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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햇살같은 사람, 운주면 평촌마을 김민주 씨2023-01-10

봄날의 햇살같은 사람, 운주면 평촌마을 김민주 씨



봄날의 햇살 같은 사람


운주면 평촌마을 김민주 이야기

 

세상에는 부지런한 사람이 참 많지만 나는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다. 행동이 날랜 편도 아니어서 어린 시절부터 독립생활자가 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집안 어른들로부터 적지 않은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다. 그 시절에는 부지런하지 못함을 나의 결함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그것을 나만의 고유한 삶의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삶이 리듬이 있다고 믿는다. 대둔산과 천등산 사이로 이어지는 17번 국도변 운주계곡 옥계천 옆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김민주(52) 씨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하지만 부지런함이라는 표현으로는 다 담기 어려운 그녀만의 고유한 삶의 리듬이 있었다.

 

천등가든은 결혼하고 나서 18년 동안 하다가 작년 3월부터는 다른 분에게 세 내주고 여기 카페는 3년 전에 오픈했어요. 곶감도 결혼하면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고요. 여러 가지 사정도 있지만, 봉사활동을 더 많이 하고 싶어서 정리했어요. 연탄 나눔 자원봉사 8, 운주면 자원봉사 15, 봉동 호롱불 봉사회 집수리 봉사는 2년째 하고 있는데 저는 주로 도배하는 일을 해요. 15년 동안 하고 있는 운주 사물놀이에서는 북을 쳐요. 북 잘 친다고 완주 고수상도 받았어요. 저는 뭐든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고 죽을 때까지 봉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움직이고 뭔가를 해야 직성이 풀려서 궁뎅이를 붙이고 있을 수가 없어요.”





가게 뒤 옥계천. 5월이 되면 민주 씨는 이곳에서 하루 종일 다슬기를 잡는다.



    


20대 시절 김민주 씨. 드라마 토지의 주인공 최수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던 때였다.


그녀의 이력과 활동 반경은 마을 부녀회장, 완주 정보화 농업연구회 부회장, 운주면 주민자치위원회 간사, 생활개선회 운주지회 부회장, 운주 방범대원 등으로 이어지고 그 바쁜 와중에도 2013년에는 방송통신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그러고도 틈만 나면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촌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면사무소에서 난타도 배우고 배드민턴도 배우고 캘리그라피도 배운다. 특별히 이익이 되지도 않는 일들이지만 그야말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달이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저는 전주 팔복동에서 태어났어요. 22녀 중에 막내딸로요. 부모님이 흥부상회라는 쌀집을 하셨는데 어렸을 때는 항상 풍족했던 것 같아요. 아쉬운 거 하나도 없이 사랑을 듬뿍 받고 컸어요. 친정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엄마한테 많이 배웠어요. 저희 엄마가 불쌍한 사람 오면 무조건 뭐라도 쥐어서 보내주고 그랬어요. 엄마가 맏며느리라 손도 크고 늘 베풀고 사는 걸 어려서부터 봐왔죠. 엄마 영향이 커요. 지금 제 마음도 그렇고요. 그냥 사람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요. 내 몸이 귀찮고 돈이 안 되더라도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이 엄청 기분이 좋아요. 그냥 내가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고 그냥 저녁에 잘 때 잠도 잘 오고 어쩌면 내 마음 편하려고 그러는 건지도 몰라요.”

민주씨는 전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전주여상을 나와 스무 살부터 서울에 있는 금강제화 총무부에서 7년을 일했다. 서울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170cm48kg이라는 경이로운 몸매의 소유자로 회사의 모델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지금 성격과는 다르게 말수도 적고 내성적이었던 민주씨는 전주로 내려와 옷 가게를 열고 가구점, 등산복 매장 등을 운영하며 꽤 성공적인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그때 등산복 매장에 오시던 시어머니의 적극적인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서른여섯에 결혼을 했다.






결혼하면서 처음 시작한 곶감 만드는 일이 지금은 주업이 되었다.



