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의 완주이야기 101] 동상면 신월리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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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적은 동상면 신월리(新月里) 무엇 먹고 사나
동상면 산이 좋아 등산객 자주 찾아들고 이들이 쓴 글이『산악정보』에 많다. 다만 하루나 몇 차례 와 본 분들의 글이기에 지명유래나 고유명사 설명 중 다른 것이 더러 있다. △구수마을은 ‘움푹 파여 구수 같아 구수마을’이라 표기해 놓았고 △신월리는 ‘초승달 닮아 신월리’라 소개했다. 2020년 8월 1일 ‘구수 골’을 가봤다. 그늘과 물이 좋아 하루(?) 피서는 괜찮겠는데, 관에서 멀고 골이 깊어 그런지 마구 파헤쳐져 흙탕물의 원인이 되었다. ‘보물산춘추원(寶物山春秋苑)’은 동물상 등 조형물이 있고, 시조비도 세웠으나 완성하지 못한 게 아쉽다. 허가나 자금 문제로 보인다. 하여간 자연 훼손의 피해는 동상면 전체에게 온다. 신천강씨전주파 대순문중비(信川康氏全州派大淳門中碑)와 납골묘 외 글자 한 자 없는 오석비(烏石碑:검은색)는 옛날 말대로라면 소위 ‘백비(白碑:글자 없다는 뜻)’랄 수 있다. 밤목 원주민이 몇 집이냐고 물으니 청년은 한참 생각을 하다 ‘3∼4호’라 하며, 나머지는 음식점 등 근래 세운 건물이란다. 용연은 그래도 너른 편이고, ‘마당목’ ‘구수계(리)’ ‘밤목리’는 하늘만 보이는 산중이다. 처음 여기 찾아든 사람들의 사연이 궁금하다. ‘천주교 신자들?’ ‘동학농민혁명 피난민들?’ ‘관의 권력을 피해 숨어들어?’… 물을 사람이 없다. 천만다행인 건 마을버스가 들어와 ‘쥐구멍에 볕든 격’이다. 원신월은 동상저수지(착공 1959. 1. 1.∼준공 1965. 1. 1.) 공사로 마을이 물에 잠기자 올려붙여 새 터 잡은 동네이다. 지명 신월리(新月里)의 변천사로 볼 때는→새로 넘어왔다는 뜻의 ‘신월리(新越里/새로 넘어 온 마을)’인 셈이다. 신월교회 역사야 오래이나 신도가 적어 낮에도 문이 잠겨있다. 기독교계의 ‘신천지(新天地)’는 돈이 많아 시끄럽고, 시골 교회는 돈이 없어 ‘어려운 미자립교회’에 든다. 비극의 표지석 ‘순교자기념비’가 있으며, ‘한국기독교순교 사적지’로 지정해 달라고 ‘제105차 총회’에 청원할 계획이란다. 왜 죽고 죽였는지는 다른 기록에 있고, 산골 인심으로 봐 부끄러운 일이다. “명지목은 1951년 가을까지 ‘전북도당(공산당:산 사람) 북부지도부’ 거점으로 해방구입니다. 북부 지도부의 호위 임무를 내가 있던 번개병단이 맡았구요.” 이 말은 당시 장윤규 빨치산의 증언이다. 물에 잠긴 마을에 ‘대실’이 있었고, 이는 ‘큰 골짝이’란 우리말이다. ➀밤실 ➁달실 ➂진밭실 ➃쇠노실 ➄숲실 ➅담보실 ➆밀파실 ➇수실 ➈각구실 ➉대실이 ‘고산 10실[谷:실]’이며 대실이 여기에 든다. 좋은 골짜기를 특정인들이 차자하고 있다. 2019년 경기도는 ‘계곡 불법시설물을 철거’했다. 완주도 이런 행정 사례를 받아들여 골짝 정화에 나서서 다행이다. ‘신월리’에서 ‘신혼부부’ 새 살림’을 차리게 하는 묘안이 연구돼야 한다. 소통부터 시작을 하자.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