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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처럼 끈질긴 내 인생!2021-02-09

질경이처럼 끈질긴 내 인생!

질경이처럼 끈질긴 내 인생

동상면 검태마을 이순

 

가끔씩 상상해본다. 야트막한 산 아래 볕 잘 드는 마을에 겸손한 집을 짓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을 말이다. 삶의 풍경을 연재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은 내가 꿈꾸는 그런 삶과 사람들과 집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순(65)씨가 살고 있는 동상면 신월리 검태마을은 좀 차원이 다르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검태마을은 연석산과 운장산을 잇는 마루금 한가운데 깊은 골짜기를 따라 자리 잡은 그야말로 산골마을이다. 산 좋고 물 좋아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광이지만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로서는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다.

    

개 열한마리와 길고양이 7~8마리가 머무는 곳


어쩌면 운명적으로 이 마을을 오게 된 것 같아요. 서울에서 살 때 이유도 없이 마르고 헛구역질이 나고 그랬어요. 병원에 갔는데 아무 이상이 없데요. 의사가 시골에 내려가서 장작불 떼고 살아보라고 권유를 했죠. 처음 들어올 때 동생 트럭을 타고 왔어요. 그때는 이 길이 전부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였어요. 도시 살던 사람이 생전 처음 그런 길에 들어서면 무서울 법도 한데 저는 이상하게 굉장히 즐거웠어요. 남편은 처음에는 여기 못산다고 엄청 힘들어 했어요. 근데 나는 여기가 너무 좋은 거에요. 6개월만 살다가 몸이 좋아지면 다시 올라가자 그랬는데, 내려온 순간 내가 살 곳은 바로 여기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거에요.”

 

19871110, 덜컹거리는 트럭에 몸을 싣고 도착한 검태마을. 몸이 서서히 좋아지고 나서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지천에 널린 것이 풀인데 어떤 풀을 먹어야 할지 머뭇거릴 때 동네 할머니들이 산과 들의 이로운 풀들을 알려주셨다. 채취하고 직접 조리해서 먹어보며 산야초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사실 이순씨는 완주군 지역사회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마을이장, 완주군 부녀회장 총무, 검태회관 대표를 비롯해 많은 경력이 있지만 산야초를 활용한 자연음식 분야에서는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서른셋에 이 곳에 터를 잡고 어느덧 32년차 귀농귀촌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순씨에게도 객지사람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나무한다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 우리집으로 불러서 부침개 부치고 막걸리 대접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동네사람들하고 유대관계를 쌓아갔죠. 그래도 객지사람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꿋꿋하게 어른 보면 인사하고 음식대접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내가 이 마을에서 여자이장 1호를 했어요. 동상초등학교 자모회장도 했고 완주군 부녀회장 총무까지 맡아서 했어요. 객지 사람치곤 많을 일을 했죠. 여기 버스 안 들어오던 시절에는 남편 트럭이 동네 버스 노릇을 했지요. 저도 가진 것 없지만 상대방 배려하고 베푸는 것 그런 건 우리 친정엄마를 닮은 것 같아요. 우리 친정엄마는 거지가 밥 얻으려고 집에 오면 거실에 들어오게 해서 앉혀서 밥 차려 먹이고 바가지에도 밥 담아서 보내는 사람이었어요. 친정엄마의 그런 점이 저에게 대물림 된 거 같아요.”

 

처음부터 장사를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91년 어느 날인가 등산객 한 분이 집에 들러서 간단한 음식이나 음료수 같은 거라도 팔아볼 생각 없냐고 권유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 몇 명을 더 데리고 다시 찾아와서 맛본 닭백숙이 맛있다는 말에 대출을 받아 조립식 건물을 짓고 검태회관이라는 음식점허가를 받아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음식점 한 켠에는 이순씨가 수시로 들고나는 작업실이 하나 있다. ‘풀꽃향기 가득한 집 검태골이라는 목간판이 걸려 있는 이 작업실에서 이순씨는 자연이 주는 재료들로 많은 것들을 만들어낸다.

 

장사를 하려고 보니까 손님들이 상시로 오는 게 아니어서 반찬 종류를 언제든 내놓을 있는 걸 고민하다가 장아찌 종류를 개발하게 됐어요. 장아찌 반찬 내놓고 장 담가서 된장찌개 끓여 내놓으면 손님들이 너무 맛있다고 반찬 이것저것 다 싸달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 장아찌 반찬들을 판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마을에서 동네 할머니들이 알려준 풀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독학을 해서 산야초 연구를 했어요. 다 먹을 수 있는 게 풀이더라고요. 산야초 장아찌 200종류를 담아야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현재는 50~60가지 정도 담았어요. 저는 음식에 대한 철학이 하나 있어요. 기분이 나쁜 날에는 음식을 절대 안 만들어요. 손님이 음식을 주문했다고 해도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안 만들어요. 왜냐하면 내가 지금 기분이 너무 안 좋은데 정성을 다해 만들 수 없는 거죠. 내가 마음이 선하고 착한 마음을 가져야 만든 음식이 귀해지고 드셨을 때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이순씨의 작업실. 겨울에는 늘 이곳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연구하고 만들어본다


이런 깊은 산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센 특별한 기질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편견이었다. 그들은 좀 더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고 있었다. 이순씨도 그랬다. 군청이며 농업기술센터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면 어디든 다니며 배우고 관계를 맺었다. 몸은 산골에 있었지만 블로그에 사진 올리는 것을 배웠고 지금은 휴대폰 하나로 홍보와 마케팅, 택배업무까지 모두를 처리할 수 있는 유능한 사업자로 살아가고 있다.

 

“2005년도에 블로그를 배우게 됐어요. 교육받으러 간 첫날 오른쪽 클릭, 왼쪽 클릭, 커서이걸 알려주고 있는데 집에서 전화가 온 거야. 손님이 갑자기 20명이 온다고요. 장사가 중요하니까 얼른 집으로 갔죠. 컴퓨터라고 배운 것은 딱 그 세 가지였어요. 그래도 독학으로 익혀서 블로그 만들고 사진 올리고 글 쓰는 것 한 거지요. 완주군청에서 진행한 제1회 음식 품평회에서 망개잎 장아찌하고 망애잎 백숙으로 1등상을 받았죠. 아무튼 새로운 산야초 장아찌로 입소문이 나면서 스님들에게 장아찌 담그는 교육도 했어요. 현재는 검태골이라는 이름으로 카카오스토리 활동을 통해 제가 만든 음식류, 한과류 등 건강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어요. 핸드폰 하나가 내 사업채고 내 가게야. 이거 하나로 다 하는 거죠.”

    

이순씨가 직접 촬영해서 sns에 홍보하는 먹거리


어제가 입춘이었지만 아직도 엄동설한인 검태마을의 이순씨는 철모르고 바쁘기만 하다. 봄에는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여름에는 물놀이 손님 음식장사, 가을에는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나물 뜯어서 삶아 말려 묵나물을 만들면서 사계절을 보낸다. 이순씨 남편은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농사일을 맡아주고 이순씨가 하는 일을 묵묵히 도와주신다고 한다. 이 좋아하는 일을 여든 살까지 오래오래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겠다고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으니까.

 

나는 질경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해요. 제가 여기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고생은 다 이야기 못하죠. 그런데 이 질경이라는 나물이 수레바퀴가 밟고 지나가도 결코 생명력을 잃지 않는 끈질긴 나물이라고 하더라구요. 질경이나물이 너무 좋아요. 꼭 내 인생 같아서.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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