등산복 가게를 하던 때인데, 단골로 오시던 아주머니가 항상 아들 옷 100만 원어치를 사가시는 거예요. 그분이 결국 제 시어머니가 됐죠. 저를 보니까 예쁘장하니 일도 잘하게 생겼고 남자 고생 안 시키게 생겼다고 해서 저를 딱 며느리감으로 찍은 거죠. 매출을 많이 올려주니까 우리 아들하고 저녁밥 한 번만 먹어달라고 부탁을 하시니 제가 어떻게 안 한다고 하겠어요. 그렇게 처음 만나고 나서부터 신랑이 6개월을 우리 집 앞에 와서 안 가는 거예요. 그렇게 저 서른여섯, 신랑 마흔에 결혼을 했고 이곳 완주에 오게 됐죠. 시댁은 비봉이고 결혼해서부터 천등가든을 시작했어요. 남편(국윤상)은 결혼 전에 대둔산 동심바위 휴게소에서 일을 했어요. 동동주를 만들어서 등짐 져서 올라가 팔았어요. 50만 원짜리 호랑이 박제를 사서 대둔산 정상에서 5천 원 받고 즉석사진을 찍어주며 억척스럽게 돈을 벌었죠. 마흔이 되도록 여자를 한 번도 사귀어 본 적이 없는데 저를 운명처럼 만나게 됐답니다.”

전주와 서울 같은 큰 도시에서 살다가 처음 해보는 산골살이였지만 민주씨는 불편하거나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마을에 계시는 어르신들이 좋았고, 앞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대둔산과 천등산 그리고 그 사이로 흐르는 옥계천이 있어서 그냥 원래 이곳에 살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사계절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봄을 좋아한다고 했다.

 



남편 국윤상 씨와 함께.



저는 봄에 다슬기 잡는 걸 엄청 좋아해요. 5월부터 물이 좀 따뜻해지거든요. 요 앞 옥계천에 나가서 하루에 두 시간씩 다슬기를 꼭 두 달을 잡아요. 잡아서 동네 할머니들도 나눠드리고요. 다슬기 잡는 게 고요한 명상이기도 하네요. 물소리, 새소리 들으면서 참 좋아요. 힐링된다고 해야 되나, 그 순간이 그냥 멈춘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또 봄에 고사리 뜯는 거 좋아하거든요. 고사리 한창 나는 그 한 달 동안 산속에서 바쁘게 지내고 고사리 철 지나고 5월 말경이 되면 다슬기 철이 돌아와요. 그래서 봄이 좋아요.”

민주씨는 나이가 들어가며 사회생활과 봉사활동을 늘려갔다. 그 사이에 내성적이었던 성격도 더 활발해지고 편안해졌다고 한다. 원래부터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 민주씨를 아는 사람들은 민주씨를 밝고 명랑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민주씨는 자신의 그러한 변화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른 사람의 형편에 따라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지금의 삶이 즐겁고 소중하다고도 했다.

 





선물용 곶감을 포장 중인 김민주 씨.




에너지가 넘치는 긍정의 아이콘, 누구한테든 희망적인 사람, 유쾌한 사람, 마음이 밝고 환한 사람.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이건 노력만 해서는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내 마음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더 중요해요. 특별히 계획을 세우거나 어떤 의도를 앞세우면 금방 지치고 또 표시가 나는 일이죠. 난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냥 내 마음에서 끌리는 대로 해요. 계산하지 않고 내가 뜻이 있으면 그냥 해요. 부모님이 날 착하게 태어나게 해줘서 마음이 악한 곳을 향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이렇게 산속에서 사람들하고 즐겁게 어우러져서 살다가 가면 그만이에요. 큰 목표는 없어요.”

 

지난 한 해를 살아내느라 몸의 기운이 가라앉은 나날들이다. 며칠 푹 쉬면서 여행을 다녀올까, 영양제를 먹어볼까, 슬그머니 돈 쓸 궁리를 하다가 역시 기운은 사람에게 받는 기운이 좋다는 걸 깨닫는다. 겨울에도 봄빛을 품고 있는 사람, 김민주 씨 덕분이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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