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의 완주이야기 75] 소양면 신원리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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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좋아 명당 많은 소양면 신원리(新元里)
완주군 삼례·봉동·이서 빼면 거의 산간지대이다. 소양면 ‘신원리(新元里)’와 동상면 ‘신월리(新月里)’는 산이 많고 들 적기로는 마찬가지이나 각각 다른 마을이다. 신원리는 ‘대승리-하리-상리-원신원-반곡’ 등 지역이 넓어 하루 돌기엔 벅차다. 오늘은 주로 대승리(大勝里) 쪽에 집중한다. 구진리(화심) 순두부마을에서 55번 도로 동상면 방향 이 골짝이가 유명하다. ‘대승리(大勝里)’는 한자로 <큰 대(大)·이길 승(勝)>이라→이 곳에서 대판거리 싸움이 벌어져 이긴 곳→‘대승리’로 보기 쉬우나 전쟁과는 관계없고, ‘경치 좋은 곳’으로 봐야 한다. 여기 승(勝)은→‘낫다. 훌륭하다. 경치 좋다.’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수승대(搜勝臺) ‘이기려 찾다.’ 뜻이 아니라→‘아름다운 경치를 찾아보라’는 의미이다. 소양면을 한 눈으로 살펴볼 때 ‘산’과 ‘묘’ 이야기가 많다. 대승리에서 전주최씨 만육 최양(崔瀁) 선생 묘가 단연 우뚝하다. 개성 선죽교하면 포은 정몽주 선생이 떠오르고, 정몽주 선생 생질이 바로 ‘최양’이다. 혈족 관계도 중요하지만 이성계가 ‘백함 친구여!’ 할 정도이었고, 전주 땅을 뭉떵 준다 해도 사양한 인물이며, 이런 이야기책이『금감록(金鑑錄)』인데 내게도 있다. 고려에서 지위가 대단하며(대제학) 신도비문(神道碑文)을 읽어보면 자세한데 한자를 몰라 읽지 못하는 자손과 젊은이가 걱정이다. 최양 선생의 재실이 ‘대승재(大承齋)’이다. 대승리에 있으니→‘大勝齋’라 하기 쉬운데, 최씨는 할아버님 정신을 대대손손‘ 이어나가자(承)’는 데에 초점을 두어→‘대승재(大承齋)’라 했다. 이게 ‘씨족정신’·‘조상숭모정신’이다. 자손들마다 논밭은 적을지라도 이런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살아 있는 김씨 셋이 죽은 최씨 하나를 못 당한다!’ 이 말은 ‘최씨 강인하다’는 멋진 표현이 아닌가. 대승사(大勝祠)도 기억해야한다. 남양홍씨 사우(祠宇)로 홍남립(洪南立) 선생을 모셨는데 선생은 글이 좋아 전주의 명문이었다.『완산지(完山誌)』에 글 여러 편이 있다. 홍남립 선생도 훌륭하지만 후손들이 조상을 하늘처럼 떠받든다. 자동차가 있고 길이 좋으니 날 잡아 대승동에 들려 무덤·재실·사당· 경치에 빠져보면 자신이 보일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한지공예공방촌 이다. 원래 소양면은 산지로 닥나무가 많아 지소가 흔했고, 이 가운데 송광(대흥리)이 유명했다. 한지마을 조성 후보지로 1순위였으나 당시 군의원 홍 모씨의 노력으로 대승리에 들어섰다고 한다. 나라나 지방이나 사람이 나야 지역이 발전한다. 동상면을 거처 밤재 넘어 그냥 스치지 말고 들릴만하다. 그런데 농촌 누가 굳건하게 ‘지켜나갈 것인가’ 다 함께 고민할 문제이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