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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친구 김순천 아저씨2021-05-13

나무친구 김순천 아저씨



나무친구 김순천 아저씨

-인풍마을 임풍분재원 김순천

 

분재(盆栽)는 작은 화분에 식물을 심고 가꾸어 대자연의 큰 나무나 풍경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분재의 세계를 몰랐을 땐 분재가 그저 조용한 어르신들의 고상한 취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고산면 양야리의 화정저수지를 끼고 돌면 안수산과 서래봉, 서방산, 수양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인풍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마을 이름과 비슷한 임풍분재원(林豊)이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다. 각파이프를 구부려 만든 독특한 분재원 간판에 이끌려 나무친구 김순천(65) 아저씨를 만나게 됐고 그가 나무들을 위해 만든 집(하우스)이 대문 옆에 있는 두 곳 뿐이 아니라 집 전체를 빙 둘러 아홉 개의 나무집을 가꾸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어머니 이정례님과 함께


분재원의 대표는 내 동생 김순철이야. 내 동생이 유명한 사람이지. ‘나라꽃무궁화 전국축제무궁화 분재로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등 상도 많이 탔지. 그 작업 과정에 나도 늘 함께 했었어. 우리 형제가 함께 하는 분재원이니까. 바깥일과 큰일을 동생이 주로 하고 나는 분재원을 지키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나무 소개도 하고 편하게 접대해주는 사람이지. 우리 분재원에 있는 나무가 몇 종류나 되냐고 물어보면 이제는 하도 많아서 대답을 못해. 그래서 틈만 나면 나도 공부를 하는 거야. 제대로 설명해 주려면 사진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공부해야 해. 여기 있는 책들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어.”

 

분재원의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아저씨가 살고 있는 마을과 오래된 흙집과도 구분되지 않고 할머니가 가꾸는 오래된 텃밭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어떤 동은 전라북도 도청 분재들을 대신 관리해주는 곳, 어떤 동은 상태가 안 좋은 나무들을 보살피는 병원 같은 곳으로 기능이 나뉘어져 있었고 마당 한 켠에는 아저씨의 다용도 작업실도 있었다. 그곳에선 마을 어르신들이 커피를 마시고 귀촌한 청년들이 농사 상담을 하고, 수시로 드나드는 분재 애호가들이 아저씨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온갖 수다가 펼쳐진다고 한다.



 


아침에 여섯 시 넘으면 바로 일어나. 뉴스와 날씨를 보다가 나와서 커피 한잔 마시지. 아침밥은 안 먹어. 커피 한잔 마시면서 보이는 일을 시작하지. 여기는 전라북도 도청 분재 나무들을 대신 관리해주는 동이고 저기는 상태가 안 좋은 애들을 맡겨놓는 곳 말하지면 나무 병원이야. 아픈 애들 여기로 데리고 오면 살려서 보내는. 우리 분재원 단골 손님들한테는 가끔 오토바이 타고 출장도 가지. 여기서 데리고 간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보러 다니는 거야. 요즘에는 동네 이사 온 귀촌한 젊은이들이 자꾸 놀러와. 땅도 알아봐주고 농사 이야기도 하고 나무 이야기도 하고 그래.”

 

나무는 씨앗을 통한 번식 이외에도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술인 삽목, 접목, 취목을 통해서도 번식을 한다. 까마귀베게, 개쉬땅나무, 무늬등나무, 안경테버드나무, 가막살나무, 느릅나무, 장수보, 화련광, 금채, 녹산, 정광.... 분재를 소개해 주시는 아저씨의 레퍼토리는 끝이 없다. 2천 종류가 넘는다는 철쭉과 특별히 좋아하는 명자나무를 소개할 때는 오히려 말씀을 아끼셨다. ‘전라북도에 있는 명자나무와 철쭉은 거진 우리 집 새끼들이라고 보면 되지그 정도의 표정! 분재원에 있는 아홉 개의 나무집(하우스)과 집 앞 밭에서 자라고 있는 큰 나무들까지 대충 설명해주셨는데도 순천 아저씨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언제부터 나무들을 좋아하고 함께 했는지 궁금했다.



