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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리 남쪽 망표마을] 토박이 임귀동 할아버지2021-03-10

[황운리 남쪽 망표마을] 토박이 임귀동 할아버지


"애들 인물 좋은 건 아내 닮아서"

 

골목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다 보니 끝 집에 다다랐다. 그 대문 앞에는 듬직한 개 한 마리가 서서 짖고 있었다. 임귀동(86) 할아버지는 집에서 나와 얘가 사나워서 조심히 들어와야 돼요. 근데 내 앞에선 얌전하니까 괜찮아요라며 웃었다. 마당을 지나 옛집을 개량한 듯한 집 안으로 들어가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할아버지는 시원한 곶감 몇 개를 꺼내주셨다.

 


늠름한 개 한마리가 대문 앞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귀동 할아버지는 마을 토박이다. 과거에는 상망표마을에 임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서 집집마다 거의 임씨 집안이었지만 지금은 몇 집밖에 남지 않았다.

옛날엔 우리 마을에 최씨 하나, 한씨 하나 말고는 다 임씨였어요. 내가 수풀임씨인데 여기서 3대째 살고 있는 거예요. 원 시조는 나주에 있고 중시조는 임실에 있어서 옛날엔 다 같이 관광버스 타고 돌아다녔어요. 제각은 우리 마을 산에 있는데 제사는 이제 안 지내고 모여서 점심 먹고 회의만 하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제각이 있는 산을 가리키더니 마을 주변 산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다. 여느 뒷산 봉우리도 이름이 있듯 망표마을을 둘러싼 산에도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저쪽에 올라가면 매처럼 생겼다고 해서 매봉산이 있어요. 신선들이 놀기 좋게 바위가 깨끗하니 좋아서 거기로 나무하러 많이 다녔어요. 거기 올라가면 전주랑 군산까지도 다 보여요. 또 매화골, 성지골도 있고 우리 동네에 산은 아주 많아요.”



살면서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는 귀동 할아버지. 젊을 적엔 농사도 짓고 산에서 나무도 하면서 자식 8남매를 키웠다. 당시 소양면소재지 부근에 땅이 있어 마을과 오가면서 일했다.

원래 있던 땅은 진안으로 가는 4차선 도로가 나면서 없어지고 대신 땅값을 받았어요. 애들 갈칠 땐 농사 많이 지었는데 쌀은 아껴먹고 수수, 조 같은 거 먹고 살았죠. 하지감자나 고구마도 조금 짓고요. 그때 땅 없는 사람들은 더 곤란했어요.”

할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자식들을 보면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현재 밭 일부는 사위에게 넘겨주고 할아버지는 작은 텃밭에서 마늘, 들깨 농사를 짓는다.

우리 사위는 생강이랑 검은콩 좀 지어가지고 약강(도매시장)에다가 팔고 있어요. 난 어저께 서울 올라가서 애들 들기름 좀 갖다 줬어요. 들깨 지은 걸로 기름 좀 짰거든요. 그냥 농사지어서 애들 갖다 주는 게 재미인 거죠.”



귀동 할아버지 환갑 때 집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할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자식들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환갑 사진을 가리켰다. 할아버지가 한평생 살아온 집 앞마당에서 온 가족이 한복을 차려입고 웃고 있었다.

애들 인물이 좋죠? 우리 딸들은 아들보다 키가 더 크다니까요. 아내 닮아서 그래요. 그나저나 예전에 아내랑 일 그만하고 놀러 다니려고 10년짜리 여권을 끊어놨는데 그걸 한 번밖에 못 썼어요. (아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떴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나보고 여행 가자고 해도 안 가요. 나 혼자서는 가기 싫더라고요.”

태연한 듯 말했지만 목소리에서 헛헛함이 묻어났다. 할아버지에게 소망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래도 자식들이 찌개나 반찬 같은 것도 갖다 주고 밭도 보러 놀러 와요. 지금도 아주 살 맛 나요. 계속 건강만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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