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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기러기로 평지마을] 김송회 어르신2021-05-11

[눈기러기로 평지마을] 김송회 어르신


스물 두살에 이곳으로 시집 온 김송회 할머니가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다.



할머니 머리맡 수학책엔 글씨가 빼곡

 

전쟁 나 못한 공부 문제집 풀며 독학


거리에는 분홍빛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평지마을 버스 정류장을 지나 마을회관 뒤편으로 향했다. 김송회(80) 어르신은 집 마당에서 잡초를 정리하고 계셨다.

집에만 있음 심심하니까 풀 좀 매고 있었어. 시골서 살면서 고생 안 한 사람이 있간. 애들 갈치고 밥 맥일라면 다 똑같았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어르신의 첫 마디였다. 어르신은 스물둘 나이에 화산에서 이곳으로 시집오고 가정을 꾸렸다. 당시엔 벼농사뿐만 아니라 담배, 삼베, 아마씨 농사도 지었고 마을에서 가까운 고산장으로 나가 물건을 팔았다.

닭이 알을 열 개 낳으면 그게 한 줄 되거든. 그만큼만 낳아도 짚수세미에다 묶어가지고 애기 업고서 팔러 나갔어. 그땐 차도 없으니까 걸어 다녔는데 힘들었지 참.”

어르신이 시장에 팔만한 물건이 생길 때마다 짐 싸매고 나섰던 건 아이들 학비 때문이었다. 딸 하나, 아들 다섯을 키우면서 고등학교를 모두 전주로 보냈다. 농사를 하다 가도 때 되면 반찬 만들고 빨래도 하고 쉴 틈이 없던 때였다.



남편은 이장 일 보느라 여기저기 교육 다니고 회의 다니느라 바빴고 새마을 때문에 정신없었어. 난 토요일만 되면 잠을 못 잤어. 애들 갖다 주려고 김치 담가서 6시 버스 타고 갔는데 한 번은 길을 몰라서 종점까지 간 적도 있어. 그래도 내가 못 배웠으니까 애들은 고등학교까지는 갈칠라고 한 거야.”

고생스러워도 아이들 교육을 포기하지 못했던 건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할머니는 삼기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2학년 1학기쯤 한국전쟁이 났다. 그의 남편은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둬야 했다.

그때 인공 만나 가지고 한글만 떼고 구구단을 외우다 말았어. 우리 남편은 학교 다니고 싶어서 여기서 완주중학교까지 걸어 다녔는데 수업료가 없어서 끝까지 못 다녔대. 그래서 우리 애들은 끝까지 갈치고 싶었던 거야. 애들도 우리 고생한 줄 다 알고서 자기들이 사글세도 알아서 해결했고 부모한테 잘 해.”





오래전 일이지만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싶었던 송회 어르신. 몇 년 전부터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나눠준 국어나 수학 문제집으로 꾸준히 독학 중이다. 어르신이 꺼내온 문제집 여섯 권에는 글자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잠 안 오면 침대에서도 조금씩 써 보고 있어. 근데 선생님이 따로 없어서 모르는 게 많은데도 그냥 혼자서 하고 있어. 수학 같은 건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어.”

할머니는 아쉬운 듯 문제집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지도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문제를 풀어낸 걸 무척 뿌듯해하셨다.



열심히 안 하면 책도 주다가 말텐데 난 열심히 하니까 벌써 책이 이만큼 있는 거야. 모르는 건 그냥 넘어가고 아는 것만이라도 풀고 있어.”

요즘 할머니의 일상은 이렇다. 낮에는 잠깐씩 풀 매고 초저녁엔 아랫집 이웃이랑 강변에 산책을 나간다. 요새 티브이는 잘 안 보고 자기 전에 노래를 듣는 편이다.

“10년 전에 유방암 치료해서 오른쪽 팔이 탱탱 부었어. 돌아가신 아저씨는 12년간 병상에 누워있었는데 그때도 고생 많이 했지. 요새 소화도 안 되고 다리도 아프고 몸이 내 맘대로 잘 안 돼. 그래도 애들이 속도 안 썩이고 걱정 없으니까 이제 좀 살만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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