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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멋진 신세계2021-01-05

[기고]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

너멍굴 농부 진남현


언제나 모든 것은 변한다. 그 변화에 잘 장단을 맞추면 시대의 인물이나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며 자리를 지키는 자들도 있다. 5년 전, 너멍굴이라는 골짜기에 농토를 마련하고 들어왔다. 논과 축사뿐인 골짜기를 바라보며, 향후 200년은 개발되지 않을 땅을 원했던 나는 이곳이 내 삶의 터전이 되리라 확신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너멍굴도 변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내 확신은 그저 바람에 불과했던 것인가.

너멍굴 농업의 별이 졌다. 처음 들어올 당시에도 경작지 중 일부는 놀고 있었다. 그나마 볕이 잘 들고 관리된 농지만이 마을에 사는 어르신 서너 분에 의해 일궈지고 있었다. 그 중 골짜기의 가장 큰 지주는 소막 어르신이라 부르는 70대 노인이었다. 그는 너멍굴에 축사와 감나무 밭, 마늘밭, 논과 더불어 땔감을 공급하는 뒷산까지 소유한 그야말로 너멍굴 큰 손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골짜기로 들어오는 길을 소유하고 골짜기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는 그 길을 통해 들어오는 변화와 개발의 바람을 막아서고, 자신의 농토가 피해 받지 않는 정도의 길만 열었다. 그 덕분에 남향의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골짜기는 전원주택단지가 아닌 농토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세월의 바람은 그도 막아서지 못했다. 석유라는 머슴이 아무리 일을 도와도 그의 기력은 쇠잔해졌다. 소주를 물처럼 마시며, 셔츠단추를 모두 개방한 그의 무사적 농촌차림은 점차 귀한 풍경이 되었다. 급기야 올해는 골짜기 경작의 핵심인 마늘밭과 감나무, 논 모두를 놓아주었다. 그의 기운이 사라지자 땅은 곧 야생의 흔적이 살아났다. 그렇게 땅을 야생으로 돌려준 건 소막 어르신뿐 아니었다. 골짜기 농토의 20% 정도를 경작하던 한 어르신도 몇 년 전부터 논을 생태습지로 만들었고, 그 자리는 동네 멧돼지들의 공중목욕탕이자,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여기까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버려진 농토에 야생의 기운만 넘쳐났다면 말이다. 그 속에서 쇠스랑과 낫으로 전근대적 농업을 영위하던 내가 이질적인 존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희미해진 별빛 사이로 개발의 마수는 새 광명을 비추기 시작했다. 친분과 혈연으로 이어진 지역사회와 쇠잔해진 기력이 만나면서, 결국 개발동의서에는 어르신들의 서명이 들어섰고, 너멍굴 생태습지와 휴경지들에는 태양광패널이 수천 평씩 들어섰다.

이제 골짜기는 도시로 땅의 기운을 파는 것에서 나아가 빛을 팔기 시작했다. 물이나 공기를 판다고 했을 때와는 다른 상품이었다. 환경과 생태의 명분을 뒤집어쓴 새 상품은 소비자의 도덕심을 만족시키는 훌륭한 상품이었다. ‘환경이라는 이름아래 규모화 된 개발이 시작됐다. 도시는 농촌의 사람을 잡아먹고, 이제는 농촌의 바람과 태양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진정한 21세기가 도래하고 있다. 환경과 스마트가 안 들어간 상품은 명함도 못 내미는 세상이 온 것이다. 변화를 싫어하는 촌부가 종이매체에 언제까지 전근대적 일상을 투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희망은 있고, 삶은 이어진다. 5년 전, 너멍굴의 비렁뱅이 1인 가구는 이제 3인가구로 늘었고, 한 쌍의 닭은 50여 마리가 되었다.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이토록 스마트한 시대, 의미 있는 지면에 글을 보탤 수 있어 기쁘다. 결국 너멍굴엔 여전히 진남현이 살고 있다.

 

/진남현(너멍굴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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