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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기러기로 평지마을] 오순도순 열세 가구2021-05-17

[눈기러기로 평지마을] 오순도순 열세 가구


어울렁더울렁 사는 재미가 있네

 

첫순이나 후순이나 맛은 똑같아

 

비봉면 평지마을을 찾아가는 내내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눈기러기로라는 명칭에 관심이 갔다. 지번에서 도로명으로 주소체계가 바뀐 뒤 종종 사연이 궁금한 이름을 만날 때가 있다. 눈기러기로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은 것일까.

그러게. 왜 눈기러기론지 우리도 궁금해. 누가 이렇게 지었는가 모르겠어. 고산서 넘어오는 재 있지? 거길 우리 어렸을 때부터 능지리재라고 그랬어. 근거 있는 이야기는 아닌데 산 형태가 기러기가 누워있는 모양이라고. 능지리가 눈기러기로 바뀐 게 아닌가 싶은데.”




다음 지도를 찾아보면 눈기어재골이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이와 연관된 지명이 아닐까 싶었다. 앞서 몇 명의 마을 분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는 이가 없던 터여서 박병일(76) 이장의 말씀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평지마을은 밀양박씨 집성촌이었다. 지금은 타성이 더 많다. 주민 수는 13가구 25. 박병일 이장은 “1980년대 초만 해도 가구 수가 스물다섯이었는데 지금은 사람 숫자가 스물다섯이라며 웃었다. 변한 건 사람 숫자만이 아니다. 당시만 해도 산밑은 다 논이었다. “1980년대까지는 쌀 위주로 농사를 지었거든. 그러던 게 수박 등의 돈 되는 원예작물로 바뀌더니 지금은 하지감자나 고추같이 농사짓기 쉬운 걸로 바뀌었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이 먹으니 원예작물도 힘들어.” 근래엔 그마저도 못하게 생겼으니 노는 땅이 많았다. 그 자리를 태양광 패널이 차지했다.

김순덕(76) 어르신은 인근 밭에서 딴 두릅을 종이상자에 담고 계셨다. 요새 어르신의 두릅은 고산시장에서 4kg 한 상자에 6만 원에 거래된다. 첫순은 서리 맞아 죽고 지금 것은 후순이다. “산에서 옮겨 심은 두릅나무야. 먹으려고 밭둑에다 심었는데 많이 자라서 팔고 있지. 첫순 첫순 하는데 말만 그렇지. 첫순이나 후순이나 연한 놈은 맛이 똑같아.”

 


서울살이를 접고 53년만인 지난 2010년 귀향한 박태근-유유복녀 부부가 뒷뜰에서 막 캐온 쑥을 다듬고 있다.


산 쪽으로 완만한 오르막을 가다 보면 박태근(90)유유복녀(82) 부부의 집이 있다. 이곳은 언덕배기에 있다 보니 어디에 눈을 둬도 푸릇푸릇한 풍경이 펼쳐진다. 부부는 근방에서 캐온 쑥을 다듬고 있었다. 향긋한 쑥으로 쑥떡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우리 집 뒤뜰에 있던 쑥인데 이건 약도 안 뿌린 거라 깨끗하고 몸에 좋아요. 우린 마당에도 밭에도 약을 절대 안 써요. 맑은 공기에서 살려고 시골 온 건데 약 냄새 맡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평지마을이 고향인 태근 어르신은 서울살이를 접고 53년 만인 지난 2010년 귀향했다. “사람은 태어난 땅에 묻혀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것도 그렇고 옛날에 여기 산을 사놔서 돌아올 곳이 있으니까 다시 온 거예요.”

