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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기러기로 평지마을] 박전근 어르신2021-05-11

[눈기러기로 평지마을] 박전근 어르신


누구든지 베풀고 살아야 해

 

지난 오전 11시 무렵, 선선한 바람에 옷을 얇게 걸쳐도 기분 좋은 날씨였다. ‘국가유공자의 집팻말이 걸려 있는 집을 찾았다. 집 안에는 인기척이 없었지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비닐하우스에 닿았다. 박전근(76) 어르신은 일찍이 나와 밭에서 상추를 따고 계셨는데 벌써 종이상자에는 상추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뿌리에서 배운 삶의 태도

사람 좋은 웃음을 띤 박전근 어르신은 집에 찾아 온 객들에게 인생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50년의 세월을 먼저 살아 본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말들이었다.

항상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누군들 베푸는 것이 중요해요. 나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를 돌이켜 봐야 하고요.”



전근 어르신 책장에는 수많은 표창장, 위촉패가 놓여 있다.


어르신은 그동안 마을 이장부터 의료보험조합 운영위원, 비봉농협 조합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주변에서 고마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들었지만 싫은 소리도 함께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어르신이 주변 사람들을 중요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16대 할아버지가 청백리로 꼽히는 고위직이었어요.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는데 항상 겸손하게 사는 걸 강조하셨대요. 저도 이 뿌리에 맞게 살려고 노력한 거예요. 우리 형님은 정미소를 했었는데 어려운 이웃에게는 삯을 안 받았고 밤중에 집 앞에다 쌀을 나눠줬대요. 형님 살아있을 때 저한테 주는 걸로 만족하고 받을 생각은 하면 안 된다고 일러줬어요.”



그는 젊은 시절에 서울 생활을 11년 하고서 1982년도에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어렵게 터전을 일구면서 정착했고 92년도부터 6년간 마을 이장을 했다. 그때 지어놓은 마을회관은 현재까지도 주민들의 쉼터로 쓰이고 있다.

다른 마을에서는 회관 지을 때 군에서 지원받고 짓기도 하더라고요. 근데 우리 마을은 십시일반 돈을 걷어서 2500만 원 정도 모았는데 그 돈으로 공사해서 1994년쯤 완공했어요. 마을 주민들한테서 감사패를 받았는데 이게 다른 표창장보다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늘 옆자리에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전근 어르신은 고등학교 때부터 10년간 연애해서 1970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같은 비봉 사람이었던 아내는 성품 좋기로 유명했다. 아내는 언제부턴가 건강이 안 좋아졌고 14년간 병상에 있다가 지난 2019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우리 아내가 엄청난 미인에다가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남들한테 참 잘 했어요. 주변에서 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칭찬했죠. 근데 몸이 안 좋아서 머리 수술 세 번, 가슴 수술 여섯 번을 겪었어요. 5년 동안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병원에 갔는데 좀 힘들었어도 주변에는 그렇게 말 안 했어요.”

늘 아내의 옆자리를 지키면서 간병했던 전근 어르신.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다. 이웃부터 가족, 친구들까지 그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아내가 아플 때 거의 열댓 집에서 김장김치를 갖다 줬어요. 어떤 분은 8년 동안 한 달에 2~3번씩 반찬을 해줬고요. 사고로 차가 고장 났을 때 동생이 차도 사주고, 며느리가 생활비도 보탰고, 제수씨가 꾸준히 음식도 챙겨 줬어요.”

그렇게 한참을 고마운 사람들 하나하나 되짚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늘 오전 내내 밭에서 딴 상추들은 어르신의 마음을 대신해서 선물할 참이다.

이렇게 농사지어서 누구한테 파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한테 주는 거예요. 그동안 옆에서 챙겨준 가족들이나 친구들한테요. 그나저나 오늘 우리 집까지 와 줘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상추 좀 가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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