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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산 아래 학동마을] 장용식 이장2021-01-18

[대부산 아래 학동마을] 장용식 이장


 

장수마을 브랜드 지켜갑니다

 

며칠 사이 마을에 흰 눈이 내려앉았다. 눈이 제법 쌓인 마당에서 장용식(66) 씨는 장작을 패고 있었다. 큼지막한 땔감나무를 도끼로 몇 번 내려찍으니 쩍 하고 갈라졌다. 그는 현재 전주에서 살고 있지만 농사 때문에 매일 마을로 오고 있다.

이 집은 형네 집이고 저는 저 아래쪽에 새로 집 짓고 있어요. 결혼하고 애들 교육 때문에 전주에 나가 살았거든요. 30년 동안 나가 살았는데 올해 마을로 돌아올 생각이에요.”

그는 지난해부터 이장을 맡아 마을일을 보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고령화 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마을이 장수마을로 청국장 마을사업을 10년 넘게 해 오고 있어요. 근데 어르신들이 연세가 있으셔서 몇 분 돌아가시고 이제 다섯 분 정도 남아 계세요. 장수마을 브랜드를 이어가려면 젊은 사람들이 함께 나서야 될 것 같아요.”

이장으로서 책임감이 강한 용식 씨는 항상 마을 걱정뿐이다. 옛날에 비하면 생활이 많이 나아졌어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가 가문 곳이라 옛날부터 비가 안 오면 냇가에 물이 없었어요. 지금도 상수도가 문제여서 겨울 되면 높은 데 사는 집이 물이 잘 안 나오고요. 지금 보건진료소가 생겼어도 위급환자는 응급처치를 못 하니까 어르신들이 걱정되죠.”



장용식 이장이 장작을 패고 있다.


그는 벼농사 2,000여 평, 밭농사 2,500여 평을 짓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지만 그에게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우리 집이 9남매에다가 할머니도 모시고 살았으니 나눠먹을 게 부족했어요. 농사를 지으면 벼가 익기도 전에 먹어가지고 수확할 때 보면 반절만 남아있었대요. 또 새해가 되면 친구들 모여서 집집마다 세배 드리러 갔어요. 그러면 식혜랑 떡 같은 것들 좀 먹을 수 있었거든요.”

당시 다 같이 형편이 어려웠는데도 어른들한테 세배 드리면 뭐 하나라도 꼭 챙겨줬다고. 용식 씨가 인생에서 꼽은 가장 힘든 때이지만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반대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일까.

이 마을서 아내랑 함께 자랐는데 어떻게 인연이 돼서 결혼까지 했어요. 애가 넷인데 아들 둘은 여기서 낳고 딸 둘은 전주 시내서 낳았고요. 살다보니 생활도 차차 좋아졌고 옆엔 가족들이 붙어있으니 그게 행복이죠.”

스물다섯에 결혼한 용식 씨는 당시 학동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여동생 친구였던 현재 아내와 자연스럽게 친해지다 호감이 생겼다고.

아내가 집안에서 큰 딸이라 어릴 때부터 책임감도 강하고 부모님 도와서 집안일도 했어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 같아요. 어릴 때 같이 놀았던 동네 사람이랑 결혼해서 지금까지 같이 잘 사는 걸 보면 인연인가 봐요.”

갑작스런 아내 얘기에 쑥스러운 듯 웃음 짓는 용식 씨. 다시 돌아온 고향 마을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 궁금했다.

시골서 살면서 뭐 특별한 게 있나요. 일단 이장을 맡았으니 최선을 다해서 마을 어르신들 위해서 봉사하고 싶고요. 아들 장가보내고 노후에도 집사람하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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