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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저씨의 풀들을 위한 연가(戀歌)2021-10-13

산 아저씨의 풀들을 위한 연가(戀歌)


산 아저씨의 풀들을 위한 연가(戀歌)

삼례 사는 류승철씨 이야기

 

때로는 불문율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야생화 탐사자들에게는 장소를 묻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묻는 이에게 답을 안 하자니 야박하다 할 것이고, 답을 하자니 자생지가 훼손될 염려가 있으니 아예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 아저씨 류승철씨(62)는 스스로 불문율의 경계를 넘나들며 설악산에서 기생꽃을 찾아 헤맨 이야기를 들려주고 귀한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묻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

 

기생꽃이라는 꽃이 있어요. 꽃 이름도 신기한데 사진으로 본 꽃이 참 예뻤어요. 그런데 어디 있는지 장소를 물어봐도 안 알려 주는 거는 거예요. 야생화 찍는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불문율이 있는데 꽃이 있는 장소를 물어보지도 알려주지도 않아요. 그걸 알려주는 걸 되게 싫어해요. 누가 장소를 알려줬다고 소문나면 그 사람은 거기서 매장되는 거예요. 서로 묻지 않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죠. 귀한 건 묻지 않는 법이죠. 근데 하도 꿈에 나타나고 아른거리길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어요. 마지못해 알려준 게 설악산 안산에 가 보래. 근데 안산 어디쯤이요 라고는 차마 못 물어보겠더라고요. 새벽에 출발해서 무작정 갔어요. 가기 전에 도감도 찾아보고 생태조건도 공부해서 갔지요. 가서 세 시간 만에 그 꽃을 찾았어요. 꽃이 손톱만큼 아주 작은데 되게 고고해요. 높은 데 펴서 그런지.”

 


표본 하나 당 여러방향,각도에서 촬영을 하면 하루에 700장 가량의 사진을 찍는다. 한 여름에는 하우스 안 온도가 너무 높아 윗 옷을 입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산아저씨 류승철씨는 스스로를 잡놈이라고 표현했지만, 꽃과 풀, 나무, 숲에 대해서는 누구를 붙여놔도 이야기 상대를 할 수 있는 전문가라고 자부했다. 신문사와 영어학원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몸과 마음이 시들어버린 그에게 아내는 꽃다지라는 야생화 모임을 소개해주었다. 21년 전의 일이다.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 다른 삶으로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 되었다. 야생화를 찾아 산을 헤매던 5년 동안 곯았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숲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잡놈이에요. 대금도 불고 사진도 찍고 숲 해설도 합니다. 하하. 그래도 꽃 이야기를 하면 삼일 밤을 새우고 이야기해도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요. 식물 분야는 어떤 전문가를 붙여놔도 말 상대를 할 수 있으니까 이쪽 분야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요. 사업 망하기 전까지는 식물에 관심도 없었어요. 어렸을 때 강원도 산골에서 살았지만 흔한 나물 이름도 몰랐어요. 사업이 망하고 실의에 빠졌을 때 우리 집사람이 꽃다지라는 모임을 소개해줬죠. 처음에는 멍하니 그냥 따라만 다녔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겨울이 되고 한두 달 꽃 공부하면서 봄이 왔지요. 내 통장 탈탈 털어서 150만원 가지고 소니707 카메라를 샀어요. 낮에는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고 저녁에는 꽃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됐어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그때 꽃을 보면서 놀랐어요. ! 세상이 이렇게 예쁘다고? 설마 이런 것도 이름이 있을까 하는 작은 풀들도 다 이름이 있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 밭에서 흔하게 자라는 잡초 표본이 있는 하우스.


