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장미경의 삶의풍경

반에서 제일 싫어한 여학생이 아내가 될 줄이야! 2022-07-20

반에서 제일 싫어한 여학생이 아내가 될 줄이야!

탄호아에서 온 쭈엔과 하이

 

7월의 논은 고요하다. 한낮의 더위에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하다.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사사사’. 아무리 작고 순한 바람이라도 여름 한낮의 논에 발을 들이면 소리를 내고야 만다.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작은 소리들이 마음 깊은 곳에 남는다. 7월에 만난 사람의 삶 속에도 한 여름 논 풍경이 깊이 남아 있는 것 같다.

 

, 지금부터 잠시 눈을 감고 그들의 17살 무렵 서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 모두 오랜만에 17살이 되어 보는 것이다. 너른 논 사이로 하얀 가르마 같은 길이 나 있고 그 길 위에 자전거 굴러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곳은 베트남 중북부 지방의 탄호아.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자전거를 운전하고 있는 소년은 마이 반 쭈엔(87년생). 뒷자리에 타고 있는 소녀는 리티 하이(87년생). 쭈엔과 하이는 한 동네에서 태어났고 중학생 때부터 쭉 같은 반이다. 10km가 넘는 등하교길을 매일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다닌다. 초록빛 논 사이 길을 달릴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마이 반 쭈엔은 뜻밖의 말을 전했다.

 

더워요. 너무 힘들어요. 그늘 없어요. 뒤에 여자 친구 태우고 로맨틱 할 거 같은 거, 그거 너무 영화에요. 자전거로 10키로 넘게 달려야 하는 길이에요. 추수철에는 도로에서 나락을 말리니까. 자전거 타고 다니기 힘들어요. 지금 느낌은 그거 밖에 없어요. 중학교 때는 서로 싫어했어요. 서로 너무 안 맞아서 많이 싸웠어요. 우리 반 40명 중에서 여자는 15명 정도 되었는데 그 중에서 이 사람이(지금의 아내, 리티 하이) 제일 마음에 안 들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가면서 같은 반 되었는데 오토바이 타거나 자전거 탈 때 항상 같이 다녔어요. 제 뒤에 타고 많이 다녔죠. 사실 고등학교 때 제 마음 조금 움직이긴 했죠. 그렇게 되었어요.”

 

내가 하는 연애보다 남이 하는 연애에 이렇게 두근거려도 되는 것일까^^ 고등학교 졸업 후 쭈엔은 북쪽의 하노이, 하이는 남쪽의 호치민으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지만 오히려 마음은 가까워졌다. 마이 반 쭈엔은 전문대 2년 졸업 후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 당시 베트남 젊은이들 대부분은 한국으로 건너가 취업을 했다.

 

대학에서 냉동기술 전공했어요. 20071220일 한국으로 들어왔죠. 그 당시 베트남 대학교에서 한국으로 연수 보내는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그런데 한국 와서 전문적인 기술 못 배우고 비전문 일 했죠. 나는 큰 기대는 하고 오지 않았어요.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 좋았죠. 처음 들어온 곳이 남원이에요. 그 당시 남원에 호남철망이라는 공장에서 1년 일했죠. 그 사장님이 봉동에도 공장 있었어요. 봉동 덕천하이트아파트 밑에 아이비펜스라고 철망 만드는 회사에요. 그 곳에서 5년 동안 일했어요. 사장님 따라서 완주로 오게 되었죠. 그 뒤에 봉동 대원기계에서 2013년에 일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대원기계사장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제가 비전문 비자에서 전문비자 그리고 국적 취득하는 데 까지 그 과정을 사장님이 도와주셨어요. 그 사장님과 인연이 깊죠.”




사진 아래_ 짜 루어. 베트남 전통 소시지. 베트남에서 소시지 만 드는 기계를 들여왔다. 어머니 비법으로 만들어서 신선한 소시지 를 아시아마켓에 팔 예정이다. 설날에 먹는 찹쌀떡 바인쯩.