김성수 씨는 공무원으로 정년을 마친 뒤 이곳으로 귀촌했다. 그의 집 앞 텃밭에는 꽃이며 블루베리, 사과나무, 양파 같은 가지각색의 작물이 자라고 있다. 그는 잡초를 뽑고 있었다. “열심히 하면 좀 깔끔할 텐데 맨 풀이야. 두더지 때문에 못 살겠어. 두더지가 너무 많아. 땅을 다 뒤집어서 뿌리 있는 것들은 다 죽어버려.” 두더지 약도 놔봤지만 큰 효과는 못 봤다.

 

 

문단속 안 해도 걱정 안 해요

 

지형이 꼭 수선화를 닮은 모양이라 수선리라 불린다. 수선화의 다양한 꽃말 중에는 존경이라는 말도 있다고 하니 이름이 더 예쁘게 다가왔다. 수선리 평지마을은 이름처럼 굴곡이 적어 마냥 걸어 다니기에 좋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에 순덕 어르신을 다시 만났다. 어르신은 밭둑에서 머위를 뜯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머우라 하고 도시 사람들은 머위라 하지. 내다 팔려는데 조금 모자라서 더 땄어.” 어르신의 밭에는 완두콩과 하지감자가 자라고 있다. 땅콩 모종도 준비해놓았는데 서리 맞을까 무서워 못 심고 있다. 어르신은 비봉 능암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 스물네 살에 시집왔으니 벌써 50년이 넘었다. 부군인 국연호(81) 어르신은 앞 동네인 송수마을이 고향이다. 이래저래 두 분 다 비봉 토박이다.



어디선가 벌떼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언덕 위에 양봉장이 있었다. 박솔근(72) 씨는 이곳이 고향인데 전주에서 오가며 지내고 있다. “봄에서 가을 동안 양봉을 하는데 오늘은 꿀이 잘 되고 있나 한 번 보러 온 거야. 지금처럼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는 봄에는 채밀해야 해서 가장 바쁘고 여름에는 쉽싸리꽃(택란)을 따러 강원도에 가. 그렇게 해서 모은 꿀을 조합에 납품하거나 소매하지.” 양봉 규모가 200여 통에 달했다.






평지마을 이장 박병일 씨 상추밭에서 이웃들과 함께 작업으로 분주하다.


마을 초입 하우스는 마을 이장 박병일, 안은순(71) 부부의 상추밭이다. 아직 여름이 아닌데도 열기로 뜨끈뜨끈한 하우스 안에서 주민 여럿이 앉아 상추를 따고 있었다. 이병학(77) 어르신도 그중 한 분이었다. 어르신은 옆 동네 부수마을 주민인데 젊었을 적에 도시에서 원단을 파는 일을 했다. 지금은 자녀를 시집보내고 아내와 함께 한적한 저수지 앞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일손이 부족한 것 같아 자주 도우러 와. 이렇게 종종 돕고 가족과 나눠 먹을 싱싱한 상추를 얻어가지. 도시에 있을 때는 생각도 못 했는데 시골에 와 살다 보니 이렇게 서로 돕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네.” 함께 상추를 따던 장석순(68) 씨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 여기로 이사 온 지 5년 정도 됐는데 공기 좋고 이웃들도 다정해서 자리 잡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귀농한 최동활 씨가 본인의 밭을 소개하고 있다.


2년 전 군산에서 이사 온 최동활(58) 씨는 마당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아흔아홉 살 장모님과 아내와 같이 살고 있다. “군산에서 왔어요. 이 마을은 옛날부터 봐왔던 곳이에요. 동서네 가족이 먼저 와서 정착했고 저는 그 뒤에 왔어요. 가족들이랑 모여 살려고요.” 그는 동서랑 합쳐 1,000평가량의 밭을 가꾸고 있는데 2년간 상추, 생강 등을 조금씩 키워 어디 팔진 않고 가족들이 나눠 먹었다. 요새는 옥수수 심어놓고 돌보는 중이다. “도시보다는 여기가 나아요. 주민들 성품이 좋아서 문단속하는 집이 없을 정도예요.” 그는 이웃들과 어울렁더울렁 사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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