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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아서 함께 만나는 여섯 친구 이야기2021-08-11

그냥 좋아서 함께 만나는 여섯 친구 이야기




그냥 좋아서 함께 만나는 여섯 친구 이야기

-한정임, 전경자, 유순애, 엄용자 할머니 이야기

    





 

삶의 풍경 역사상 처음으로 여러 명의 이야기 손님을 한꺼번에 만났다.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데 그냥 좋아서 친구가 된 여섯 친구 모두를 만나면 좋았겠지만 두 분은 개인사정이 있어서 네 분을 만나게 됐고, 이분들이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죽고 못 사는 친구 사이가 됐는지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오늘 이야기를 좀 더 실감나게 전해드리기 위해 TV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출연한 네 분을 인터뷰하는 형식을 빌렸다. 그리고 사전 준비 없이 진행된 인터뷰라 이야기들이 가끔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또 실제로 방송되지 않으니 존댓말을 쓰지 않은 점은 널리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다.

 

(스튜디오는 고산미소시장에 있는 소연식당. 테이블 위에는 안주로 보이는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이 놓여 있다)

    

장미경(오늘은 사회자): 안녕하세요. 고산 장날이면 이곳에 모여서 회포를 푸신다고 들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자리해 주셨네요. 오늘 분위기가 하루 이틀 만난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언제부터 만나셨고 만나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여러 가지가 궁금합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주시고 돌아가면서 편안하게 이야기 해주시죠.

 

전경자: 익산이 고향이고 열아홉에 운주로 시집와서 광두소마을에 살고 있어. 올해 여든 한 살인데 정임이 언니 덕분에 최고참은 아니여. 어떤 사람들은 우리더러 술 먹는다고 욕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부러워도 하는데 우리는 그냥 뭐 모여서 웃고 떠들고 술도 한잔씩 마시고 그런 재미로 만나. 자랑할 것도 없고 욕먹을 것도 없지. 엄용자 딸이 여기서 식당한다고 하니까 주로 여기서 모여. (한정임씨가 뒤늦게 식당으로 들어온다) 언니 여기여. 더운데 뭐헌다고 그렇게 돌아다녀. 꼬둘배기는 몇 단이나 샀는가?

한정임: 순례 동생이 언제 오냐고 계속 전화허네. 빨리 가보게.

     

나는 호기롭게 사회자를 자청하고 자기소개를 요청했지만 어느새 이야기는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기세 좋은 할머니들의 입담에 TV 토크쇼를 보는 시청자 마냥 손벽치며 웃을 뿐이었다. 한정임 할머니는 88세로 여섯 친구 중에 제일 언니다. 할머니의 별명은 택배다. 함께 밥 먹을 때도 반찬 떨어지기 무섭게 새 반찬을 갖다 주고 제일 발 빠르게 무엇이든 갖다 주니 동생들이 정임이 형님은 택배라며 한바탕 웃는다. 정임 할머니 동생 순례할머니는 최근에 몸이 안 좋아 율소리에 사는 딸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매일 보던 친구들을 못 보니 애달파서 아침부터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병문안 겸 친구들 데리고 가서 한바탕 놀고 싶은데 막내 용자 동생이 왠지 울퉁불퉁이다. 큰 언니는 자꾸 막내 눈치를 본다.

    






이 모임의 대장이자 막내 엄용자 할머니

 

엄용자: 나는 예순 넘어서 치매 걸린 우리 시부모님 똥치우고 사느라 고생했어. 근데 지금은 부모가 자식들을 안 보고 살라고 혀. 왜냐하면 너희들 마음대로 살으라고. 그래서 내가 순례언니한테 막 뭐라고 한 거야. 뭐헌다고 딸집에서 신세 지냐고. 나는 나 아프면 바로 요양원 보내라고 자식들한테 당부했어.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고 있는데 옆에 한정임 할머니는 상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전경자 할머니가 말을 거들면서 엄용자 엄마의 자식들 이야기와 상추이야기가 동시에 섞인다. 상추 이야기를 하다고 고기 구워먹자는 이야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언니들이 엉뚱쌩뚱한 이야기를 툭툭 해싸면 내가 팍 쏴버려. 쏴놓고도 어떨 때는 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성격이 워낙 급하니까. 여섯 명 중에서 막내인 내가 성격이 제일 화끈하고 나만 지랄혀(웃음)

한정임: 지랄해도 예뻐. 귀여워. 말하는 게.

