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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산 아래 학동마을] 산학이 날고 별은 빛나니2021-01-18

[대부산 아래 학동마을] 산학이 날고 별은 빛나니


산학이 날고 별은 빛나니 사계절이 다 좋았더라

 

학동마을을 찾은 날, 마침 눈이 내렸다. 마을을 둘러싼 대부산은 소박한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오가는 사람 없이 고요한 마을. 우리는 수만리보건진료소를 지나 300년도 더 됐다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만났고, 그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니 110년이 넘은 학동교회가 서있었다.

 

주민 모두가 교인이었던 교회공동체

학동마을은 마을 앞산이 마치 학이 동쪽으로 날아가는 형상을 띠고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소쿠리모양처럼 가구들이 모여 있는데 현재 40호 가량 거주한다. 고령자가 많아 농사를 크게 짓는 사람은 없다. 최근에는 외지에서도 몇 가구 들어와 마을 안쪽에 거주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학동교회 전경.


학동마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교회이다. 과거에는 주민 모두가 학동교회를 다녔고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이 이뤄졌다. 교회가 중심이 되다보니 예부터 마을에 흔한 주막이나 점방이 없었고, 현재도 가든 같은 음식점 하나 없다.

장영선(85) 어르신은 그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의 조부가 교회를 세웠고 나이 서른에 장로를 맡은 후 지금까지 맡고 있다. 장 어르신은 한국전쟁 이후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주민들 모두가 힘을 합쳤었다. 나룻배를 타고 벽돌을 옮겨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3~4km씩 되는 거리를 운반했다. 현재 교회 벽돌을 살펴보면 모서리가 많이 깨져있는데 그때 났던 상처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학동마을로 귀촌한 김영안-황에스더 부부.


마을 안쪽으로 쑥 들어가니 김영안(82) 어르신이 집이 있다. 김 어르신이 지나가는 차를 보고 대문을 열어 손님을 맞이한다. 그는 전주에서 50여 년간 한의원을 운영하다 지난해 1월 마을로 이사 왔다. 우연히 이 마을로 오게 됐는데 알고 보니 인연이 있던 마을이었다.

어릴 때 친구랑 수만리로 놀러왔었어요. 그때 우리 동네서는 남의 집 감 따려면 눈치 봤어야 했는데 여기 오니까 아주머니가 홍시 따는 망을 건네주더라고요. 이런 데가 다 있구나 싶었죠. 은퇴하고 지낼 조용한 마을을 찾던 중 지인이 이곳을 소개시켜줘서 왔어요. 그런데 어렸을 때 감 따러 왔던 그 동네더라고요. 그때 기억이 나서 두 말 않고 오게 됐어요.”

아내 황에스더(78) 어르신은 남편을 따라 시골에 오니 평소보다 할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잡초도 뽑아야 하고 텃밭도 가꿔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낸 모든 계절이 다 좋았다고. “시멘트가 싫어서 이곳에 왔더니 풀과의 싸움이에요. 공기 좋은 곳을 찾아 왔는데 약으로 풀을 죽이긴 싫어서 시간 될 때마다 뽑는 거죠. 이곳에 와서 하늘을 자주 보게 됐어요. 낮에는 맑은 하늘이 예쁘고 밤에는 별이 보여 참 예뻐요.”

어르신의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니 눈 덮인 산 위로 새하얀 구름이 펼쳐져있다. 모든 계절이 좋았다는 어르신의 말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코로나가 끝나 자식들 얼굴 봤으면

대문 안쪽에 장작 나무가 빼곡히 쌓여있는 집이 보인다. 똑똑. 오광호(86) 어르신이 고개를 내미셨다. 단지마을에 살던 광호 어르신은 대아댐이 건설되면서 마을이 수몰 위기에 몰리자 이 마을로 왔다. 학동마을에서 지낸지 올해로 57년 차다.

예전에 형편이 어렵다보니까 다른 데로 이사 갈까 했는데 마을사람들이 표고버섯 농사 한 번 해보라며 추천해줬어요.”



표고버섯을 30년 간 재배해온 오광호 어르신이 손수 곶감을 따고 있다.


그렇게 35만 원 어치 나무를 사서 표고버섯을 재배했고 당시 1년에 1,000만 원가량 수익을 냈다. 운 좋게 표고버섯이 한창 일본으로 수출되던 때와 겹쳤던 것이다. 어르신은 지금도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다.


표고버섯만 30년 정도 해왔는데 그걸로 빚도 갚고 논도 사고 집도 샀어요. 우리 집 버섯이 좋아요. 다른 집에서 3만원에 파는 걸 우린 6만원에 팔았으니 말 다했죠.”




화로를 들고 나온 차귀례 할머니.


차귀례(89) 할머니는 집 앞에 세워진 자동차 앞에서 화로를 뒤적이고 있었다. 전주에 사는 큰아들이 왔는데 추위에 그만 차가 얼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차 앞에 화로라도 가져다 놓으면 좀 녹을까 싶어서 불을 좀 가져다 놔봤어. 시동이 안 걸리니까 우리 아들이 차를 못 내가잖아. 오늘 춥긴 했나벼.”

할머니가 어서 들어오라며 안내한 작은 방안은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 바깥과 달리 후끈하다. “친정어머니를 따라 기독교 신자가 됐어. 매주 일요일이면 학동교회 가지.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 요새 교회도 많이 쉬었거든. 조용하게 살다가 내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그러다 갔음 좋겠네.”



코로나19로 답답한 일상에 바깥으로 마실 나온 김순애, 양인순 할머니.


마을 곳곳 처마에 고드름이 달려있다. 유독 따뜻했던 지난겨울에는 보기 힘들었던 고드름이다. 우리는 골목에서 여든이 넘은 김순애, 양인순 할머니를 만났다. 방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마을 초입의 느티나무까지 산책을 하고 있었다는 두 할머니.

방에만 처박혀있으려니 답답해서 먼데는 못가고 조금이라도 걸으려고 왔다 갔다 하는 중이야. 예배도 계속 드리다가 정부가 하지 말래서 안하고 있지. 코로나가 좀 나아져서 자식들도 좀 봤으면 좋겠어. 추석 때도 못 봤거든.”

마을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새해 소망은 별 게 없었다. 새해에는 도시의 자식들이 마음 편히 어르신들을 찾아와 마을이 조금 더 북적대고, 어린 손주들이 처마에 달린 고드름을 보고 호들갑 떨며 뛰어다니면 좋겠다는 것.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그 날을 기다리며 2021년 새해가 밝았다.

 


[박스] 학동마을은

학이 동쪽으로 날아가는 것 같다 하여 학동마을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학 학()자를 썼지만 현재는 배울 학()자를 쓴다. 마을 앞에 학동천이 흐른다. 장수마을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마을공동체사업으로 친환경 국산콩을 이용한 청국장을 만들어 판매한다. 학동마을의 청국장은 냄새가 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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