뿌리올리기 작업을 해놓은 모습



지금 사는 이 집이 할아버지 때부터 살았던 곳이야. 방 두 칸이었는데 팔남매와 부모님이 함께 살았지. 나는 열일곱 살에 돈 벌러 서울로 갔지. 자개공장을 다녔어. 서울서 공장 다니다가 김제 자개공장까지 가봤는데 육 개월 다니다가 그만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스무 살이 지나서 나는 내 자신이 마음에 안 들었어. 날 좋아하지 못하는데 누굴 좋아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게 된 거지. 이십대 시절이 진짜 힘들었어.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사람 많은 곳을 못가고. 병원에 가도 이유를 모르겠고 그저 숨이 안 쉬어지고. 그러다가 스무 살 후반에 만난 나무 덕에 내 인생이 달라졌어. 내 동생이 먼저 나무일을 시작했었거든. 집 앞 땅에 조경수를 심어 팔기 시작한건 한 40년 전이야. 동생은 그 사이 분재 관리사 자격증도 따고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고 나는 나무를 손질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내 증상이 요즘말로 공황장애였던 거야. 나중에 병원에서 진단받고 약 먹으면서 그런 증상이 싹 사라졌어. 술도 끊고. 나무 만나서 새 삶을 살게 된 거지.”

    


 

(위) 십대시절 펜으로 그린 화투그림  (아래) 떨어진 나무잎으로 만든 빗자루



아저씨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화투짝을 늘어뜨려 놓고 볼펜으로만 화투짝과 똑 같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나무를 깎아서 지게도 만들고 지금 살고 있는 집도 형제들과 함께 흙 져다 이기고 다져서 지은 것이다. 아저씨의 타고난 감각과 기술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나무의 시간을 헤아려 살아가는 마음이 더해져 분재원의 나무들은 따듯한 오월의 햇살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 것이 가끔은 후회도 되지만 마음은 지금도 이십대 시절 그대로여서 함께 살고 있는 노모(이정례. 93)와 나무들과 더불어서 오래토록 힘닿는 데까지 나무친구로 살아갈 거라고 하셨다. 분재원의 나무들에게 한 마디 부탁했다.



 


사랑한다. 같이 가자. 그거지 뭐. 간단해. 내 인생, 내 몸 다 바친 거야. 이 나무들 없다고 생각하면 사는 재미가 없어. 분재원 오는 손님들이 이렇게 좋은 기술 가지고 결혼 안하고 사냐 그런 말들 많이 하지. 그래서 내가 여자 손님들 오면 재밌게 해줘. 농담도 해가면서. 툭툭 던지는 말이 좋아서 하는 말이지 싫어서 내던지는 말이 아니야. 웃길라고. 넘들 보면 툭 쏜다고 할 테지만 그런 스타일이 일종의 내 애정표현이지. 아는 사람은 다 알아. 나는 아흔 셋 노모를 내가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누가 누굴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오히려 어머니 힘을 많이 받아. 내가 오죽하면 어머니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간다는 소리를 해. 이십대 때부터 그랬어. 그 소리를. 엄마 없으면 힘이 없어. 평생을 같이 살았으니까. 엄마가 다른 자식들한테 아쉬운 소리 못하고 욕도 못해. 나한테는 험한 소리도 다 해. 그 만큼 편한가봐. 그리고 내가 찌개도 잘 끓여. 어머니도 맛있다고 잘 드셔.”

 

돌배나무, 참빗살나무, 아그배나무, 으름덩굴, 느릅나무, 탱자나무, 해당화... 나무친구 순천아저씨에게 수많은 나무와 꽃들을 소개받았지만 다 거명하지 못하고 기억에 남는 것들만 쓰게 돼서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더 많은 나무와 꽃들이 궁금하다면 임풍분재원에 들러 순천아저씨를 만나보시라. 순천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나무 구경을 하다가 그가 가리키는 손끝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김없이 찔레꽃, 장미꽃, 해당화가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다만 조용한 마을에 자리한 곳이니 소란스러운 방문은 조심해야 한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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