엄용자: 그러니까 왜 맨날 나만 찾어?

한정임: 좋은 게 그려. 변함없고, 상냥하고. 다 좋아. 근디 성질이 좀 패동패동 해. 탁탁 쏘지.

전경자: 안 겪어본 사람은 서운하다고 하지. 우리는 아니까 이해를 해. 우리는 남이 뭐라고 해도 맞춰주는 성격이야. 그러니까 동생이랑 딱 맞는 거지. 모두들 첫 인상이 참 좋았어. 다 마음에 들더라고. 그래서 계속 보는 거야. 서로 서로 아껴주고. 여기서 한 말은 그냥 흘려버리고 말 옮기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야. 빈덕떨고 그런 사람들도 아니야. 서로 뭐라도 도와줄라고 하지.



운주 광두소마을에 사는 전경자 할머니





큰언니 한정임 할머니의 별명은 택배. 밥먹는 와중에도 떨어진 반찬을 살피며 갖다주기 바쁘시다


유순애: 뭐 있으면 다 주고 잡고 그래. 여기 용자 동생이 김치도 다 담아서 언니들 퍼주고 그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산악회에서 만났어. 십년 넘었을 거야. 관광차가 동네 돌면서 사람들 태워서 산에 가는데 그때 한정임, 순례 언니도 보고 이 동생 엄용자도 본 거지. 그때는 전화번호도 모르고 얼굴만 알고 지냈어. 한 삼사년 전부터 이렇게 거의 매일 만나는 사이가 됐지. 그때 여기 경자 언니도 만나고. 이렇게 한 팀이 되어서 만나기 시작한 거야. 나는 호적나이는 일흔인데 진짜로는 일흔 넷이여. 어우리 신덕마을에 살아.

엄용자: 산악회 같이 다닐 때 나는 오십대고 언니들은 육십대였으니까 그때는 술도 잘 마셨어. 술은 만나면 기분에 마시는 것이지 혼자서는 절대 안 먹어. 우리도 이제 늙어서 허리도 아프고 그러니까 산악회는 못 다니고 이렇게 식당에서 모여서 회포를 푸는 거지. 장날만 되면 서로 전화를 하는 해. 일주일에 두어 번은 꼭 보는 거야. 나올라냐고 아침에 물어봐. 나오기 전부터 전화 서로 돌려서 만나자는 약속하고, 고산서 만나고 놀다가 헤어져서 집에 잘 들어갔냐고 서로 전화를 해.

전경자: 재작년에 내가 하루 종일 전화가 안 된 적이 있었어. 진동으로 해놔서 온지도 몰랐던 거지.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엄용자 딸 봉고차를 타고 운주면 우리 집에 달려 온 거야. 다들 놀라서 왔는데 멀쩡히 있던 나도 뭔 일인가 놀라기도 하고. 내가 시방도 생각하면.. 아유.. 얼마나 걱정이 되면 그 먼 길을 달려왔겠나... 내가 뭐라고 여기까지들 왔나 싶기도 하고. 눈물이 나네. 그 고마움을 간직하고 못 잊어버리고 있지.

한정임: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랑해. 참 예뻐. 항시 사랑해. 어쩌다 이렇게 늦게 엮어졌지. 젊었을 때는 자식들 키우고 고생하며 살았지. 시방도 안 늦어. 시방도 실컷 만나면 되지. 지금부터 열심히 만나고 재밌게 살면 되지 뭐가 늦었어. 아직도 안 늦었어.

 

좋은 친구 사이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같은 지역에 살고 생각도 같고 나이도 비슷하면 더 좋을까. 그냥 좋아서 함께 만나는 여섯 친구들의 유쾌한 수다를 들으면서 알게 됐다. 친구 사이는 나이도 지역도 각자의 생각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친구의 소소한 이야기 가만히 들어주고 남 이야기 하지 않고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다른 곳에 옮기지도 않는 여섯 친구들은 그냥 그렇게 좋아서 만난다. 고산 장날 키가 훤칠하게 큰 할머니 뒤를 따라 천천히 걷는 다섯 분의 친구들을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손 한번 흔들어 주시라. 오늘도 내일도 사이좋게 재미지게 지내시라고.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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