지인에게 인수 받은 베트남 식당을 20224월부터 운영하게 되면서 회사를 그만두려 했지만 사장님과의 인연 때문에 야간근무 중심으로 일하는 시간을 변경했다. 쭈엔은 바쁜 점심시간에 아내 하이의 식당일을 돕고 있다. 그렇게 한국살이 15년째가 되어간다.

쭈엔이 취업비자로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하이는 베트남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신문사 기자가 되었다. 2009년 약혼 후 2012년 결혼하면서 하이는 고향으로 돌아와 읍사무소에서 5년 정도 근무 했다. 첫째 아들 마이 안 부가 태어났고 안 부가 6살 되던 해 2018년 한국으로 온 가족이 이주하게 되었다. 둘째 마이 체리는 2019년에 태어났다.

이들 부부에게 식당일은 생소한 일은 아니다. 마이 반 쭈엔의 부모님은 고향에서 지금도 정육점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그들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름은 꽌 꺼이 보데. 꽌은 ~식당,~집이라는 뜻이고 꺼이 보데(cay bo-de)는 보리수나무다. 가게 앞에 백년도 넘은 큰 보리수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위_ 고향친구가 부부가 된 날, 자 전거 타고 함께 다니던 길에서 결혼식 날 행진을 했다. 쭈엔과 하 이는 자동차에 타고 있고 친구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식당일을 도왔어요. 부모님이 새벽 3~4시에 일어났어요. 돼지고기 한 마리를 잡아요. 그걸 하루에 다 팔아요. 엄마가 정육점 일하면 아빠랑 나는 식당일 했어요.우리 정육점에서 파는 짜 루어(소세지) 정말 맛있어요. 형제는 3남매였는데 큰 형은 저보다 5살 많고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녔고. 동생은 저보다 7살 어리고. 그러니까 중간에 제가 부모님 일을 많이 도왔죠. 일 년에 4일만 쉴 수 있었어요. 설날만 빼고. 그래서 설날만 기다렸죠.설날에는 항상 잔치상을 준비해 놓아요. 친구들, 가족들이 오니까 언제든 손님이 오면 대접할 수 있게. 설날 꼭 먹어야 하는 전통음식 있어요. Cha lua 조 루어 또는 짜 루어라고 부르는 바나나 잎에 싼 전통 소세지에요. 그리고 Bánh chưng 바인쯩 이라고 부르는 찹쌀떡이에요. 이 두개는 설날에 꼭 있어야 하는 음식이에요. 베트남 사람들은 집에서 잘 놀아요. 손님들이 오면 너무 좋아.”

 

올해 4월부터 식당을 시작했으니 아직은 낯설고 고민도 많다. 특히 하이는 한국에 오자마라 아이 낳고 키우느라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다. 올해는 한국말 공부하는 것이 목표이다.

한국에서 식당하면 서비스 고민 많이 되요. 손님 나가면 첫 번째로 하는 행동이 접시를 봐요. 음식을 남기셨나, 안 남기셨나. 긴장 되요. 많이 남기셨으면 고민이 많이 되죠. 빈 그릇이 제일 좋아요.”

막내 동생도 한국 들어와 오산에서 일하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대부분 대도시로 떠났는데 쭈엔과 하이 부부는 지금 살고 있는 봉동을 사랑한다. 경쟁적인 분위기보다는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봉동이 좋다고 한다.


이들 부부에게 한국 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물었다. 건강, 행운, 행복. 그 중에 행복은 베트남 말과도 비슷하다. ‘~’. ‘행복

리티 하이의 베트남 말이 오래도록 귀에 남는다. 낮고 작은 목소리지만 세심하게 오르내리는 특유의 성조. 수첩에 적어 둔 그들의 모국어를 따라 읽어 본다. 어려운 말들이다. 하지만 거듭 연습해서 적어도 그들의 이름을 완벽하게 불러보고 싶다.

 

마이 반 쭈엔! 리티 하이!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눈 뜨자마자 싸리문을 여는 이유
다음글
매일 고산천을 1시간씩 걷는 성실한 동네주치의!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