’라 한다. 와인의 질을 떨어뜨리는 가장 대표적인 이취(異臭)이다. 일본의 양조장에서도 양조가 시작되는 첫 번째 작업이 바로 양조장 청소라고 한다.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모든 도구를 철저히 씻고 말려 외부 환경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술 역시 향을 저해시키는 여러 요인이 있다. 잘못 고른 누룩에서 나는 누룩취, 온도관리를 잘못했을 때 나는 꿈꿈한 냄새, 시큼한 냄새, 발효통이나 술빚는 도구 관리를 잘못해 나는 이취 등이 대표적이다. 옹기항아리는 술을 발효시키는 가장 적합한 도구지만 오래 사용하면 항아리 내부에서 장냄새가 난다. 항아리의 미세한 틈에 술이 베여 부패하기 때문이다. 항아리 장내를 없애기 위해서는 수시로 증기소독하고 햇볕에 말려두어야 한다.

 

비단 술뿐 만이 아니다. 의사의 의료 도구, 요리사의 조리 도구, 농부의 농기구, 화가의 화구, 학생의 필기구 등이 얼마나 잘 정돈되어 있는지가 모든 일의 시작일 수 있다. 새해를 맞이했다. 구석구석 대청소를 하고, 술 빚는 도구들을 정돈했다. 냉장고에 두서없이 쟁여두었던 술들도 먹을만한 술과 소주 내릴 술, 모주 끓일 술로 분류해 정리했다. 옹기항아리를 햇볕에 널어두고, 주걱, 대야, 찜솥, 고두밥 천과 같은 도구들을 정돈해 제자리에 두었다. 수없이 무심히 들고나는 집이지만, 공들여 청소하고 나니 비로소 작년과 새해가 명확히 구분된 느낌이다. 묵은 먼지와 때를 벗겨내어 말끔해진 가재도구가 새해에도 잘살아보자고 말을 건넨다. 햇볕을 쬐고 있는 술항아리들은 올 한해도 향기로운 술을 품어내 주겠다고 약속을 해줬다. ‘새 술은 새 부대에란 말은 낡은 것을 버리자는 의미라기보다 깨끗이 닦고 고쳐 씀으로 새로운 시작을 열어보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집에서 빚는 술)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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