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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리 남쪽 망표마을] 정말 봄이 왔네요2021-03-11

[황운리 남쪽 망표마을] 정말 봄이 왔네요


2008년 철쭉이 예쁘게 핀 봄날, 전주에서 소양 망표마을로 들어온 이성용 어르신 부부가 산양을 돌보고 있다.


산수유 꽃 따라 산책하듯 동네 한 바퀴

 

 

봄날은 흐린 뒤 맑음

 

밤새 내린 비가 오전까지 이어졌다. 용봉산 자락에 깃든 조그만 산사도 봄비에 젖었다. 대웅전 마루에 앉아 창호를 넘어 오는 예불소리를 들었다. 빗소리 풍경소리 독경소리가 산을 오르며 들끓었던 마음을 차분히 달랬다. 소양성당과 주사랑교회를 지나 생각 없이 가로질러 온 길. 성불사 이정표를 따라 차로 오른 산길은 충분히 좁고 급했다. 숨을 참고 마음 졸이며 올라 마침내 안전을 확보했을 때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에 안도했다.


 

소양초에서 소양천을 건너 직진하면 망표마을이다. 위성지도로 보면 용봉산의 봉황이 날개를 살짝 오므려 마을을 품고 있는 형상. 외길이라 길을 잃고 헤맬 염려는 없다. 2월말부터 3월초까지 몇 차례에 걸쳐 마을을 찾았다. 흐리고 맑은 날이 반복됐는데 비가 오면 마을을 구경하고 맑은 날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굽은 허리에 뒷짐을 진 채장임(79) 할머니는 알갱이 비료가 든 쇠그릇을 들고 마늘밭으로 가고 계셨다. “이것(비료) 쪼께 마늘밭에 주려고. 우리 남편이 일찍 돌아가셔서 고생 겁나게 했어. 아들 셋 키우느라 전주 공장서 일 다녔는데 안 해본 일이 없네. 지금 허리가 안 좋아서 큰 아들하고 같이 살고 있어.” 용연리가 고향인 채 할머니는 결혼 이후 망표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용연리 또한 소양이니 평생 소양을 벗어난 일이 없는 셈이다.




주민 이모(49) 씨는 채 할머니와는 달리 최근 마을로 이주했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직장 때문에 20년 이상을 전주에서 살다 완주로 귀촌했다. “소양면소재지에서 2년 정도 살다 이 마을로 왔어요. 사면이 다 산이라 경치도 좋고 전원주택단지도 아니어서 맘에 들었어요.”

마을의 끝, 그리고 성불사로 오르는 시작점에 황운저수지가 있다. 이곳에 조성한 아담한 둘레길을 노부부가 다정히 걷고 있었다. 4년 전 임실 강진에서 이사 온 이종기(81), 김계순(78) 부부다. “우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맨날 다섯 바퀴씩 돌아요. 그러면 딱 한 시간 정도 되는데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앞으로 여기서 오순도순 잘 살고 싶어요.” 부부는 이곳에 살기 전 모악산 같은 데 등산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부부는 산책길을 이 마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았다.

 

곁에 보이는 마을 곁보래

 

둘레길을 산책하고 돌아오던 유순(81), 임정님(88) 할머니와 마주쳤다. 두 분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낸 이웃인데 정류장을 보자 시내버스가 끊겨 겪게 된 불편함이 생각나셨나보다.

원래는 전주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있었는데 이젠 없어지고 마을버스가 다녀. 전주 갈람 황운리에서 갈아타야 되니까 나이 든 양반들은 힘들지. 짐 들고 댕길라면 너무 힘드니까. 여기 이용객이 별로 없긴 하더라도 하루에 몇 번이라도 다녔으면 좋겠어. 전주로 뭐 사러 갈라면 골치 아파.”




마을버스인 부릉부릉 행복 버스가 하루 네 차례 마을을 오가며 시내버스를 대신한다. 마을로 오는 첫 차는 아침 710분에 소양농협 앞에서 출발하고 면소재지로 가는 막차는 오후 340분에 마을종점을 떠난다. 저쪽에서 출발해 도착하고 다시 마을을 나가는 시간이 10분 만에 이루어지는 길지 않은 동선이다.

망표마을은 소양 황운리에서 가장 남쪽에 있다. 마을은 상망표와 하망표로 나뉘는데 과거 상망표에는 임씨 가문이, 하망표에는 전주 이씨 가문이 모여 살았다고 전해진다. 망표마을은 겉보래 혹은 것보래라 불리기도 하는데 문헌에 따르면 이 명칭은 근처에 먼저 있었던 마을에서 곁에 바라보이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마을 분들은 겉은 별거 없는데 안에서 보면 아늑하고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파란 대문 집에는 스물다섯에 마을로 시집 온 유복남(85)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이 집 오래 됐지. 나 각시 때 지어진 집이니까. 여기서 열두 식구가 살았어. 시어머니도 모시고 시누이하고도 같이 살았으니까. 옛날 생각하면 깜깜해. 원래 집을 새로 지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됐어.”

외풍 들어 서늘한 방안에 놓여있는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아궁이에 불을 때야하지만 할머니는 아들이 사다준 나무를 아껴 쓰느라 당신의 몸은 뒷전이다.

아들이랑 며느리가 와가지고 이렇게 해줬어. 전기장판까지 깔아놓으니까 따숴. 요즘은 밖에도 잘 못나가고 집에서 놀아. 집에서 뭐 하겠어. 청소나 해야지.” 그래선지 할머니의 나무마루는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깨끗했다.

작년 여름 경상도에서 성불사로 출가한 법전스님은 우리가 방문한 날 약사여래에게 서원 중이었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 그 권능이 코로나에 지친 중생에 닿길 바랐다. 석불의 어깨를 적신 빗물은 계곡을 따라 마을로 흘러 주사랑교회와 소양성당을 적시고 소양천의 일부로 녹아든다. 자비와 사랑이 흐르는 길 위로 산수유 꽃과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송지명(소양초6) 군은 매일 이 길을 걸어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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