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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봉동 무관마을] 정영호 이장2022-03-17

[봄이 오는 봉동 무관마을] 정영호 이장

집 툇마루에 나란히 앉은 정영호 이장부부


감자 심고, 생강 심고. 다가오는 봄 준비 한창


무탈히 지어서 자식들에게 좋은 놈들 보내야지

어느덧 두꺼운 외투를 걸치지 않아도 될 만큼 봄기운 완연해진 날씨에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마을을 거닌다. 때마침 정영호(72) 이장이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은행나무에서 따온 열매를 하나씩 으깬다. 이렇게 손질한 은행은 볶아서 반찬으로 먹을 참이다. 그의 집 처마에는 고구마 순, 당귀, 영지버섯, 옥수수수염 등이 건조돼 있고, 뒷마당에 놓인 참나무에선 표고버섯이 자란다. 모두 그의 손으로 말리고, 키우는 것들이다.



올해 농사지을 다양한 씨앗들


그는 무관마을 토박이다. 할아버지 대부터 이 마을에 터를 잡고 3대째 살고 있다. 그의 조부와 아버지는 현재 집 바로 뒤편에 살았고, 그가 태어나면서 이곳에 주택을 새로 지어 이사 왔다고 한다. “이 집이 나랑 고스란히 세월을 함께하고 있지.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집도 많이 낡아 있어. 자식들은 이제 도시로 가자고 하는데, 그래도 남아서 고향을 지켜야지 싶더라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이들 뛰노는 소리로 가득했던 마을은 이제는 인기척도 없이 고요해졌다. 자신마저 떠난다면 마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녀들의 성화에도 쉽사리 걸음을 뗄 수 없다. 이것이 그가 올해로 9년째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부터 유독 논밭이 적었던 마을은 농사지을 땅이 귀했고 농업 용수마저 부족했다. 농사 수익으로만 자녀들을 키울 수 없었던 영호 어르신은 결국 다른 일을 겸업해야했다. 당시 광케이블 설치 공사를 했는데, 매번 높은 곳에 올라야 하기에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출장이 잦아 일주일에 다섯 번은 숙소 생활을 해야 했다. 유일하게 집에 올 수 있던 주말마저도 밀린 농사일을 해내느라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대전에서 10년을, 충남과 전북에서 25년 보내며 가족들을 부양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삼 형제 다 대학까지 가르쳤어. 아이들 학비도, 결혼한 후에는 신혼집도, 자가용도 전부 내 힘으로 벌어 해줬지. 자식들만큼은 부족함 없이 키우는 게 내 목표였으니까.” 듣기만 해도 고된 생활이었음이 그려지는 지난 세월에도 어르신은 힘들었다는 말 대신 만족스럽다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현재 그는 나락, 감자, 생강 등을 키우며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봄맞이 감자 파종을 했고, 곧 생강 파종을 앞두고 있다. 아직은 한가로운 때라 여유를 즐기는 편이다. “요즘에는 별로 일이 없어. 아침 일찍 일어나서 TV 시청하고 식사하고, 볼일 보러 읍내 나갔다 오기도 해. 그러다 보면 어떤 날엔 이렇게 젊은 청년들이랑 이야기할 일도 생기고(웃음)”


그에게 올 한해의 바람은 무엇인지 묻자 언제나 그랬듯 어김없이 자녀들의 건강과 안녕을 최우선으로 빈다. “한 해 농사 잘 지어서 자식들에게 맛 좋은 쌀, 감자, 생강 보내는 게 바람이지. , 아이들 건강하고. 코로나가 좀 없어지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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