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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베스트 인생 드라이버!2021-03-11

누가 뭐래도 베스트 인생 드라이버!


전동차를 탄 할머니를 지긋하게 바라보는 정선량 어르신.


전주에서 서울까지 ktx를 타면 한 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고 오늘 인터넷으로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면 내일이면 받아서 먹을 수 있고 다른 대륙 먼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도 이젠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빨리 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자동차들을 위해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들은 반듯하고 넓은 도로들로 하루하루 변해가고 있고 무엇이든 빠른 것이 미덕인 시대, 우리는 바야흐로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빠른 것이 효율이 높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것이 꼭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그 속도들을 따라잡지 못하면 시대에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좀 무섭기도 한 이 세상에는 그래도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느긋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베스트 드라이버들이 있다. 오늘은 시속 15km의 속도로 달리며 세상을 유람하는 소양면 명덕리 삼태마을 정선량(87) 할어버님과 이영준(83) 할머님의 유유자적 느릿느릿 運轉記를 소개한다.

 

전에는 자전거 타고 봉동까지 다니곤 했지. 갈수록 힘이 없으니까 아들이 전기 오토바이를 사주고 그 다음에 전기차까지 사줬어. 열 시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서서 열두 시 반에 집으로 와. 점심 먹고 조금 쉬다가 이제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두 시부터 세 시까지 소양면 돌아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와서 이번에는 전기차타고 용진으로 가서 소양면사무소까지 한 바퀴 돌아서 들어와. 집에 돌아오면 다섯 시 넘지.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쉬고 다음날 또 똑같이 드라이브를 나가는 거지. 나는 드라이브를 좋아해. 전기차 타고 멀리 나갈 때는 전주도 가고 위봉폭포나 오도재 까지도 가보고 고산휴양림도 가봤어. 나같이 늙은 사람은 남는 게 시간이야. 그냥 가만히 있는 거 보다 이렇게 천천히 길을 달리는 거지. 차 안에서 음악도 들어. 노들강변, 아리랑, 한오백년. 민요를 듣지. 애환 섞인 노래를 들으며 길을 달리면 가슴이 이상해. 울컥할 때도 있고 말이야.”



어르신 내외는 지금 살고 계시는 소양면 삼태마을이 태어난 고향이다. 집안 어르신들이 혼약을 맺어놓은 상황이어서 군대 제대하고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정선량 할아버님은 어린 시절에 전주사범학교를 다니셨다. 새벽 네 시에 길을 나서면 날이 밝아지는 걸 보며 걸어서 전주에 있는 학교에 가고 깜깜한 밤중이 되어야 다시 집에 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를 마치지 않았는데 6.25전쟁이 터졌고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에는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군대를 가게 됐다. 사범학교 출신이라 군수기지사령부 공병참모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몇 년 후에 상관이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소식을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이영준 할머님 친정은 동네에서 제법 잘 사는 집이었지만 할아버님 형편은 그렇지 않아 남의 집 셋방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남의 집 품 팔아가며 살았지만 육남매를 낳고 조금씩 돈을 모아서 논도 사고 밭도 샀다. 그렇게 늘려간 살림에 지금은 삼태골짜기에 제법 너른 전답을 갖고 있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르신 내외는 서로를 지긋하게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칭찬해 주셨다.



애들 아버지가 그래도 헛짓은 안했어요. 술 안하고 도박도 안 하고 그렇게 착실하게 돈을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까 잘 살게 되더라고요. 지악스럽게 살았지. 사람이 아무것도 없어도 신용이 있어야겠더라고요. 내 시집보내기 전에 집안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들었어요. 아무것 없어도 사람하나 보고 보낸다고. 살아보니까 살림이 없어서 그렇지 사람 하나는 괜찮더라고. 이 양반이랑 살아서 여태껏 좋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전기차를 타고 돌아다닐 때도 뒷자리에 할머니를 굳이 앉히려 하신다. 할머니는 공간이 좁고 딱딱해서 허리아파 싫다고 손사래를 치는데 할아버지는 굳이 태워놓고는 개구지게 웃는다. 그 모습에 나도 왠지 마음이 간질간질 해지더란 말이다.

 

나는 자식들한테 다른 말 안 해. 그냥 재밌게 살으라고 그래요. 그 말만 해요. 내외간에 잘 살면 모든 게 다 끝나버려. 자식 교육 같은 것도 필요 없어. 내외간에 잘 살면 자식들은 무조건 부모 따라하게 되어있거든. 단순해. 나도 우리 안 사람이랑 몸은 고생하며 살았는데 인생 재미있게 산 편이야. 이 삼태골짜기에서는 내가 돈도 많이 벌었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 가지고 있던 땅도 균등하게 나눠서 아들 딸 차별 없이 다 나누어 줘버리고 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 병원비랑 약값도 자식신세 안 져. 내 몸에 들어갈 돈은 딱 마련해 놓으니까 자식들한테 손 안 벌려. 그러니까 서로 좋아.”



전기차에 장착된 선풍기와 블랙박스.


대문 안쪽 목련나무가 예쁜 어르신 집 오른 편엔 자전거와 전기오토바이, 소형 전기차 그리고 할머님이 타시는 전동차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전용 주차공간이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다. 예전엔 농사짓는 데 필요한 것들이 빼곡하게 자리했을 공간에 이제는 느린 드라이브에 필요한 탈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농사일을 접은 지 이십년 쯤 지났지만 어르신들은 여전히 움직이려고 한다. 속도는 느리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이들을 만나고 음악을 듣고 흘러가는 바람을 따라가며 계속해서 움직이려고 한다. 움직이는 것에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움직이는 것이 중요할 뿐.

 

지금은 혼자 이렇게 타고 다니는데 몇 년 전에는 이 마을 친구들 대여섯 명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길 따라 돌아다녔어. 머리 허연 늙은이들이. 그럼 지나가는 젊은 사람들이 어르신들 멋있다고 박수를 쳐주곤 그랬지. 자전차 타고 다니다가 sbs 기자가 와서 인터뷰도 했어. 그 친구들이 지금은 다 죽고 한 명 남았네. 한 친구는 이제 힘이 없어서 자전거도 못 타. 내가 큰 아들하고 막내아들 오토바이를 각각 한 대씩 사줘버렸어. 한 대에 사천씩 하는 비싼 건데. 재밌게 사는 것이 인생 목적이어야 되니까. 형제간이 일요일이면 수원, 안성에서 오토바이 타고 우리 집에 와서 점심 먹고 쉬었다가 가. 아들들이 들락날락 하니까 좋지.”

 

어르신을 알게 된 것도 어쩌면 매일 같이 느리게 그 길을 달리는 어르신의 속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매주 소양 다닐 일이 있었는데 갈 때 마다 머리가 하얀 어르신이 작은 삼륜 전기차를 몰고 천천히 도로를 달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추월하기 애매해서 어르신 전기차를 뒤따라가면 속도가 딱 시속 15km였다. 어르신들은 지금 이 집터에서 40년을 사셨다고 한다. 원래는 방 두 칸 초가집이었는데 삼십이 년 전에 허물고 지금의 집을 지어서 살고 있다. 그 당시 동네 어르신들이 이 집 터가 좋다고 그랬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애들 다 잘 되고 우리 내외도 잘 늙었으므로. 다른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온 어르신 내외는 누가 뭐래도 인생의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앞으로도 천천히 안전하게 드라이브를 즐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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