꽃을 만나면서 류승철씨의 인생에는 새로운 길이 생겼다. 아직 다 가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평생을 다녀도 다 못 다닐 꽃의 길, 풀의 길, 숲의 길들 말이다. 그 길들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끝없이 새롭고 예쁜 식물들을 만났다. 그것들을 발견하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사진 찍고 기록으로 남겨두며 얼마 전에는 <산 아저씨의 숲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전북대학교 이종민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헤아리는,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식물이야기라고 평했다. 지금은 식물 이야기를 동화적으로 풀어내는 새로운 책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힘들었을 때 꽃다지 모임을 소개해주고 밤낮없이 꽃을 찾아 헤맬 수 있도록 조용하게 배려해준 아내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꽃을 만나면서 전국 안 가본 데 없이 다 떠돌아다녔어요. 화천에 있는 산에 가면 무슨 꽃이 있다고 그래서 찾아갔는데 카메라 들고 배낭 짊어지고 비 오는 날 혼자 산을 돌아다니니까 누가 신고를 한 모양이에요. 군부대 차가 와서 총 들고 난리가 났어요. 거기서 뭐 하는 거에요! 거기 지뢰밭 표지판 못 봤냐고! 몰랐으니까 용감했던 거죠. 내 사진을 사람들이 예쁘다고 해요. 보통은 꽃이 작으니까 접사 렌즈만 가지고 다니거든요. 그렇게 찍으면 꽃만 보여요. 근데 나는 처음부터 꽃만 보지 않았어요. 꽃 주변의 풍경을 함께 넣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내 사진을 보면 시원하다고 해요. 어렵게 찾은 꽃이니까 한참 관찰을 해요. 꽃의 입장이 되어보는 거죠. 5년 애를 쓰다 보면 식물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때 비로소 보이는 건 그 전에 봐왔던 것들이랑 분명 다른 느낌이지요. 다른 게 보여요. 다른 게 보이면 정말 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식물에 대한 이야기죠. 그런 이야기들을 동화적으로 써보고 싶어서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내 별명이 인데 산아저씨로 살다가 결국에는 산할아버지가 될 거 아녜요. 산할아버지로 살다가 세상을 마감할 수 있으면 이건 뭐 알차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삶은 내가 만난 식물들에 대해 글을 쓰며 살아갈 거에요.”

 


숲해설 중인 승철 씨.


류승철씨는 최근 풀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을 시작했다. 농업 분야 스타트업이 연구하고 있는 밭 매는 기계를 개발하는 일에 풀 전문가의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작물과 잡초를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도록 사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일이다. 지난 7월부터 비닐하우스에서 수 만장의 잡초사진을 찍었다. 10월인데도 하우스 안 온도는 40도를 웃돈다. 나의 카메라 렌즈도 급격한 온도 차이에 습기가 가득 차서 촬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금세 땀으로 옷이 젖어 탈출하다시피 밖으로 나오면 시원한 블랙베리 식초 한잔을 건네신다. 직접 키운 블랙베리로 만든 식초. 이름 하여 초..! 자신의 힘의 원천이라며 틈날 때마다 식초의 효능을 알리는 식초홍보대사이기도 하다.

 

 


2020년 발간한 류승철씨의 책. 꽃과 나무 숲에 대한 그의 깊은 생각이 담긴 책이다.


사실 류승철씨는 구면이다. 2012년 세계순례대회가 열렸을 때 나는 영상작가로 아저씨는 사진작가로, 잠깐 동안이지만 함께 일했던 인연이 있다. 아저씨는 사진 찍는 틈틈이 다른 궂은일들도 거들었는데, 낡은 승합차를 몰고 다니며 거친 임도를 달려와 뒤처진 나를 구해주기도 했고 순례객들이 지칠 때쯤 앉아 쉬기 좋은 곳에 미리 가서 주섬주섬 꺼내 든 대금으로 멋진 연주를 들려주곤 했다. 그렇게 연이 된 아저씨가 <산 아저씨의 숲 이야기>라는 책을 들고 나를 찾아오셨다. 표지 안쪽에 오랜 벗에게라는 문구가 저자 사인과 함께 쓰여 있었는데 그 말이 참 다정하고 고마웠다.

벌써 100번째 삶의 풍경을 기록하고 있다. 100가지의 완주군 사람들과 풍경과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고 행운이다. 그럴 수 있도록 뒷배가 되어준 완두콩이 새삼 고맙다. 내가 만난 100명의 사람들, 그들을 만나게 해 준 또 다른 100명의 사람들 모두에게도 감사하다. 100번째 인터뷰를 무사히 마칠 수 해 준 나의 오랜 벗 산아저씨 류승철씨에게도.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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