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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노래] 12. 게으른 여자, 부지런한 감나무2021-11-12

[사람의노래] 12. 게으른 여자, 부지런한 감나무


베어버리지 않기를 잘 했다


고산으로 이사온 집 마당에는 오래 된 감나무가 네 그루나 있다. 임대계약일에 만난 집주인은 가을에 잎이 너무 떨어지니 그 중 세 그루를 베어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라 아직 죽은 게 아니니 그냥 놔두자고 하였고, 집 주인은 “그럼 한번 겪어보세요.”라고 말하며 살짝 웃었다.
그렇게 가을이 시작되자 감나무는 새로 이사 온 도시 촌뜨기에게 대단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밤마다 예전 소 외양간 지붕으로 딴딴한 놈들을 툭툭 떨어트려 밤잠을 설치게 하였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앙칼지고 단단했는지, 마치 감정이 실린 소리처럼 들렸다. 잠깐이지만 ‘누군가 우리집에 돌멩이를 던지나?’ 생각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감나무는 마당에 대자로 누워도 등이 안 베길 정도의 두터운 낙엽을 매일매일 쏟아내었다. 마당을 쓸어본 적이 없는 나는 그냥 두고 보며 나름 멋있다 생각을 하기도 하였고 또 어느날은 깨끗이 쓸어보겠다고 효과적이지 못한 움직임으로 빗자루를 들고 허공을 쓸다가 ‘이거 너무 어려운데….’ 하며 슬그머니 집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거름도 약도 치지 않고 방치되었던 감나무는 그 정도로는 인사가 모자랐는지 담을 넘어 도로로 다 익은 감들을 내려보냈다. 바닥에 질펀하니 터져버린 반투명한 주황색 감들은 도대체 어떻게 치워야하는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게중 무사히 떨어진 아이들은 내가 주워먹기도 하고, 항아리에 넣어 감식초를 만들기도 하고 또 몇개는 지나가던 고물장수 아저씨가 조심히 담아 싸갖고 가기도 하셨다. 마을 몇분은 우리 담 밑에서 ‘이 나무를 베어내야한다’, ‘아니다 이 가지만 다 잘라내면 된다’, ‘지저분해서 큰일이네’라며 얘기를 나누기도 하셨다.
짧은 몇달이었지만, 감나무는 열심히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눈이 가는 곳곳마다 감주황색으로 가득 차 버린 완주에서 여느 감나무라도 해야하는 일이었겠지만, 낙엽을 떨어트리고 약한 감들을 내보내며, 새에게 달콤함을 나누어주고, 함께 사는 사람에게 넉넉한 먹거리를 주며 정말 부지런을 떠는 듯이 보였다. 더 나아가, 낙엽을 치우는 빗자루 질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게으른 세입자 교육까지 감나무는 해냈다.
각자의 할 일을 잘 하여 내 밥벌이를 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잘 산다고 믿던 편한 생각은 완주에 와서 많이 바뀌었다. 나의 할 일 안에는 정말 많은 것이 포함되었다. 주문하면 현관 문 앞에 있던 생필품을 사러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나가야 하는 것, 그것을 옮기는 일, 배달이 안되는 마을에서 밥을 차려 먹는 일부터, 감을 따는 일, 쌓여가는 감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는 일, 낙엽을 치우고, 며칠에 한 번씩 쓰레기를 태우는 어르신께 내가 직접 하소연을 하는 일 까지. 도시에서 누군가 나 대신 해주던 일이 이제 모두 내 일이 되어버렸다.
게으른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누군가 얘기했었다. 나의 기본생활을 위한 많은 과정들을 게으른 마음으로 모두 남에게 미루어버리던 나는 올해 감나무에게 호되게 당했지만, 가을 내내 호들갑을 떨다 이제는 앙상해져버린 감나무를 찬찬히 바라보자니 베어버리지 않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경 (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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